김경수 목사(광은교회·제105회 총회중독상담대책위원장)

슬픔을 그 자체로 이해하며 잘 듣고 자존감 회복 도와라

김경수 목사(광은교회·제105회 총회중독상담대책위원장)
김경수 목사(광은교회·제105회 총회중독상담대책위원장)

●시작하는 글

클라우스 슈바프가 말한 4차 산업혁명의 시대이다. 세상은 급변하고 있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본질(arche)이며, 그 본질이란 다름 아닌 하나님 말씀 곧 성경이다. 유대인들이 나라를 잃어버리고 디아스포라로 살아가면서도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본질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본질을 붙잡고 있으면 상황이 다양하게 변해도 근원적 원리를 가지고 대처할 수 있다. 돌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돌봄사역을 하다보면 희로애락의 감정의 문제들을 만나게 된다. 예수님께서도 세상에 계실 때 다양한 감정들을 겪으셨다. 때로는 분노하고, 의분을 내기도 하고, 책망과 함께 동정도 하셨다. 슬픈 상황에서는 울기도 하셨다. 요한복음 11장 35절에는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주께서 슬픔 가운데 눈물을 흘리시는 장면이 등장한다.

슬픔은 인간의 한 단면이다. 특히 가족을 잃는 슬픔은 비통함과 충격, 그리고 상실감에 빠지게 만든다. A. J. 셰블리어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큰 슬픔이다. 견디기 힘든 상실감으로 인해 한동안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슬픔이 나타나는 과정

필자의 아버지는 갑작스럽게 위암이 발견돼서 수술도 못한 채 10개월을 고통 속에서 지내셨다. 결국 온몸에 암이 전이돼서 고통스럽게 투병하다가 돌아가셨다. 임종을 지켜보면서. 끝까지 아버지를 잘 돌보지 못했다는 자책과 후회가 일어났다. 이 같은 경험들을 바탕으로, 슬픔은 다음과 같은 단계로 나타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제1단계/충격(Shock)
사람이 갑자기 큰일을 당하면 육체적인 충격과 함께 감정적인 충격도 함께 오게 된다. 이때 너무 두려운 나머지 “말도 안 돼” “그럴 수 없어” “아마 잘못 들었을 거야” “뭔가 착각이 있을 거야”라는 식의 거부 반응이 나타난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적으로 사태를 인식하고, 슬픔을 현실로 받아들인다.

제2단계/반동(recoil)
슬픔의 첫 단계인 충격의 단계가 지나면 상실의 현실성을 경험하면서 고통을 느끼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이와 결속되어있던 고리가 단절되는 현실 속에서, 세상을 떠난 이에 대한 생각에 집착하며 슬픔으로 탄식을 연발하기도 한다. 만약 이 때 슬픔을 제대로 분출하지 못하면 고통은 가슴에 내려앉는다.

그 결과 어떤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산란한 마음으로 인해 혼란을 겪는다. 그리고 ‘왜 이런 큰 슬픔이 있어났는가’에 대해 스스로 이해하거나 합리화하려는 시도를 하다가, 내면에서 일어나는 반동으로 자신 또는 타인 심지어 하나님을 향해 불평을 토해낼 수도 있다.

제3단계/고인에 대한 집착
슬픔에 빠진 이들은 고인에 대한 생각으로 꽉 차 있어서 다른 데 마음을 쓰지 못한다. 배우자와 사별한 경우,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까지 본인이 여전히 결혼한 상태라고 느끼고 생전의 배우자에게 집착하기도 한다. 고인을 자신의 마음과 생각 속에서 떠나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4단계/신체·정서적 증상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슬픔을 경험할 때 약 20분에서 1시간 가량 심하게 혹은 약하게 신체적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불면증을 겪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목이 조여 오는 현상으로 숨이 가빠지고 한숨을 자주 쉬는 일도 생긴다. 속이 텅 빈 느낌이 들며 층계를 오르지 못하거나 손과 손끝에 힘이 쏙 빠지는 것 같은 무기력증에 시달리는 경우, 소화불량에다 식욕부진으로 밥을 먹을 때 마치 모래알을 씹는 것처럼 느끼는 경우도 있다.

정서적으로는 현실감을 상실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이질감을 느끼는 증상들이 나타난다. 아무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관심조차 가져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공포에 사로잡히거나 다 털어버리고 멀리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심지어 자살 충동을 느끼기까지 한다.

제5단계/적대 감정
슬픔에 사로잡히다 보면 다른 사람들에게 이유도 없이 차가워지고 짜증을 내는 모습이 나타난다. 특히 고인과의 관계에서 서운했던 사람들에게 적대감정이 표출된다. 그렇게 화를 내는 스스로에게 놀라고, 자신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해 내 자신이 미쳐가는 게 아닐까 불안을 느끼기도 한다.

제6단계/죄의식
고인에 대한 아픔이 죄의식으로 나타나는 과정이다.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또는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는 일들을 수없이 생각하게 된다. 만약 생전에 고인을 향해 적대감정을 가졌던 경우라면 죄의식이 심화되어서 더욱 큰 고통을 겪는다.

제7단계/우울과 칩거
깊은 슬픔으로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주저앉히는 과정이다. 그리움과 고독 속에서 우울증은 삶의 에너지를 빼앗아 버린다. 스스로 우울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벗어나지 못하고 무력감에 시달리며 식욕도 잃어버린다. 다른 사람과 모든 관계를 끊고, 일상적인 일조차 수행하지 못한 채 혼자 있고 싶어 하는 마음에 빠져든다. 사는 것 자체가 악몽을 꾸는 듯 느끼는 단계이다.

제8단계/관계를 맺기 시작
시간이 지나고 감정이 회복되면 점점 형편이 나아진다. 캄캄한 절망의 구렁텅이에 빛이 비친다는 느낌을 받으며, 삶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다. 고인이 없는 삶에 적응하면서, 새로운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제9단계/현실에 다시 적응하는 결단
모든 슬픔을 이기고 나면 서서히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현실의 삶에 재적응한다. 상처는 그대로 남아 있지만 정상적인 궤도로 돌아가기 위한 노력을 한다.

이런 식으로 아홉 가지 단계를 거치는 동안 고인에 대한 그리움이 심해져 착시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는 점을 기억하자. 예를 들어 갑자기 사랑하는 이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듯 느낌을 받거나,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부르며 잠에서 깨기도 한다. 그러다 사랑하는 이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하고 아픔을 되풀이하게 된다.

이런 공포를 가지고 있는 이들은 자신을 늘 가까이에서 돌봐줄 사람을 필요로 한다. 어떤 돌봄을 받느냐에 따라 슬픔에 빠진 이들이 겪는 반동의 기간이 상당히 단축될 수도 있다.

●슬픔에 빠진 이들을 돌보는 방법

슬픔에 빠진 이들을 돌보기 위해 해야 할 일이 그리 많은 것은 아니다. 앞에서 돌봄의 원리와 원칙을 다룰 때 살펴보았듯이, 결과지향적인 돌봄보다 과정지향적 돌봄으로 슬픔을 당한 이들을 단계적으로 돌보는 것이 좋다.

제1단계/그 자리에 함께 있어 주기
피돌봄자가 갑자기 일을 당해 충격을 받았을 때, 돌봄자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자리에 함께 있어주는 것이다. 슬픔에 빠진 사람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누군가 자신의 기분을 이해해 주며, 함께 해 주는 것이다.

제2단계/수용하기
피돌봄자가 충격에 빠져 현실을 부정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할 수가 있다. 돌봄자는 이러한 행동을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라, 슬픈 감정을 표출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대처하며, 피돌봄자의 기분을 수용해 주어야 한다.

제3단계/상실에 대한 부정을 나무라지 말기
피돌봄자가 자신의 상실을 부정하는 생각을 하고 있더라도, 돌봄자는 그 생각이 잘못되었다며 나무라고 꺾으려 들어서는 안 된다. 그런 행동 자체가 정상이라고 인식하고 받아들여주는 태도가 필요하다.

제4단계/들어주기
돌봄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잘 들어주는 것이다. 열심히 귀 기울여 들어주어야 슬픔에 빠진 사람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제5단계/돌봄자 자신의 기분도 표출하기
피돌봄자가 겪는 슬픔으로 인하여 돌봄자도 슬퍼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다. 서로를 향한 마음이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이 울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슬픔을 당한 사람도 안심하고, 믿음을 가지며, 용기 내어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제6단계/스스로 결정하고 결단하게 하기
피돌봄자의 문제를 돌봄자가 나서서 해결해서는 안 된다. 극단적인 상황을 제외하고는 돌봄자가 주도적으로 결단하는 것은 잘못이다. 아무리 어려움 속에 있다하더라도, 피돌봄자가 현실을 직시하면서 스스로 결단하게 해야 한다. 그것은 슬픔을 빨리 이길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제7단계/성급한 결단을 내릴 때 도와주기
피돌봄자 스스로 결단을 내릴 때라도 어떤 경우에는 너무 성급한 결정을 내리게 해서는 안 된다. 감정적으로 내린 결정이 때로는 심각한 불이익을 초래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성급한 결정이 내려지지 않도록 돕는 것도 돌봄자가 할 일이다.

●나가는 말

돌보는 이들이 죽은 사람의 생일이나 기일(추도일), 슬픔 당한 자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등 특별한 날들을 기억하며 챙겨주는 것도 피돌봄자에게 용기를 주는 방법이다. 자신을 지속적으로 돌보는 누군가가 있다면 충격에 빠져있던 사람들도 자신의 슬픔, 자신의 감정을 진솔하게 드러낼 수 있게 된다. 바로 그때 하나님의 말씀과 격려와 위로를 건넨다면, 피돌봄자는 희망 속에서 자신의 낮아졌던 자존감을 털고 일어나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

“형제들아…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살전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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