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목사(광은교회·제105회 총회중독상담대책위원장)

함께 하며 예수 사랑 증거하는 지속적 돌봄 사역 필요

김경수 목사(광은교회·제105회 총회중독상담대책위원장)
김경수 목사(광은교회·제105회 총회중독상담대책위원장)

시작하는 글

우리는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전대미문의 시대에 목회사역을 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하여 ‘나도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어떻게 할까’하는 불안이 일상화 되면서 사람들은 서로 만나지도 못하고, 간혹 만난다 하여도 마스크를 쓴 채 상대의 눈만 보며 대화를 해야 한다.

이뿐 아니다. 예배로 모일 수 없고, 심방마저 꺼리는 상황에서 성도들은 심각한 인간 소외현상을 겪는다. 그 결과 불안과 염려, 자기상실, 소외감과 고독감, 무의미 등으로 정신적 심리적 영적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목회자들은 이런 상황 속에서 설교해야 하고, 심방과 성도의 교제를 어떻게든 이끌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예전엔 말도 안 된다고 여기던 모습들이 어느새 일상이 되어버렸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재난이 장기화될수록 불안은 더욱 상시화 될 것이다. 이제는 전통적 목회와 시대적 상황을 두루 고려한 성경적 돌봄이 필요한 상황이다.

메타버스 시대의 돌봄 사역

코로나 팬데믹이 심화시킨 현상 중 하나가 메타버스(metaverse)이다. 개인의 소중함이 강조되고,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목회하는 교회들도 새로운 콘텐츠 개발을 통하여 성도들을 돌봐야 한다.

뒤돌아보면 한국교회도 역경의 시기를 힘겹게 헤쳐 나오면서, 시대별 흐름에 맞춰 목회를 실천했다. 1950년대에는 동족상잔의 상처 속에서 위로의 목회를 해야 했고, 1960년대에는 가난 극복이라는 사회적 관심사 속에서 이른 바 ‘삼박자 목회’(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해지는 목회)가 등장했다.

1970년대는 독재에 항거하는 목회 흐름과 성령론을 강조하는 목회 흐름이 공존하는 시대였다. 그리고 1980년대에는 성경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베델성서, 크로스웨이, 네비게이토 등의 수많은 체제들이 등장해 소그룹과 성경공부 중심의 목회가 전개됐다. 1990년대에는 열린 목회와 찬양을 강조하는 목회가 나타났고, 2000년대에는 구도자(seekers service) 중심의 목회가 각광을 받았다.

최근의 메타버스 현상 또한 목회의 현장을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부어야 하는 것처럼, 목회적 돌봄도 이전과 다른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 점점 사람을 대면하여 만나기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에 따라 예배와 심방, 성경공부, 전도와 선교, 각종 모임들이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목회상담적 돌봄 사역이란?

‘목회적 돌봄 사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돌봄’이란 단어의 정의와 의미에 대해 알아야 한다. 돌봄(care)은 ‘보호’, ‘간호’ ‘인도’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목회적 돌봄’이란 걱정, 불안, 슬픔, 괴로움에 휩싸인 성도들을 목회적으로 돕는 것을 의미한다.

예전에는 신앙과 기도만으로 성도를 돌보았다면, 이제는 그 사역을 철저히 개인화하여 돌봄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하나님의 치유(God’s Healing)를 경험하도록 장·단기적으로 돕는 사역이 필요하다. 실제로 미국이나 유럽의 목회자들 사이에는 이 같은 돌봄 사역이 활성화되어 있다. 그들은 기존 방식의 목회에 한계를 느끼고, 단회적인 돌봄에서 지속적인 돌봄으로 전환하며 성도들의 삶을 회복시키는 데 힘쓴다.

목회적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

교회 안에도 돌봄이 필요한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병원에 입원 중인 환자들, 불치의 병으로 시한부 생을 사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슬픔에 잠긴 사람들, 독거노인들, 장애인들, 직장을 잃고 위기에 빠진 사람들, 고독한 사람들, 무력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 집안에만 갇혀 살아가는 사람들, 자기 상처로 좌절한 사람들, 다양한 중독자들, 새신자들, 영적인 위기에 빠져 있는 사람들, 기타 고통스런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 등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돌봄을 원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상당수 목회자들이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이들을 가까이하기 위해서는 목회자에게 가장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포용할 줄 아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포용하는 마음이 있을 때 목회자와 돌봄을 받는 이들 사이에 일회적이 아닌 지속적 돌봄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진다. SNS 줌 유튜브 전화 등 다양한 연결수단을 활용하여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안아주고, 그들이 겪는 고통의 현장에 함께 있어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목회자들에게 요구되는 공감의 사역이다.

돌봄의 감각적 센스

돌봄에는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필요하다. 서로를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아픔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 다가가 성경적 돌봄을 베풀어야 한다. 마치 예수님께서 수많은 병자들을 돌보신 것처럼 말이다.(마 25:36, 25:43, 막 4:38, 눅 9:38, 히 10:24. 12:15, 약 1:27)

신약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신 장면이 나온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란 그런 것이다. 우리도 그런 성품을 가지고, 돌봄이 필요한 이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상대방의 기분을 파악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필요한 돌봄을 제공해야 한다.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롬 12:15)

돌봄의 원칙

돌보는 이들은 상대방과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되, 대화를 나누며 알게 된 내용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비밀을 지켜주어야 한다. 돌봄을 받는 이들이 지니고 있는 내적 상처, 좌절, 의심, 괴롭힘, 분개, 두려움, 무기력, 비판, 고독, 애통, 비참함, 죄의식과 수치심, 낙담, 절망 등등의 아픔을 외부로 발설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아픔을 진정으로 공유하면서 즉 상대의 감정을 파악(recognize)하고, 수용(accept)하고, 표현(express)하고, 신뢰(trust)하면서 동정과 연민으로 문제를 함께 해결해 갈 수가 있는 것이다.

돌봄과 경청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한 후, 하나님은 모세에게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출 16:12)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의 말과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시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신다. 우리가 고통당할 때, 그 고통으로 눈물을 지을 때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신다. 들음이 곧 돌봄이기 때문이다.

듣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또한 돌봄 사역에 있어 제일 중요한 기술이 바로 듣기이다. 듣는다는 것은 가장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행동이면서, 동시에 많은 연습을 통해서 얻어지는 기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목회자들은 무엇을 들어야 하는가? 돌봄이 필요한 이들이 전하는 말과 말 사이에 숨어 있는 뜻을 들어야 하고, 몸짓에서 들려주는 언어까지 들어야 한다. 목소리의 떨림, 몸짓, 숨소리, 한숨, 얼굴의 변화, 근육의 긴장, 옷을 입은 모양새 등도 하나의 언어로 들어야 한다.

그런데 비대면 시대에는 어떤 방법으로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할까? SNS, 줌, 유튜브, 전화 등 개인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동원하여 돌봄이 필요한 이들과 대화할 수 있다. 이런 방법으로도 상대방이 말할 때 듣고, 공감하고, 소통하고, 위로하고, 격려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일어나게 할 수 있다. 목회자는 상대의 말을 경청하면서 좋은 질문으로 바르게 묻고, 잘 반응해 주어야 한다. 돌봄을 받는 이들도 많은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몰아세워서는 안 된다.(약 1:19) 그들이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상대방의 고통에 대해 ‘나도 다 겪어 보았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돌보는 쪽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작은 일처럼 보일지라도, 돌봄을 받는 쪽에서는 큰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겪은 일보다 더 큰일을 만났다고 말하지 말아주세요” “나는 위기인데 위기가 아닌 것처럼 말하지 말아주세요”처럼 상대편의 입장에서 대화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돌봄에 임해야 한다.

돌봄에는 결과지향적인 돌봄과, 과정지향적인 돌봄이라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두 가지 방법은 성격이 완전히 다르지만, 모두 다 돌봄이 필요한 이들을 영적으로 돌보아 건강한 삶을 살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제 돌보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기 위해서 지켜야 할 원칙들을 다시 한 번 확인해보자.

첫째, 잘 듣는 자(listen well)가 되어야한다.

둘째, 비밀을 지킬 줄 아는 자(keep confidentiality)가 되어야 한다.

셋째, 고통과 아픔을 같이 나누는 자(be there)가 되어야 한다.

나가는 말

이제 한국교회는 돌봄 사역으로의 패러다임을 전환(Paradigm Shift)해야 한다. 일회적인 돌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지속적이며 연속적인 돌봄 사역(Care Ministry)이 필요하다. 교회 안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과 ‘같이 있어(be there)’ 줌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하는 목회사역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마 25:4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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