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목사(광은교회·제105회 총회중독상담대책위원장)

철저히 하나님 중심의 소통하는 과정지향적 돌봄 필요

김경수 목사(광은교회·제105회 총회중독상담대책위원장)
김경수 목사(광은교회·제105회 총회중독상담대책위원장)

■시작하는 글

세상이 바뀌고 있다. 건물 하나 없이 호텔업계 질서를 바꾼 에어비앤비(Airbnb), 택시 없는 운송회사 카카오택시, 직원도 지점도 없는 케이뱅크, 음식점 하나도 없는 배달의 민족 등은 가상세계와 현실세계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21세기 들어 스마트폰 사용이 보편화된 이후 유튜브, SNS, 전화, 줌 등 다양한 소통 방법이 생겨났다. 대면의 부담은 줄이면서 피드백은 더 많이 할 수 있는 수단들이다. 주는 서비스를 통해 소통을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목회자들도 이제는 과거와 다른 방향으로 성도들과 소통하며 돌봄방식을 펼쳐야 한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하여 비대면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더욱 정교한 소통방식이 필요하게 됐다. 일상적으로 전하던 메시지도 더 잘게 세분하여 성도들에게 전달하면서 서로가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등, 목회적 돌봄방식에도 많은 고민과 변화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공감이 필요하다

모 교회에서 열심을 다해 봉사하고 헌신하던 성도가 가정문제로 자살했다. 교회에서는 그 성도가 자살을 택할 만큼 위태로운 상태였음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뒤늦게 같은 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은 하나 같이 “진즉에 알았더라면…” 하고 후회했다.

비슷한 문제들이 목회현장에 비일비재하다. 열심히 충성하며 교회를 섬기던 사람이 자신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어느 날 갑자기 생을 마감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야 작게라도 소통이 꼭 필요했음을 절감하게 된다. 그야말로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격이다. 

목회자(돌봄자)들은 성도(피돌봄자)들이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올 때, 경청과 공감과 소통을 통하여 그들과 조금이나마 아픔을 나눠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성도들이 목회자에게 자신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공감해 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목회자들이 공감보다는 해결 쪽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돌봄에 있어서 ‘넌센스’이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 순간 성도들을 돌보는 역할을 맡게 된다. 아쉽게도 교회 안에서 돌봄사역의 대부분은 영적 성장 단계를 밟고 있는 새신자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교회 안에 고통스럽고 어려운 문제에 시달리는 사람들, 곧 돌봄이 필요한 이들이 적지 않다.

과연 목회자는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아보자. 먼저 돌봄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결과지향적인 돌봄

목회자들의 돌봄은 보통 상담이나 심방처럼 결과지향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하나님께 문제를 맡기고 기도하자고 결론을 내린다. 물론 이러한 돌봄 방식이 틀린 것은 아니다. 기도가 해답이며, 하나님께서 모든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을 우리는 믿는다.

그런데 사실 피돌봄자가 어떤 문제를 만났을 때, 그 일을 놓고 기도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기도하라’는 것으로 돌봄의 결론을 제한해 버리면, 목회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마저 하나님께만 의존하고 마는 것이다. 또한 피돌봄자가 스스로 결정해야 할 부분을 돌봄자가 먼저 결론을 내려버리면서 돌봄이 의존적인 방향으로 전개되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어느 목회자가 가정불화로 인해서 이혼 위기에 처한 교인의 상황을 듣게 되었다. 1년 동안 그 가정을 위해서 지속적으로 심방하고 위로하며 기도해주면서 돌보았지만, 서로 성격이 달랐던 그 부부는 결국 화해를 하지 못했다. 결국 최근에는 이혼을 앞둔 막바지 상황이 되고 말았다.

목회자는 자신의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이혼을 고집하는 아내로 인해 남편의 마음이 상해있고 이 가정에는 더 이상 회생의 기미가 없다고 느꼈다. 단지 남편에게 이혼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수긍한다는 것이 너무 큰 고통이어서, 그것을 직면할 능력이 없어 보이는 게 안타까웠다. 목회자는 남편이 현실을 직시하도록 권면하는 대신 계속해서 남편의 말을 들어주고, 그 기분을 헤아려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 성도의 결혼생활을 소생케 하시고, 이혼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도와주시고, 이제 회복되어서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서는 용기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 목회자가 행한 방식이 바로 결과지향적인 돌봄이다. 이런 식의 돌봄은 문제를 빨리 해결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돌봄자가 주도해 내린 결정이기에 결국 자의가 아닌 타의로 내려진 결정이 되고 만다. 자신의 문제를 능동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점을 결코 유익하다고 할 수 없다.

만일 여기서 어떤 부작용이라도 생긴다면, 돌봄 사역이 오히려 화가 되어 돌아올 수도 있다. 성도와 목회자 사이에 뜻하지 않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전도의 문이 막히고 평생 관계가 회복되지 못할 소지가 남게 되는 것이다.

과정지향적인 돌봄

과정지향적인 돌봄이란 피돌봄자가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 그때그때 상황을 파악해서 과정을 중심으로 돌보는 방식을 말한다. 피돌봄자가 자신의 처지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장 유익한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목회자가 해야 할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 피돌봄자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게 한다.

둘째, 양쪽을 다 보지 않은 채 목회자와 말이 좀 통한다는 한쪽만을 돌본다는 편견을 심어주어서는 안 된다.

셋째, 목회자는 돕는 자로서 자신의 역할 한계를 분명히 하면서 피돌봄자가 하나님을 의지하며 스스로 결정하도록 도와야 한다.

넷째, 피돌봄자의 입장에서 필요한 것을 제공하며 만족할 수 있도록 관계를 이끌어 가야 한다.

다섯째, 목회자 자신을 통제하려고 노력하면서 피돌봄자의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적절하게 도와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과정중심으로 돌보면서 목회자가 최선을 다하는 길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돌봄 사역에서 목회자가 주의할 일이 있다. 돌봄자로서 할 수 있는 일,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일들을 구별하면서 피돌봄자가 한 단계씩 발전해나가는 선택을 하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 피돌봄자가 내린 결정에 대해 경청하면서, 그가 스스로 문제를 풀어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고유영역을 구별하라

목회자들은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서 성도들을 돌보는 사람이다. 그런데 돌봄에 있어서 ‘하나님의 고유영역’을 잊지 말아야 한다. 즉, 목회자가 할 수 있는 일과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을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목회자들은 바쁜 목회활동으로 시달린다. 하지만 그 때문에 만약 돌봄 사역을 ‘한 번에 모든 것을 끝내려는’ 방식으로 감당한다면 설사 그 목적이 달성된다 할지라도 돌봄자(목회자)와 피돌봄자(성도) 사이에 감정의 공유는 결코 발생하지 않는다.

목회자 중심으로 돌봄이 이루어질 경우 피돌봄자가 가진 슬픔과 고통을 극복하도록 종용하는 경우도 생긴다. 목회자가 자신의 돌봄 사역을 자랑하고 싶어 하거나, 자기중심적 경향으로 이끌어갈 위험성 또한 크다. 그러므로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목회자 중심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 중심의 돌봄이 필요하다.

과정지향적인 돌봄 방식이 목회자 입장에서는 힘들고 쉽게 지치도록 만들겠지만, 계속적인 돌봄을 통해서 돕는 방법이 옳은 것이다. 신속한 해결을 위해 결과지향적인 돌봄만을 추구하다보면 결국 피돌봄자에게 다시 어떤 문제가 발생할 때 스스로 결단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누군가에 종속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결국 돌봄자가 계속해서 모든 것을 해결해 주어야 한다.

반대로 과정지향적인 돌봄의 경우 피돌봄자가 자신의 과거 아픈 상처를 말할 때, 목회자는 함께 고통을 나눌 준비를 갖춘다. 목회자는 피돌봄자의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들어주면서, 그들의 문제와 상황에 맞춰 균형 잡힌 돌봄을 위해 노력한다.

목회자들은 이런 원리들을 이해하고 어떤 방법으로 성도들을 돌볼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결과지향적인 돌봄 방식으로 목회자가 성도들을 통제하면서 자신의 충고대로 따르기를 요구한다면 설사 원하는 결과가 나타나더라도 그것을 성공적인 돌봄이라고 할 수는 없다. 사람들은 누구든지 다른 사람이 자신을 통제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목회자들은 성도들의 사소한 이야기라도 귀 기울여 들으면서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공감하는 과정지향적인 돌봄을 추구해야 한다.

■나가는 말

사도 바울은 결과지향적이기보다 과정지향적으로 교회를 돌본 대표적인 사례이다. 고린도교회의 경우를 살펴보자.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고전 3:6~7).

사도 바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교회를 돌보며,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은 하나님께 맡기었고, 피돌봄자들이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도록 했다. 이러한 원리를 가지고 소통하면서 성도들을 돌보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좋은 결과들을 얻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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