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하게 꽃 피운 기독교 문화유산 정수를 맛본다

▲ 대구와 경북지역의 기독교 관련 유적들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사진은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내 대구시 유형문화재 제26호인 블레어 선교사 주택을 개조한 교육역사박물관 내부 모습.

한국의 기독교문화유산들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그 면면을 자랑스럽게 알릴 수 있다면.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해마다 수백만의 관광객과 순례자들이 찾아와 이 땅에 꽃피운 기독교 문화의 정수를 맛볼 수 있다면.

한국선교유적연구회는 이 같은 상상을 현실화하기 위해 여러 해에 걸쳐 차근차근 준비하는 중이다. 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는 서만철 장로는 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 정부대표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전국 각지의 교회 및 기독단체 그리고 관련 학계와 협력해 그 가능성을 점점 높여가고 있다.

이미 전남 전북 충남 등지에서 설명회 학술대회 현장답사 등의 사업 추진을 통해 세계문화유산 등재 가능성을 지닌 유적들을 발굴하여 목록화하고, 각각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밝히는 데 힘써왔다.

이번에는 영남지역에서는 처음으로 대구지역 기독교유적들을 탐구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10월 25일 대구서현교회에서 사업 취지를 설명하는 1차 세미나를 개최한 데 이어, 내년 봄에는 학술대회를 통해 더욱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사항들을 다룬다는 계획이다.

본지에서는 대구·경북지역의 대표적 기독교문화유산들과, 최근 새롭게 조명되는 기독교유적들을 소개하여 한국교회의 자랑스러운 보배들이 세계의 보배로서 위상을 높이는 희망의 길을 모색한다.

▲ 계명대 동산의료원 내 청라언덕에 위치한 선교사 주택, 대구경북 최초 교회인 대구제일교회 옛 예배당, 한센인들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한 대구 애락원, 1906년 설립된 중등교육기관인 계성학 아담관 전경. 이 건물들은 대구 기독교 역사와 정신과 궤를 같이 하는 소중한 유적물이다(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대구지역 기독교 유적들

▒ 동산의료원 선교사 주택(대구광역시 중구 달구벌대로 2029)

미국북장로교에서 파송된 의료선교사 우드브리지 존슨이 대구 약전골목 초가 한 채에 제중원을 세우고 대구·경북 일대 최초로 서양의술을 펼친 것이 동산병원의 효시가 됐다. 1921년 설립한 전도회를 통해 무려 147개의 교회를 개척했고, 무의촌진료와 의료봉사를 통해 그리스도 복음을 전파했다. 현재는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으로 불린다.

청라언덕에는 옛 선교사들의 가옥이 여전히 남아있다.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4호인 스윗즈 선교사 주택은 선교박물관으로, 제25호 챔니스 선교사 주택은 의료박물관으로, 제26호 블레어 선교사 주택은 교육·역사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다. 건물 주변에는 선교사들의 묘소인 은혜정원, 선교사들이 세운 대구 최초의 여학교인 신명학교, 기독교인들 주도로 만세행렬이 벌어진 삼일운동길, 존슨 선교사가 심은 사과나무 보호수 등이 있다.

▒ 대구제일교회 옛 예배당(대구광역시 중구 남성로 22)

베어드(한국명 배위량) 선교사가 경북지역 선교를 위해 대구읍성에 첫 발을 디딘 1893년 4월 22일을 대구제일교회는 설립일로 기념한다. 1896년 남성정에 교회당 부지를 마련하고, 이듬해 11월 아담스 선교사가 부임했다. 이후 대구·경북일대 교회들의 모태 역할을 했다.

1933년 벽돌로 신축한 예배당은 4년 후 종탑까지 세워지며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됐다. 건물 전체가 고딕양식을 띠면서 대구 일대 근대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대구 유형문화재 제30호로 지정됐으며, 지금은 교회역사관으로 사용 중이다. 대구제일교회가 청년선교를 위해 건립해, 삼일운동 물산장려운동 신간회운동 등 기독교민족운동의 거점 역할을 했던 구 교남YMCA 건물도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570호로 지정받았다.

계성학교(대구광역시 중구 달성로 35)

대구에 자리 잡은 미국북장로교 선교사들은 희도학교 대남학교 신명학교 등을 세워 근대교육을 시작한다. 아담스 선교사는 1906년 사택 행랑채를 교실로 삼고, 교사 이만집과 함께 27명의 학생들을 모아 가르치며 중학교 과정을 개설한다. 거룩한 빛을 비추라는 염원을 담아 계성(啓聖)이라고 학교 이름을 지었다.

이후 1911년 첫 졸업생을 배출한 계성학교는 기독교 복음과 민족운동을 위한 요람으로 역할을 하며, 계성중학교와 계성고등학교로 명맥을 잇고 있다. 현 계성중학교 구내에는 대구 유형문화재 제45호 아담스관, 제46호 맥퍼슨관, 제47호 핸더슨관 등 기념비적 역할을 하는 건물들이 남아있다. 특히 1908년에 건립한 아담스관은 영남 최초의 2층짜리 양관이라는 건축사적 의미도 지닌다.

애락원(대구광역시 서구 통학로 30)

대구 제중원에는 각양각생의 환자들이 몰려왔고, 그 중에는 한센병환자들도 있었다. 이들을 위해서는 별도의 시설이 필요했다. 의료선교사 아처볼드 그레이 플레처는 1909년 6월 27일 제중원 인근에 초가 1동을 마련하고 환자 10명을 수용하여 치료를 시작한다.

1914년에는 애락원교회가 설립되고, 한 때 대구나병원이라 불리던 병원 명칭도 1924년부터 대구애락원으로 정해진다. 설립자인 플레처 선교사는 43년간 한국 선교사로서의 시간 대부분을 애락원 사역에 쏟으며, 자신의 사재까지 털어 환자들을 위한 병동을 짓는 헌신을 보여주었다. 2013년에는 애락원 설립 100주년을 맞아 플래처 선교사의 후손들을 초청한 가운데 기념행사를 열었으며, 지난 역사를 보여주는 사료전시관을 개관한 바 있다.

▲ 안동교회 석조 예배당, 영덕 송천교회 예배당, 의성 중리교회 한옥예배당, 영천 자천교회 한옥예배당(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경북지역 기독교 유적들

▒ 안동교회 석조예배당(안동시 화성동 151)

미국북장로교 선교사 제임스 아담스(한국명 안의와)가 안동선교를 위해 파송한 매서인 김병우씨가 안동서문 바깥의 초가 5칸을 사들여 기독서원을 개설하고, 이곳에서 1909년 8월 8일에 강복영 등 7명이 모여 첫 주일예배를 드린 것이 안동교회의 시작이다. 안동 최초의 교회일 뿐 아니라 한국교회 기독청장년면려회(CE) 발상지라는 역사성도 지니고 있다.

1929년에 기공해 1937년 4월 6일 완공된 안동교회 석조예배당은 육중한 화강암을 하나씩 다져서 돌제단 형태로 쌓은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다. 최근 들어 이 예배당의 설계자가 일본에서 건축선교사로 활동하던 미국인 윌리엄 보리스였고, 시공자는 중국에서 온 화교 건축업자 왕공온으로 밝혀졌다. 문화재청으로부터 2015년 12월 16일 등록문화재 제654호로 지정됐다.

▒ 영덕 송천교회 예배당(영덕군 병곡면 내륙순환길 4)

송천교회의 기원은 1910년 11월 송천동 권씨 정자에서 차재명 전도사의 전도강연으로 권태동씨 등이 입신한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1914년 권찬영 선교사의 순행 중 송천교회라는 이름이 정해졌다고도 전한다. 점점 교세가 확장되자 하양에서 이사 온 김치운씨 집을 예배처소로 사용하다. 마침내1953년 미국장로교선교부 지원으로 현 예배당을 건축한다.

지금까지 ‘송천예배당’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이 예배당은 한국전쟁 이후에 건축되었음에도 전통 한옥예배당 구조를 상당부분 답습하고 있다. 장방형 33층 규모에, 현관 부분을 돌출시키고 지붕을 따로 씌운 ‘포치’를 가미했다. 지붕 아래쪽에는 목구조를 이용해 십자 형태를 표현하여 교회당으로서 정체성을 보여준다. 2006년 12월 4일 문화재청에서 등록문화재 제288호로, 올해 예장합동총회에서 한국기독교역사사적지 제10호로 각각 지정했다.

▒ 영천 자천교회 한옥예배당(영천시 화북면 자천3리 773)

자천교회 설립자는 경북 경주 출신의 권헌중 장로이다. 서당 훈장이었던 권헌중은 을미사변 당시 일제에 맞서다 피신하던 중 안의와 선교사를 만나 예수를 믿게 되고, 당초 대구로 이사하려던 계획을 바꿔 영천의 한 초가를 얻어 정착한다. 서당 겸 예배당으로 삼은 초가교회당에 점점 많은 사람이 몰리자 1903년에 기와를 얹은 한옥으로 새 예배당을 짓는다.

이 예배당은 8칸의 한옥 2채를 붙이는 겹집방식으로 건축되어 양쪽이 대칭을 이루는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으며, 내부에서는 지붕틀이 그대로 드러난 연등천장과 유교적 풍습에 따라 남녀석을 구분한 공간구분 등이 눈에 띈다. 예배당 옆에 권헌중 장로가 세운 또 다른 한옥건물인 구 신성학교는 현재 자천교회 교육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경북문화재자료 제452호로 지정된 데 이어, 1908년에는 예장통합총회로부터 한국기독교사적 제2호로 지정됐다.

▒ 의성 중리교회 한옥예배당(의성군 춘산면 금성현서로 1055-1)

1920년 3월 15일 박문호 전도사가 전도한 김한권씨 등이 빙계동서당에서 예배하며 빙계교회(현 중리교회)가 시작됐다. 한글을 깨치고 미신을 타파하며 복음을 전파한 중개교회는 1928년 한옥겹집 형태의 첫 예배당을 건축했다.

1938년 의성농우회 사건으로 많은 기독교인들이 탄압받던 무렵, 중리교회를 섬기던 권중하 전도사는 일제의 모진 고문으로 결국 순교한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일제는 중리교회 예배당을 곡식 타작장소로 만들고 천장을 훼손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하지만 성도들의 헌신으로 잘 보존된 이 예배당은 2016년 종탑과 함께 의성군 문화유산 제35호로 지정되었고, 이듬해에는 예장합동총회에서 중리교회를 한국기독교역사사적지 제5호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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