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기획] 사적지 지정 앞둔 총회 신앙유산 ⑪순교자 권중하 전도사와 의성의 6개 교회

권중하 전도사, 선교열매로 잇따라 설립된 여섯 교회 섬겨 … 신앙공동체 협력 다짐

가장 서쪽 산운교회에서 동쪽 끝 춘산교회까지는 13.4km, 가장 북쪽 효선교회에서 남쪽 끝 현리교회까지는 8.3km. 일명 ‘얼음골’이라 불리는 의성 빙계계곡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산재한 여섯 교회는 서로 차를 타고 10분 이내에 닿을 수 있을 정도로 지척에 있다.

가장 역사가 오랜 효선교회가 올해 112주년을 맞았고, 뒤이어 산운교회가 109주년, 가장 늦게 설립된 금천교회도 92주년을 맞았으니 함께 지내온 세월 또한 만만치가 않다. 현리교회는 내년에, 춘산교회와 중리교회는 내후년에 설립 100주년을 맞는다.

▲ 권중하 전도사의 마지막 사역지이자 그의 순교신앙을 계승하는 공동체인 의성의 여섯 교회. 금천교회 산운교회 중리교회 춘산교회 현리교회 효선교회.(사진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

경북 내륙에 위치한 의성군에서도 특히 산간오지에 속하는 춘산면 일대에 이토록 긴 역사를 가진 교회들이 적잖이 모여 있다는 사실은 퍽 이례적이다. 아마도 십자가 사랑의 복음이 더욱 소외된 이들, 더욱 낙후한 지역에서 쉽게 파고들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의성 최초의 교회인 비봉교회에 출석하던 여성도가 시집온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며 일으킨 교회가 바로 효선교회이고, 빙계교회(현 중리교회) 노방전도팀의 전도로 예수 믿게 된 세 가정이 씨앗이 되어 세워진 교회가 금천교회인 사례 등에서 알 수 있듯 이곳 교회들은 서로 끈끈한 역사적 관계로 맺어져 있다.

더욱이 지금은 각기 소속된 노회와 시찰이 다르지만, 예전 경북노회 시절부터 경안노회와 경중노회 시절을 함께 거치는 동안 오랜 기간 한 살림을 해왔기에 여태까지 상대 교회의 사정을 환하게 알고 교우들 간에 친분도 깊다. 그런데 이들의 형제애를 더욱 깊게 해주는 하나의 끈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권중하 전도사라는 인물이다.

미국북장로회 선교사들이 세운 대구동산병원은 전도회를 조직해 경북 각지에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세웠다. 특히 1920~1930년대는 의성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사역을 펼치던 기간이었다. 당시 권 전도사는 대구동산병원 전도회에서 권서인과 교역자로 사역하던 중이었다.

애덤스(한국명 안두화) 선교사의 주선으로 춘산지방에 부임한 권중하 전도사는 여섯 교회 중 옥정교회(현 춘산교회) 곁에 사택을 정한다. 대구경북기독교역사연구회 회장인 박창식 목사는 권 전도사가 옥정교회를 택한 것은 당시 가장 교세가 약한 곳에 힘을 실어주기 위함이었다고 해석한다.

▲ 효선교회가 설립 100주년을 맞아 건립한 기념비.

권서인 시절 이 마을 저 마을을 두루 다니던 부지런함으로 그는 여섯 교회를 열심히 돌보았다. 널찍한 길도, 마땅한 교통수단도 없었던 시절 자전거가 권 전도사의 사역에 큰 도움이 됐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하지만 권 전도사가 의성에 부임한 해는 일제의 탄압이 극에 달하며 제27회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가 신사참배를 결의한 1938년이었다. 더욱이 그가 소속된 경북노회는 권 전도사를 맞이한 회의석상에서 신사참배를 결의했다. 그 가슴 아픈 현장을 뒤로 하고 사역지로 달려간 권 전도사에게는 누구도 꺾을 수 없는 신앙의 결기가 존재했다.

일본경찰은 물론이고 동료인 한국인 목회자들로부터도 수많은 회유와 협박이 있었지만 권 전도사는 결코 굴하지 않았다. 결국 그를 신사참배 반대자로 낙인찍은 일제는 의성농우회 사건을 빌미로 본격적인 탄압을 가한다. 의성교회 정일영 목사, 대구의 유재기 목사, 평양의 주기철 목사 등 여려 교회지도자들과 함께 권 전도사도 의성경찰서로 붙들려가 고문을 당했다.

그에게 가해진 핍박은 집요하고 모질고 잔혹했다. 마지막 고문을 받고 나왔을 때는 혼자 힘으로 걸을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살점도 없이 뼈만 앙상해진 데다, 온 몸에 피멍이 들고 상처투성이였다. 그 참혹한 모습을 목격한 교우들은 통곡했다. 그렇게 권 전도사는 세상을 떠났다.

해방 후인 1945년 11월 6일 경북노회 제42회 정기회에서 당시 의성시찰장 박병훈 목사의 헌의로 권중하 전도사의 추도식 시행이 결의되고, 의성시찰회 주관으로 여러 성도들이 추모하는 가운데 예식이 거행됐다.

세월이 흘러 사람들의 어렴풋한 기억에만 남아있던 그의 존재를 다시 살려낸 것은 어린 시절부터 권 전도사에 대한 강렬한 추억을 간직해왔던 현리교회 출신의 윤두환 원로목사(대구효목교회)였다. 그의 오랜 노력이 결실을 맺어 2016년 제101회 총회에서 권중하 전도사의 이름은 순교자 명부에 정식 등재됐고, 중리교회에는 권 전도사의 순교기념비가 건립됐다.

이에 그치지 않고 이듬해 제102회 총회에서는 권중하 전도사의 수난 현장이었던 의성경찰서와 중리교회를 한국기독교역사사적지로 지정한 데 이어, 올해 제103회 총회에서는 권 전도사가 마지막으로 사역한 여섯 교회를 한국기독교순교사적지로 지정했다.

경북지역에서 유일한 신사참배 반대 순교자를 배출했다는 영예를 함께 간직한 여섯 교회가 2017년 권중하 전도사의 순교자등재 감사예배를 함께 치렀고, 조만간 열리게 될 사적지 지정식도 같은 마음으로 기다리는 중이다.

고난의 길을 기꺼이 걸어가며, 죽음 앞에서도 참된 진리를 따르는 신앙을 온몸으로 보여주었던 권 전도사의 삶이야말로 여섯 교회에게 가장 소중한 유산이다. 그 유산을 계승하기에 부끄럽지 않은 공동체가 되겠다는 다짐과 함께 여섯 교회의 역사는 다시 새로운 장을 연다.

▲ 중리교회에 건립된 권중하 전도사의 순교기념비.

단지 지금까지 찾아낸 기록들로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대구동산병원에서 ‘권서인(勸書人)’으로 사역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권서인이란 선교 초창기에 성경이나 쪽복음서를 배부하고 팔면서 기독교 복음을 전하는 일을 했던 이들을 가리킨다. 책을 파는 일을 한다고 해서 ‘매서인(賣暑人)’이라고도 불렸지만, 실제로는 책 판매보다는 전도사역을 주된 업무로 삼았다.

당연히 투철한 신앙적 기반과 충분한 학문적 소양을 가진 이들이 권서인으로 선발될 수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그는 누구보다 실적이 좋은 권서인이었으며, 동산병원 전도회의 제5대 교역자로 활동했다고도 한다.

그의 사람 됨됨이를 보여주는 기록이 효선교회에 남아있다. 의성의 여섯 교회를 섬기다가 농우회 사건으로 체포된 권중하 전도사를 어떤 강압으로도 굴복시키기 어렵다고 판단한 의성경찰서에서 그를 호송관도 없이 대구경찰국으로 이송한 일화를 당시 목격자들이 전한 것이다.

▲ 수난지인 구 의성경찰서.

사실상 도망쳐도 된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도 있었지만, 권 전도사는 제 발로 대구경찰국까지 찾아간다. 거기서 엉뚱한 사람을 자신으로 오인해 붙들고 있던 경찰관 앞에 본인의 신분을 밝히고 취조를 받는다. 그는 당당하게 고난에 맞부딪치는 용기를 지닌 인물이었다.

이후로도 1년간 이어진 잔인한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권 전도사는 결국 순교의 길을 간다. 장례를 치러야 했지만 일경과 친일파들의 눈초리가 무서워 다들 쉬쉬하던 중에, 함께 고초를 당했던 의성읍교회 오진문 장로가 고인의 시신을 자신의 고향 상주 함창에 안장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고인의 정확한 매장 위치를 아직까지 찾지 못하고 있다.

 

여섯 교회 목회자 “길 따라갑니다”

“권중하 전도사님의 순교신앙을 본받고 후대에 전수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입니다.”
고관규 목사(중리교회) 김현덕 목사(금천교회) 라영수 목사(산운교회) 안해호 목사(현리교회) 원용석 목사(춘산교회) 정권억 목사(효선교회) 등 의성의 여섯 교회 목회자들은 한국기독교순교사적지로 공동지정을 받은 데 대해 몹시 뜻깊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 권중하 전도사 순교기념비 곁에 선 여섯 교회 목회자들. 왼쪽부터 원용석(춘산) 라영수(산운) 김현덕(금천) 안해호(현리) 고관규(중리) 정권억(효선) 목사.

권 전도사 순교 후 일제에 의해 교회가 폐쇄되거나 예배당이 뜯겨나가는 아픔을 겪었다는 현리교회와 중리교회, 교회 설립일마다 역사를 되새기며 권 전도사의 순교행적을 되새긴다는 효선교회, 불교가 강세인 힘든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권 전도사로부터 배운 신앙의 길을 따라간다는 산운교회 모두가 고인으로부터 물려받은 영적 자산을 잘 키워왔다.

특히 춘산교회의 경우는 권 전도사를 파송한 대구동산병원 순회선교부 선교사들의 기도처로 시작한 역사에다, 농우회 사건에 권 전도사와 나란히 연루되어 함께 고초를 당한 정영섭 장로 등 적잖은 이야깃거리들을 가지고 있다. 금천교회도 의성의 ‘작은 예수’라 불리는 박정환 장로와 함께 권중하 전도사를 자랑스러운 믿음의 선구자로 기억한다.

사적지 지정식을 앞두고 교회별로 기념비 건립 등 여러 준비를 하고 있다면서 여섯 목회자들은 이를 동력으로 삼아 고령화, 이농현상 등 농촌교회의 어려운 현실에도 두려움 없이 맞서겠다고 힘주어 말한다.

“권중하 전도사님과 관련해 연구와 발굴에 학계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다루어주셨으면 합니다. 저희들도 열심히 뒷받침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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