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된 긍지의 역사찾기, 마무리가 중요하다

내년 10월 완공 목표, 19일 기공식 … 자부담 부분 해결과 자료 수집·제작 협력 시급

1893년 늦봄, 한 사내가 당나귀를 타고 한양에서 전주로 내려왔다. 한국에 온 외국인 선교사들을 돕고, 그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치는 어학선생 일을 하고 있던 정해원이었다. 그에게는 미국 남장로교선교사들로부터 당부 받은 특별한 임무가 있었다.

당시 한반도 남쪽, 그 중에서도 전라도는 복음이 닿은 적 없는 미개척지였다. 더욱이 동학농민혁명으로 인해 분위기가 심상치 않을 때였다. 서양선교사에 대한 경계와 배척 또한 감당해내기 쉽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한국인 사역자를 먼저 파송하는 궁여지책을 펼쳐야 했다.

정해원은 기대 이상으로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해냈다. 완산자락 은송리에 거처를 정한 그는 인근 장터를 누비며 사람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했다. 자신의 집으로 사람들을 데려와 성경을 가르치고 예배하기도 했다. 그해 가을에는 아예 가족들까지 데리고 내려와 사역에 전념했다.

이듬해 봄, 마침내 전주에 찾아왔을 때 선교사들은 세례를 받고 싶어 하는 한국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몇 가지 문답을 해보니 그들은 이미 기독교의 기본적 교리까지 충실하게 숙지하고 있었다. 개신교의 전주선교, 아니 호남선교의 첫 걸음은 그렇게 성공적으로 시작됐다.

▲ 2019년 전주시 중화산동에 완공될 전주시기독교근대역사기념관의 조감도. 미국남장로교에서 시작한 호남선교의 뿌리를 보여주는 공간이 될 것이다.

몇 년 후 완산에서 화산으로 거점을 옮긴 선교사들은 서문교회, 예수병원, 신흥학교, 기전학교 등을 차례로 세우고, 전주를 복음의 땅으로 변모시킨다. 복음은 점차 전라도 각지로 뻗어나갔고, 전주선교부에 이어 군산선교부 목포선교부 광주선교부 순천선교부가 차례로 세워진다.

지금도 전주를 비롯해 군산 익산 김제 등 전북의 주요 도시들은 대한민국에서 복음화율 상위권을 차지하는 지역으로 손꼽힌다. 전주서문교회에는 언제나 ‘호남의 모태 교회’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고, 함께 자라온 학교 병원들과 함께 삼일만세운동 등 겨레의 나아갈 길을 앞서 밝힌 존재들이었다는 자긍심이 가득하다.

하지만 전주의 교회들은 이 자랑스러운 역사를 사람들 앞에 충분히 펼쳐 보일 자리를 갖지 못했다. 전주서문교회가 역사관을 설치하고, 예수병이 의학박물관을 개관하고, 기독교대학인 전주대학교에서 호남기독교박물관을 자체 건립해 운영 중이지만 공간상 또는 자료상의 한계가 분명하다.

은송리 첫 예배당 터를 출발점으로 서문교회 엠마오사랑병원 선교사묘역 예수병원 신흥중고등학교 기전대학 등과 한일장신대 김제금산교회까지 잇는 순례코스를 조성하고, 기독교인 문화해설사를 양성하는 등 많은 노력도 있었다. 그러나 전주를 찾는 국내외 순례객들에게 모든 역사를 집약해 소개하며 여행의 방점을 찍게 만들어 줄 결정적 한 방이 부족했다.

이에 뜻있는 교계지도자들이 10여 년 전부터 전북기독교성지화사업추진협의회(이사장:원팔연 목사)를 구성하고 전주시기독교근대역사기념관 건립을 추진했다. 협의회는 모금운동을 전개하고, 학술세미나를 개최하며 지역적으로 기념관 건립의 공감대를 확산하기 위해 애를 써왔다.

그나마 기념관 건립에 중심축을 형성해야 할 지역교회들의 복잡한 내부사정 그리고 정치권의 이해부족으로 한 동안 지지부진하던 이 사업은 2014년 예수병원(원장:권창영)이 자신들의 소유지를 기념관 건립 부지로 내놓으면서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여기에 올 초 정부에서 이 사업에 대한 보조금 교부결정이 나면서 기념관 개관은 기정사실화 됐다.

드디어 올해 12월 19일 역사적인 기공식과 함께, 전주시 완산구 중화산동 1가 164-26번지 1158㎡ 부지에 지하 2층과 지상 4층, 연건평 824평 규모의 전주시기독교근대역사기념관 건축공사가 시작된다. 내년 10월까지로 예정된 이 공사에는 국비 24억을 비롯해 전라북도비 14억, 전주시비 14억, 그리고 자부담 28억 등 총 80억원이 소요된다.

오랫동안 협의회 운영위원장직을 맡아온 김상기 목사(신전주교회)는 “기념관은 지난 120여 년 동안 이루어진 전주와 호남 일대의 선교역사를 비롯해, 개신교가 우리 근대역사에 끼친 영향들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문화자원이 될 것”이라면서 큰 기대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기념관 건립에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사업이 급진전하면서 총 예산의 35%를 차지하는 28억원의 자부담 부분을 해결하는 것이 발등의 불이 됐다. 이미 몇몇 교회와 단체 등에서 거액의 성금을 기부했지만, 전체 비용을 채우기에는 아직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부이사장 황인철 원로목사(성화교회)와 회계 송병희 장로(전주침례교회)는 “자부담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미 책정된 국비지원도 철회되고, 사업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하며 “지역교회들과 각 교단 총회, 특히 전주선교의 뿌리를 이룬 장로교단들에서 깊은 관심을 갖고 협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건물이 완공된다 해도 그 안을 채울 내용들을 품격 있게 구비하는 것 또한 큰 과제이다. 이미 상당수의 역사자료들이 기성 박물관 등에 전시되거나 역사전문가 등의 소유가 된 상태에서 가치 있는 전시자료를 수집하고 제작하는 일은 쉽지 않는 작업이 될 것이다.

협의회 서기를 담당하는 배진용 목사(광성교회)는 “순회예배 실시와 각종 홍보활동을 통해 관련 유물과 사료들을 발굴하고 수집하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라면서 성도 개인 혹은 교회 차원에서 소장 중인 유물들의 적극적인 기증과 제보를 요청했다.(문의:010-6253-1752)
튼튼한 뿌리를 이루는 것이 선대들의 몫이었다면, 그 뿌리와 줄기를 통해 두고두고 열매 맺고 꽃을 피울 수 있도록 후대에 연결하는 일은 당대의 몫이다.

▲ 전주서문교회 종각.

기념관 맞은편에는 복음을 위해 헌신하다 이 땅에서 숨진 외국인 선교사들과 그 자녀들의 묘역이 조성되어있고, 은송리 초가집에서 시작해 이 지역 최초의 근대병원으로 성장한 예수병원의 역사를 보여주는 의학박물관이 운영 중이다. 특히 의학박물관에는 설립자 마티 잉골드 선교사를 비롯한 역대 원장과 선교사들이 사용한 진료기구들과 각종 문서 및 사진이 소장되어있다.

또한 예수병원 초창기 건물로 사용된 현 엠마오사랑병원과 그 주변에 산재한 선교사들의 사택 등도 좋은 볼거리이다. 당초 이 부근에 공존했던 한일장신대의 전신 한예정성경학교는 완주군 상관면으로 학교가 이전하면서, 서서평선교사기념비 등 여러 유물들도 함께 옮겨졌다.

기념관에서 전주천 방향으로 내리막길을 따라가면 선교사들이 세운 신흥학교와 기전학교의 옛 자취를 발견할 수 있다. 신흥중고등학교 교정에는 화재로 소실되고 남은 리차드슨기념관의 포치와 스미스강당 등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문화재와, 전주3·1운동기념비 등을 볼 수 있다. 현재 기전대가 사용 중인 옛 기전학교 교정에는 지금도 근대기의 정취가 충만하다.

▲ 예수병원 의학박물관.

이어서 다가교를 건너면 바로 전주서문교회를 마주친다. 본당 앞뜰에는 1907년 숨진 전킨 선교사를 추모하며 건립한 종각과, 일제강점기 목회자이자 독립운동가로 활약한 김인전 목사와 배은희 목사의 기념비가 관람객들을 마중한다. 백주념기념관으로 자리를 옮기면 서문역사관과 사료실 등에서 호남선교 120년 역사의 숨결을 차분히 만끽할 수 있다.

 

“호남선교 7인의 선발대 기억하라” 

전주기독교근대역사기념관의 첫 머리를 장식할 존재가 미국남장로교가 파송한 ‘7인의 선발대’가 되리라는 사실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 호남선교 7인의 선발대 모습.

공식적으로 한국을 찾아온 최초의 장로교회 선교사 언더우드는 1891년 안식년을 맞아 미국에 돌아갔을 때, 각지를 순회하며 선교보고와 강연을 한다. 언더우드를 통해 생소한 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에서 대해 소개를 받고, 가슴이 뜨거워진 젊은이들이 있었다.

매코믹신학교의 테이트(한국명 최의덕) 유니온신학교의 레이놀즈(한국명 이눌서)와 전킨(한국명 전위렴)이 그들이었다. 이들은 미국남장로교 외지선교부에 한국선교사 지원서를 내고, 언더우드의 물심양면 지원을 받아 선교사로 정식 파송을 받는다.

여기에 테이트의 여동생 매티, 레이놀즈의 아내 팻시 볼링, 전킨의 아내 레이번, 그리고 리니 데이비스까지 4명의 여선교사까지 합류해 ‘7인의 선발대’ 완전체가 꾸려진다. 1892년 9월 7일 파송식을 갖고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한 이들 중 리나 데이비스가 10월 17일 먼저 한국에 입국하고, 다른 6명은 11월 3일 제물포항에 도착한다.

선교사들간 예양협정을 통해 미국남장로교가 전라도를 담당하기로 함에 따라 이들은 전주를 시작으로 호남 곳곳에서 활동을 시작한다. 가는데마다 교회와 학교와 병원을 세우며, 복음을 전하고 치유의 손길을 내밀었다. 이들을 통해 사람들은 진리에 눈을 떴고, 새 세상을 만났다.

레이놀즈는 한글 성경번역을 전주에서 완수했으며, 전북과 충남 해안 일대에서 활약하던 전킨은 건강 악화로 전주로 옮겨 사역하던 중 순직한다. 전주선교사묘역에는 전킨과 그의 어린 세 자녀, 리니 데이비스의 묘소가 조성되어있다. 전주와 호남이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은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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