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라는 이 위기는 인간 스스로 만들어낸 것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매개체인 박쥐는 인간과 거리를 두고 살았던 존재다. 그러나 박쥐들의 서식지까지 파괴하는 과도한 개발로 박쥐를 통한 전염병 확산이 일어난 것이다. 코로나19뿐 아니라 에볼라 바이러스 등 많은 경우가 그렇다. 이렇게 따지고 들어가면 인류가 자주 접하는 자연재난이란 편리함과 경제성만 앞세운 무분별한 개발이 가져온 부메랑이 아닐 수 없다.기후환경의 변화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대처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1985년 세계기상기구
칼빈과 존 낙스는 절기를 지키는 것은 중세적이고 모형적이라는 이유로 반대했다. 그 대신 주일을 성실히 지킬 것을 권유했다. 이를 교훈삼아 우리는 지금 소위 사순절을 기억하기보다 종려주일과 고난주간을 보내면서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기념하고 있다.역사적으로 볼 때 루터는 외적 절기를 지키는 것에 대해 관용적이었다. 성상을 파괴하는 것보다 마음의 성상을 파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츠빙글리는 외적인 것들 즉 절기나 성상 등이 신앙의 본질을 흐리게 유혹하므로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흥미롭게도 스위스에서 츠빙글
‘전쟁은 치열한데, 군수품이 줄면 어떻게 하나요?’ 현장에 있는 선교사들의 고민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인 ‘선교의 과업’이 위태해지고 있다. 최근 한국교회도 코로나19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고, 교회마다 재정에 대한 긴축 정책을 펴는 가운데 가장 먼저 ‘선교 영역’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소식을 자주 듣는다. 실제로 파송교회나 협력교회가 후원을 중단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얼마 전에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한 선교사님이 갑자기 파송교회로부터 후원중지 통보를 받았다. 그 소식을 들은 대학생 자녀가 한국에 귀
목사의 사명은 영혼 구원, 사람 낚는 어부가 되는 것이다. 부정할 수 없는 제1의 사명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통해 그 사명을 이뤄가는가이다. 목표가 정해졌다면 다음으로 과정을 위한 수단과 방법이 우선 준비되어야 한다. 글을 다루는 능력이 바로 그것이다. 글쓰기가 목사의 사역에 유일한 수단은 아니지만 결코 배제되어서도 안 될 ‘목사의 기술’이다.목사는 성경의 사람으로 부름 받았다. 글로 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해석하는 일은 그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목사의 ‘일’이다. 성경교사로서 말씀을 읽고 연구하여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지키
1866년에 4366명의 교인 수가 집계되며 그 당시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로 알려진 런던 메트로폴리탄의 타버나클교회가 있다. 찰스 스펄전 목사님이 이 교회에서 목회할 때 필자가 수요예배에 참석한 적이 있다. 앞서 본 웨스트민스터 채플의 썰렁한 모습과 달리 예배당이 교인들로 꽉 차 있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스펄전 목사님은 어느 주일 성도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을 향해서 가슴이 뜨거운 사람 열두 명만 있다면, 이 런던의 삭막하고 고독한 환경을 기쁨이 충만한 곳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나 43
건강가정기본법을 개정하고 건강가정 정책을 폐기할 때는 법률과 정책에 심각한 문제가 있거나 국민 대다수가 원할 때만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런데 최근 국회에서 ‘건강가정기본법’을 개정하겠다는 법안이 무려 8개나 제출되었다. 그 중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과 남인순 의원의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은 국가가 건강가정의 정책과 방향을 폐기하도록 하는 것이어서 정책적・입법적으로 결코 수용할 수 없는 개정안이다.첫째, 개정안은 다양한 가족형태를 보호한다는 명분 하에 ‘건강한 가정생활의 영위와 가족의 유지 및 발전’이라는 법률의 목적 규
‘덜 쓰고 더 나누는’ 기독교 환경윤리 실천 앞장 섭시다“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이사야 11장 9절)심각한 지구 환경현대인은 생태학적 위기 속에서 살고 있다. 인간의 유일한 삶의 공간인 지구 환경이 훼손되어 공기, 물, 땅이 오염되고 있다. 또한 유한한 자원이 개발로 인해 고갈되고 있다. 각종 배기가스로 인해 공기가 오염되고, 이산화탄소나 메탄과 같은 온실가스 배출로 해수면이 상승하고, 기상 이변들이 일어나고 있다.환
프레어 어게인(Prayer Again)으로 교단의 기도운동이 다시 시작된다.프레어 어게인은 기도운동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교단의 정체성과 존재가치를 확고히 하는 목적을 갖고 있다. 성경의 진리를 있는 그대로 지키는 교단의 정체성, 개혁신앙의 계승과 전파의 사명을 가진 존재가치를 더욱 확고히 하겠다는 것이 프레어 어게인이 추구하는 방향이다. 3월 7일 출범식을 앞두고 프레어 어게인을 기획한 소강석 총회장과 진행위원장 최남수 목사(의정부 광명교회)를 만났다. 두 사람 모두 프레어 어게인에 거는 기대가 컸다. 소 총회장은 “기도를 대체할
2021년 2월 5일은 한국CE가 10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입니다. 1921년 2월 5일 안동교회 제58회 당회에서 안대선 선교사를 중심으로 권중윤(회장), 권연호 등과 함께 한국 최초 기독청장년면려회(CE)가 조직되었습니다. 이를 기점으로 1921년 9월 제10회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교회마다 CE를 조직키로 가결하였습니다. 당시 암울한 시대적 상황 가운데서도 한국CE는 “그리스도와 그 교회를 위하여 나의 마음을 주님께 바칩니다”라는 주제로 당면해 있는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젊음을 바쳐 노력하고 힘써 왔습니다.가장
2020년 2월 17일, 학원복음화협의회 캠퍼스청년연구소 정기포럼을 마치는 날, 대구에서 1차 대유행을 촉발한 31번 확진자가 검진되었다. 이후 지난 1년간 한국교회는 신천지, 8·15 광화문 집회, BTJ 열방센터, IM 선교회에 이르기까지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맞이하면서 지난 1년간 캠퍼스 선교현장에서는 계획하였던 사역을 대폭 수정하거나 연기, 취소해야 했다. 처음 맞이하는 상황이라 현실을 정확히 판단하고 적절한 대책을 수립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최근 코로나19가 진행되는
총신대 정상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정이사 체제로의 전환이다. 그것을 위한 후보 추천이 완료되어 최종 결정을 앞두고 있는 중에 총신대교수협의회가 입장문을 냈다. 학교 정상화의 중요한 시점에 교수협의회의 이런 입장 발표는 그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정치적인 태도로 비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더욱이 입장문 내용을 보면 그동안의 아픈 상처로 인한 것이라고 십분 이해하더라도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우선 입장문에서 교수들은 마치 ‘전지’한 듯, 즉 누가 정치적이고 누가 정치적이지 않은 듯 선을 긋고
총신대학교 법인이사 체제가 절차를 밟고 있다. 그런데 이사 후보 추천 이후 온갖 말들이 난무하다. 누군 자천이고, 누군 타천이니. 누군가 추천받으려고 뒤에서 애쓰거나 학생대표를 앞세워 추천받았다느니. 또 다른 누구는 추천될 것을 알고 미리 고사하기도 했고, 추천 명단이 알려진 후 이런저런 이유로 후보를 사퇴했다는 갖가지 소문이 퍼지고 있다.이런 현상이 이사 구성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것임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다소 불편한 소문이 들리더라도 학교를 든든히 재건하는 과정에서 지불해야 할 비용으로 생각하는 것이 옳다. 더 나아가
총신 재단이사 후보(이하 이사)로 26명이 추천됐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는지 또는 향후 보완해야 할 장치가 없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첫째 탕평책의 이사 추천이 되었는가. 탕평책(蕩平策)은 인재를 고르게 등용하여 당파 간의 정치 세력에 균형을 꾀하던 정책이다. 금번 이사 추천에 일정 세력이 선별적(選別的)인 이사 추천을 주장하며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켰다. 이렇게 되면 탕평책의 이사가 세워질 수 없다. 예를 들어 성공한 혁명 세력은 나머지는 민주적 절차에 맡기고 본연의 신분으로 돌아가는 것이 마땅하다. 그 혁명군이 자기들
페르시아 시대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 에스라는 율법에 익숙한 학자였다. 성경은 그를 ‘학사’ 에스라로 소개한다. 학사는 영어 scribe, secretary로 번역할 수 있는데 단순히 문서를 기록하고 필사하는 사람이 아니다. 글을 다룰 줄 아는 전문가이자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갖춘 사람이다. 그 옛날에 글을 다룬다는 것은 지금 우리가 아는 그 이상의 능력이었다. 글은 생각을 정리하고 가르치는 수단, 나랏일을 보살피고 계획할 정도로 사고에 능한 소수자의 도구였다.구약성경은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
필자가 서독에서 미군으로 복무할 때였다. 어느 날 정복 차림으로 친구와 식당을 갔는데 옆자리 손님이 나에게 “야파나?”(일본인이냐?)라고 물어서, “노. 코리안”이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다시 “차이나?”라고 물어, 이번에는 “노. 아메리칸”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는 영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떠났다. 미군 정복을 입고 있었지만 그 손님은 내 얼굴만 보고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질문을 한 것이다.훗날 재미교포 2·3세의 정체성 문제로 목회 상담을 할 때면, 나는 종종 내 경험과 이사야 43장을 인용했다. “야곱아 너를 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