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은 목사의 독서대학]

페르시아 시대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 에스라는 율법에 익숙한 학자였다. 성경은 그를 ‘학사’ 에스라로 소개한다. 학사는 영어 scribe, secretary로 번역할 수 있는데 단순히 문서를 기록하고 필사하는 사람이 아니다. 글을 다룰 줄 아는 전문가이자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갖춘 사람이다. 그 옛날에 글을 다룬다는 것은 지금 우리가 아는 그 이상의 능력이었다. 글은 생각을 정리하고 가르치는 수단, 나랏일을 보살피고 계획할 정도로 사고에 능한 소수자의 도구였다.

구약성경은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스 7:10)고 전한다. 공동번역본은 같은 구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에즈라는 야훼의 법을 깨쳐 몸소 실천할 뿐 아니라, 그 법령들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에스라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들은 읽고 쓰며 율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일을 하나님이 맡긴 사명으로 여겼다.

목사의 글쓰기는 방법과 기술의 추구 이전에 ‘글쓰기가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도구요, 예배’라는 태도 정립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목사의 글쓰기는 방법과 기술의 추구 이전에 ‘글쓰기가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도구요, 예배’라는 태도 정립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기독교교육을 이야기함에 있어서 유대인의 교육은 우리의 비교대상, 때로는 이상처럼 언급되곤 한다. 유대인들이 온 세상에 보여준 성취와 그 특별함은 우리뿐 아니라 비종교인들에게도 관심의 대상이다. <유대인을 만든 책들>의 저자 애덤 커시 교수는 유대인 창의성의 비결이 무엇인가 묻는 기자의 질문에 답한다. “유대인에게는 문해력(literacy)·연구·지성을 중시하는 오랜 전통이 있다. 유대인은 읽고 쓰기에 관심이 많다. 그들은 글을 통해 유대 문화를 표현해왔다. 정치나 예술 등 관심이 다양한 영역으로 분산된 이슬람이나 기독교계와 달리 유대인은 읽기와 쓰기에 집중했다. 유대인은 그들의 나라가 없었고 지어야 할 건물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대인에게는 책이 그들을 표현하는 주요 수단이었다.”

애덤 커시 교수는 책과 독서, 글쓰기를 유대문화를 구성하는 일부로 보지 않았다. 그것 자체가 방법과 기술을 넘어 유대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뼈대라 보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그가 평가한 기독교의 모습, 읽기와 쓰기에 집중하지 않는 모습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읽기는 물론이거니와 글쓰기는 더욱 그렇다.

글쓰기의 방법과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글쓰기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다. 글쓰기에 대한 태도가 결정되면 방법과 기술의 문제는 시간의 문제다. 목회자에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행위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목사의 설교는 기도와 성경읽기로 시작하여, 글로 정리되고 다듬어지는 과정을 거쳐, 말로 선포된다. 그렇다면 목사에게 있어 글쓰기는 분명 예배의 일부다. 목사의 글쓰기는 ‘글쓰기가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도구요, 예배’라는 태도 정립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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