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6:17에서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고 말한다. 이 구절은 핵심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라는 두 문장이다.여기서 ‘괴롭게’라는 단어는 내면적인 고통이나 슬픔을 의미하는 것으로(마 26:10, 눅 11:7), 갈라디아교회가 유대주의자에게 미혹되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바울의 마음 속 고통을 보여준다. 따라서 ‘괴롭게 말라’는 이단자들에 의하여 성도들이 미혹되지 않기를 바라는 바울의 호소라고 할 수 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바흐가 들리는 곳”(6·25한국전쟁 중 외신기사) “이곳에는 공황도, 폭동도, 혐오도 없다. 절제와 고요함만 있다.”(2020년 미국 ABC방송)두 외신기사는 같은 도시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과연 어디일까? 맞다. 그 도시는 바로 대구다. 6·25의 폐허 속에도 대구는 여유를 잃지 않았고, 2020년 코로나19의 광풍 속에서도 대구는 고난을 의연하게 잘 견뎌내는 중이다.그런데 6·25전쟁 중에 바흐를 들을 수 있었던 곳은 어디였을까? 그곳은 바로 1951년에 문을 연 향촌동의 음악 감상실 ‘르네상스’였다.
요셉은 형들에 의해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다가, 보디발 아내의 모함으로 감옥까지 갔지만 결국 나중에는 바로의 총애를 받는 총리가 되었다. 그런데 이 결과만 보고 형들이 동생을 종으로 팔아먹은 행위를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형들의 악한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해를 끼쳤는데 그 사람이 그 일로 심기일전하여 성공한 것을 놓고, 내가 잘못한 것마저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억지로 주장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요셉은 형들의 잘못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고, 자신을 두려워하는 형들을 오히려
필자에게는 세 명의 자녀들이 있다. 셋 다 중학교는 계성중학교를, 고등학교는 남산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이 두 학교는 대구선교의 살아있는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계성중학교는 1906년 계성학교라는 이름으로 대구선교의 아버지 아담스 선교사에 의해 세워졌고, 남산고등학교는 1907년 부루언 선교사의 아내 부마태 선교사에 의해 신명학교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다.물론 이 학교들이 세워지기 전 1900년 아담스 선교사가 세운 대구 사립초등학교의 효시인 ‘야소교 대남소학교’도 있고, 1902년 부마태 선교사가 세운 ‘신명여자소학교’도 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하시면서 자신을 ‘길’이라고 단언하신다. 그런데 원문에 나오는 관사의 의미를 이 구절에 반영하면 여기서의 ‘길’은 아버지께로 갈 수 있는 수많은 길들 중에 하나가 아니다. 오직 하나뿐인 ‘그 길’을 가리키는 것이며, 그 길이 바로 예수님 자신이심을 강조하신 것이다.길을 의미하는 헬라어 ‘호도스’를 영어로는 way, road, way of life(생활 방식) 등으로 번역한다. 고대 헬라문헌에서는 사람이나 차량이 다니
현재 대구의 가장 번화가는 동성로다. 동성로는 대구의 중심에 있고, 가장 발달한 상권을 갖고 있으며, 젊은이들의 거리로 명성을 누린다. 하지만 대구에는 동성로(東城路)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서성로(西城路), 남성로(南城路), 북성로(北城路)도 있다.거리의 이름을 보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성의 존재이다. 이 거리의 원래 자리에는 성이 있었다. 대구읍성이 대구 원도심을 둘러싸고 있었던 것이다.‘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명언이 있다. 로마제국은 식민지를 정복하면 그곳에 길을 닦았다. 가장 강력한 군대를 소유했던 로마는
우리 삶에서 가장 슬픈 일이 사랑하는 가족의 사망이라면, 가장 기쁜 일은 새로운 가족의 출생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생명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수많은 일을 경험하면서 인생을 배우지만, 그 일들을 크게는 슬픔과 기쁨으로 구분할 수 있다.성경에는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는 사건들이 곳곳에서 나온다. 요한복음 8장에는 간음의 현장에서 붙잡혀 온 여인에 관한 기사가 나온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는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5절)라고 질문했을 때, 주님은 그들에게 ‘너희 중
민수기 22장에서 하나님은 거짓 선지자 발람을 나귀를 사용하셔서 꾸짖으셨다. 매일 자기가 타고 다니던 나귀의 입이 열렸을 때, 발람은 얼마나 놀랐을까, 또한 그렇게 하신 하나님의 방법이 얼마나 기이하고도 황당했을까? 이처럼 하나님은 중대한 순간에 동물들까지 사용하시는 놀라운 분이시다. 선지자 엘리야에게는 까마귀를 통해 먹을 것을 공급하지 않으셨던가.부루언 선교사(한국명 부해리)는 1899년 10월 26일부터 일제에 의해 추방된 1941년까지 대구·경북지역에서만 사역을 한 ‘대구경북 선교의 아버지’라고 불릴만한 선교사다. 그는 25세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코로나19’의 추이를 보면서 ‘하나님의 진노’로 해석하여 회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다. ‘코로나19’의 여파는 중소기업과 소규모 자영업에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입혀 경영자나 종업원들의 생계를 위협할 뿐만 아니라 전국 미래자립교회 목회자들과 해외 선교사들도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게 하고 있다.그들의 안타까운 호소를 듣고 있자면 국가 보조금 정도로 도저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겠지만, 그나마 조금은 위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속히 치료약이 개발되어 모두가 안심하고 정상적인 생활로 복귀할 수
일반적으로 나무들은 사람보다 수명이 길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업적을 후세의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원할 때, 그리고 ‘내가 여기에 왔다’는 것을 알리고 싶을 때 나무를 심는다. 사람은 죽어도 나무는 그 자리에 서있을 것이기 때문이다.조선시대 마지막 왕 순종도 그랬다. 1909년 조선의 마지막 황제 순종은 이토 히로부미 총독과 함께 경상도지역 대구, 부산, 마산을 순행했다. 그해 1월 7일 순종은 대구에 도착해 기생들의 공연을 관람한 후, 달성공원에 이토 히로부미와 함께 일본 수종(樹種)인 가이즈카 향나무를 각각 한 그루씩 심었다.
사도 요한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과정을 요한복음에 기록하면서 제자들 각자의 성격을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묘사하였다. 그중 빌립과 나다나엘에 대해 살펴보자. 빌립은 예수의 부름을 받은 후 나다나엘을 찾아가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고 전했다. 이것을 보면 빌립의 성격이 적극적이고, 나다나엘과 보통 친한 사이가 아닌 것을 알 수 있다.빌립의 말을 듣고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고 반문하니, 빌립은 나사렛 예수에 관해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가는 길…’, ‘또 하루 멀어져 간다….’ 한 소절만 들어도 마음이 아련한 이 가사들은 대구 출신 가수 김광석의 노랫말이다. 흔히 김광석을 영원한 가객이라 하고,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가수로 여긴다. 20대는 ‘이등병의 편지’를, 3~40대는 ‘서른 즈음에’를, 노인이 되어서는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즐겨부르니 말이다.대구 수성교 옆에는 70년 된 방천시장이 있고, 그 곁에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이하 ‘김광석길’)이 있다. 2019-2020년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고, 매년
요즘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교회가 공권력의 감시대상이 되었다. 우리는 함께 모여 예배하는 것과 온라인으로 예배하는 것에 대한 논쟁에 앞서, 교회의 본질적 목적과 사명이 어디에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어느 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묻자 베드로는 기다렸다는 듯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대답했다. 주님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요즘 심심찮게 듣는 말이다. 4월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에 봄은 먼 듯하다. 그만큼 대한민국과 대구는 큰 고난을 통과하는 중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떠오르는 시가 하나 있다. 바로 그 유명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다. 시 전체를 다 알지 못한다고 해도, 그 첫 구절만 들으면 “아하!”하며 무릎을 치게 된다.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 시를 지은 이는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민족 시인이자 저항 시인 이상화이다. 이상화가 태어난 곳은 지금의 대구서문시장 부근이라고 한다. 그
내 아버지께서는 시편 126편 5~6절의 말씀으로 다섯 형제를 가르치셨다. 아버지는 우리가 성공하려면 ‘3개의 액체, 즉 피와 눈물과 땀을 흘려야 한다’고 하시며 영국 처칠 수상의 연설문 중에 한 대목을 인용하곤 하셨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처칠은 전시 내각을 조직하고 국회에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연설을 했다.“내가 바칠 수 있는 것은 피와 눈물과 땀밖에 없다. 우리가 이런 각오로 일을 한다면 세상에 안 될 일이 없다. 피를 흘릴 용기와 결심만 있다면 세상에 무서울 것이 하나도 없다.”그런가 하면 철학자 볼테르는 “정열은 돛을 부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