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태 목사의 오목조목 대구골목 이야기]

존슨 선교사가 청라언덕에 심은 사과나무의 3세목. 100년 넘게 많은 사람들을 이롭게 하며 사랑받는 존재이다.
존슨 선교사가 청라언덕에 심은 사과나무의 3세목. 100년 넘게 많은 사람들을 이롭게 하며 사랑받는 존재이다.

일반적으로 나무들은 사람보다 수명이 길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업적을 후세의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원할 때, 그리고 ‘내가 여기에 왔다’는 것을 알리고 싶을 때 나무를 심는다. 사람은 죽어도 나무는 그 자리에 서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마지막 왕 순종도 그랬다. 1909년 조선의 마지막 황제 순종은 이토 히로부미 총독과 함께 경상도지역 대구, 부산, 마산을 순행했다. 그해 1월 7일 순종은 대구에 도착해 기생들의 공연을 관람한 후, 달성공원에 이토 히로부미와 함께 일본 수종(樹種)인 가이즈카 향나무를 각각 한 그루씩 심었다.
이 향나무 두 그루는 그 후 100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달성공원에서 큰 그늘을 드리우며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다. 공원의 정문에서 보았을 때, 우측의 것이 순종, 좌측의 것이 이토 히로부미가 심은 나무라고 한다.
그런데 기념식수를 하고 9개월 뒤인 10월 26일에 이토 히로부미는 안중근 의사의 총에 죽었고, 다음해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일에 순종은 조선의 마지막 황제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조선의 마지막 황제와 악명 높았던 조선의 총독은 사라졌지만, 그들이 심은 달성공원의 향나무는 여전히 살아서 아픈 역사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순종이 순행오기 10년 전인 1899년에 대구에 심겨진 또 다른 나무가 있다. 대구 의료선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존슨 선교사가 미국에서 가져와 청라언덕을 비롯한 동산의료원 주변에 심은 사과나무 72그루이다. 이는 우리나라에 심은 최초의 서양 사과나무였고, 그 이후로 대구를 ‘사과의 도시’로 각인시키는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존슨 선교사가 심은 최초의 사과나무는 이미 수명을 다했고, ‘대구시 보호수 1호’로 지정되었던 2세 나무 역시 세월을 비켜가지 못하고 2018년 6월에 고사하고 말았다. 지금 청라언덕에는 존슨 선교사가 심은 사과나무의 손자 나무가 자라고 있다. 2세 나무는 작은 그루터기의 흔적만 남아있다.
열매를 맺어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자신의 사명을 끝내고 나서 사과나무는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사과나무를 심은 선교사들과 사과나무는 그런 면에서 서로 많이 닮았다.
나무 자체에는 아무런 죄가 없다. 그럼에도 순종과 이토 히로부미가 심은 달성공원 향나무는 지금까지도 왜색(倭色)이 깊다고 비난을 받는다. 반면에 존슨 선교사가 심은 청라언덕 사과나무는 100년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으며, 방문객들을 맞이하는 중이다.
한 나라의 왕이 심은 나무보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았던 하나님의 종이 심은 나무가 더 큰 사랑을 받는 게 놀랍지 않은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항상 이러할 것이다. 그래서 이 험한 세상 속에서도 우리는 다시 힘을 내어 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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