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종율 목사의 사진묵상-성령의 열매]

요즘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교회가 공권력의 감시대상이 되었다. 우리는 함께 모여 예배하는 것과 온라인으로 예배하는 것에 대한 논쟁에 앞서, 교회의 본질적 목적과 사명이 어디에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어느 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묻자 베드로는 기다렸다는 듯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대답했다. 주님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처음으로 ‘교회’라는 단어를 언급하셨다.

특히 교회를 ‘내’ 교회라고 말씀하신 주님은 자신이 교회의 주인이심을 밝히는 한편, 교회의 목적과 사명 앞에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분명하게 선포하셨다(참조, 마 16:13~18). 교회를 가리키는 영어 ‘church’는 ‘주께 속한’ 혹은 ‘주의 집’을 뜻하는 헬라어 ‘퀴리아코스’에서 왔다.

마태는 ‘에클레시아’(시민의 공적 목적을 위해 밖으로 불러낸 자들의 모임)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 교회의 목적을 강조하고 있다. 요한은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요 1:9)라고 하면서 세상에서 교회(그리스도인)의 역할을 알려준다. 마태는 또한 성도들에게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면서 ‘빛’의 삶을 강조한다(참조, 마 5:13~16).

가끔 교인들 중에서도 ‘교회가 왜 이 모양이냐!’라고 언성을 높이면서 부정적인 표현을 서슴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먼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공격하지 마시고, 허물 많은 나를 욕하세요’라고 한 후, 나중에 개인적으로 상담을 통해 그가 자신의 문제를 풀도록 돕는 게 좋다. 예수를 영접한 성도는 ‘세상의 빛’이 되어 그 빛을 발해야 하는데, 그 안에 ‘빛 된 예수’께서 계시지 않기 때문에 빛을 발하지 못한 채 어둠 속에 있으므로 그런 말을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요한은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1 2:9)라고 했고, 야고보는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 2:26)고 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리스도인이 빛을 발하지 못하면 그 심령에 기름(성령)이 없으므로 그의 영혼은 죽은 것과 다름없는 상태가 된다. 그런 교인이 있다면, 불쌍히 여기어 교회의 목적과 성도의 사명을 바로 알려 주면서 성령 안에서 행하도록 권면하고, 그가 빛 가운데 행하기를 기도해야 한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