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종율 목사의 사진묵상-성령의 열매]

내 아버지께서는 시편 126편 5~6절의 말씀으로 다섯 형제를 가르치셨다. 아버지는 우리가 성공하려면 ‘3개의 액체, 즉 피와 눈물과 땀을 흘려야 한다’고 하시며 영국 처칠 수상의 연설문 중에 한 대목을 인용하곤 하셨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처칠은 전시 내각을 조직하고 국회에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연설을 했다.

“내가 바칠 수 있는 것은 피와 눈물과 땀밖에 없다. 우리가 이런 각오로 일을 한다면 세상에 안 될 일이 없다. 피를 흘릴 용기와 결심만 있다면 세상에 무서울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런가 하면 철학자 볼테르는 “정열은 돛을 부풀게 하는 바람이다. 그것은 때로 배를 침몰시키지만, 바람이 없으면 배는 나아가지 못한다”라고 했다.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신앙생활에서도 성공하려면 이들 세 액체와 함께 내가 받은 사명을 이루려는 정열이 필요하지만, 그것으로도 부족한 것이 한 가지가 더 있다. 그것은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잠언 16:1)는 말씀처럼 내가 계획을 세우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일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인 것을 알고, 믿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솔로몬은 왕으로서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모든 것이 자기 계획대로만 되지는 않는 것을 깨닫고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잠언 16:3)고 고백한다. 또한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언 16:18)는 말씀을 덧붙여 후대에 교훈한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마감하는 마지막 십자가 위에서 그가 참 사람으로 흘릴 수 있는 세 액체를 다 쏟으셨다. 그가 흘리신 피와 눈물과 땀의 결과로 나 같은 죄인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영광의 길이 열렸다. 주님께서는 내게 최고의 선물을 주신 것이다.

주님께서 흘리신 눈물은 죄인을 그의 품(용서)에 안아 주시는 사랑의 표현이다. 바울은 빌립보서 3장 18절에서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라며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세상에서는 누군가 성공했을 때 ‘운이 좋았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말도 있다. 그리스도인은 운이나 요행을 바라서는 안 된다. 내가 남보다 더 많이 땀 흘린 만큼 삶의 보람과 기쁨을 얻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야 한다. 막연히 좋은 일이 오기만 기다리는 자에게는 희망이 없다.

성경은 믿음으로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며 자기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가 기쁨의 수확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한다. 자신의 사명에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며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스스로 한번 돌아보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 12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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