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중심사상에 집중하며 삶의 변화 촉구하라강해설교의 아버지 해돈 로빈슨의 설교를 소개합니다. 본 설교는 주로 중년층으로 구성된 교회에 초청되어 했던 설교로서, 미국의 최고 설교자를 소개한 책에 실린 설교입니다. 본문의 흐름을 잘 보여주면서도 한 가지 중심주제가 선명하고 삶으로 촉구하는 것까지 균형 잡힌 강해설교의 모델을 보여줍니다.●제목 : 중년에 불어 닥친 다윗왕의 위기(King David’s Midlife Crisis)●본문 : 사무엘하 11장●출처 : ‘Ten Great Preachers: Messages and Inte
성경을 올바로 드러내는 착실한 주해자가 되어야 한다강해설교 핵심은 성경 본문의 중심주제 바르게 찾는 것 … 진리 말씀과 청중의 삶 적용 균형 이룰때 설교는 빛이 난다저는 1998년 가을 미국 보스톤에 위치한 고든콘웰신학교에서 구약성경신학 석사과정으로 유학을 시작했습니다. 설교학 공부를 위해 먼저 성경신학적 기반을 준비하려 모교를 선택했지만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강해설교의 ‘그 이름’이라 불리는 해돈 로빈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개강예배가 시작되었고 설교자는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청중에게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말씀의 권위 드러내고 청중의 거룩한 삶의 변화 도와라대중매체의 중요성이 강조될수록 설교 전달에 대한 관심도 늘어갑니다. 최근 설교학은 한결같이 성경의 권위에 대하여 약화된 모습을 보이지만, 청중을 사로잡는 전달법에서는 강점을 보여줍니다. 이제부터 강해설교와 그 중심인물들을 소개합니다. 강해설교라는 이름은 성경적 설교라는 말과 같은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강해설교의 오해강해설교란 한마디로 지금 예수님이 이 자리에 계신다면 주어진 본문으로 선포할 말씀을 대신 전하는 것입니다. 설교자란 예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사람
복음은 자아성취와 자기계발 위한 근거자료 아니다번영신학 조장하는 조엘 오스틴, 하나님을 부와 행복주는 주체로 전락시켜 … 성경 사라진 설교는 기독교와 결별조엘 오스틴에 대한 평가는 미국에서 극단적으로 나눠집니다. 인간에 내재된 자기계발을 통해 최대의 행복한 인생으로 인도하는 설교자, 긍정의 힘으로 삶에 활력을 심어주는 희망 전도자, 또는 심판의 하나님이 아니라 축복의 하나님을 드러낸 목회자로 인정하기도 합니다. 한편에서는 번영신학을 조장하는 자기계발자, 그리스도의 복음을 파괴하는 자, 십자가 없는 기독교를 만드는 자로 비판하기도 합
삶을 격려하는 위대한 메시지 쉽고 간결하게 전하라 최근의 설교학자들에게 배울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이 전달법이라고 했습니다. 전 세계 설교자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한 사람의 전달자를 꼽는다면 조엘 오스틴이 될 것입니다. 그의 설교 내용은 성경을 믿고 설교하는 시각에서는 경계하고 거부해야 할 점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설교 전달은 어떤 목회자라 해도 배울 점이 있을 것입니다.조엘 오스틴의 바람은 미국을 넘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으며, 한국에도 상륙한지 오래입니다. 조엘 오스틴이란 이름은 한 사람의 목회자를 넘어 기독교의
답을 던지지 말고 청중과 함께 이야기로 풀어가라‘설교의 플롯’ 강조한 유진 로우리, 시간적 흐름 속에 설교를 놓아 … “갈등구조 제시하고 더불어 진리 찾아가야”●제목 : 역류(Swept Upstream)●본문 : 마가복음 14장 1~10절●설교 : 유진 로우리●출처 : Richard L. Eslinger, A New Hearing: Living Options in A Homiletic Method에서 발췌여느 때의 파티가 아니었습니다. 좋은 음식, 유쾌한 대화 그리고 마냥 즐거운 시간이 아니었죠. 죽음으로 치닫는 어두운 이별을 앞에
크래독의 상상력은 청중 태우고 본문 여행하는 타임머신 … 설교자는 말씀에 근거, 명확한 결론 제시해야●제목 : 출석을 부를 때(When the Roll Is Called Down Here)●본문 : 로마서 16장●설교 : 프레드 크래독●출처 : Mark Barger Elliott, Creative Styles of Preaching설교본문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여러분의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는다고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흥미로운 본문이 아닙니다. 이름이 쭉 열거되어 나오는데요. 그것도 이상한 이름입니다. 설교학 수업에 학
진리의 말씀 성경, 역동적으로 듣고 반응하게 하라프래드 크래독:귀납적 설교를 향하여새로운 설교학을 주도한 핵심 인물 두 사람을 소개하려 합니다. 크래독과 로우리입니다. 영미권의 12대 설교가 중 한사람으로 뽑힌 프래드 크래독은 본래 신약학자로 출발했으며, 에모리 대학 신학부에서 신약과 설교학을 가르쳤습니다. 크래독이 전통적인 설교형식을 비판하고 나온 첫 인물은 아니었지만 에스링거가 크래독의 책 을 두고 설교학에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을 일으켰다”고 지적한 것처럼 크래독으로 인해 새 설교학이란 말이 유행되기 시작했습
좋은 전달법은 배우고 잘못된 성경관은 경계하라 청중 배려와 다양한 설교형식은 강단에 역동성 부여 … 정작 ‘예수를 설교하지 않는’ 치명적 오류는 주의해야 새로운 설교학은 본문의 내용을 강조하는 전통적 설교에서 벗어나 설교전달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핵심이라 했습니다. 새로운 설교학 운동은 한결같이 기존 설교전달의 한계를 지적하고 새로운 방법을 시도했습니다. 전통적인 설교가 주로 답을 전달하는 명제적인 설교이기 때문에 청중은 일방적으로 들어야 하는 수동적인 자세를 지적한 것입니다. 전하는 설교자와 듣는 회중이 본문을 두고 대화가 일어나
전통적 설교 한계 넘어 설득력 있는 ‘전달’ 추구한다 기고를 시작하면서을 통해 목회자님들과 성도님들을 뵙게 되어 참으로 기쁘고 영광스럽습니다. 부족한 사람에게 귀한 지면을 통해 설교에 대한 글을 소개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기독신문 관계자님들께 마음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특별기고 연재 부탁을 받고 목회에 전념하는 상황인지라 망설여졌지만 보잘것없는 사람을 세워주고 은혜를 입게 한 우리 교단을 생각하면 부족한 대로 순종함으로 조금이라도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려 합니다.저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타락한 본성을 따라 살다 영원한 죽음에 이르지 말고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영원한 자아성취에 이르러야 지금까지 여덟 번에 걸친 글을 통하여 영적 전쟁터에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세계관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설명했다. 이제 우리가 살아가는 영적 기상도를 설명함으로써 전체 기고를 마무리하고자 한다.우리는 세계관의 전쟁터에서 살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는 세계관의 영적 전쟁터에 던져진 존재들이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아니하든 영적 전쟁에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하나님 존재를 해체하고 인간을 창조자 자리로 격상시키려는 포스트모더니즘 전제는 자기 덫에 걸려 이전 글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세계관적 도전이 무엇인지를 설명하였다. 이번 글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주장하는 전제가 참인지를 점검하고자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주장하는 전제가 참이 아니라 거짓이라면, 그 전제 위에 세워진 모든 주장들은 거짓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어떤 경우에도 거짓에 선동되어서 자신의 삶을 망치는 불행한 일은 없어야 한다.포스트모더니즘이 주장하는 첫 번째 원리는 ‘자신이 세상의 창조자’라는 주
포스트모더니즘 삶의 원리는 ‘순간적 감정 만족’ …뱀의 유혹처럼 매혹적이지만 창조주 자리에 자신을 대체할 뿐 이전 글에서 죄로 뒤틀린 세계관을 리모델링할 이유를 설명했다. 이번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세계관적 도전은 무엇인지를 설명하고자 한다.오어와 카이퍼가 심각하게 받아들였던 세계관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심화되고 더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세계관적 도전은 모더니즘이라는 무신론적 세계관이 약간 변종되어 나타난 포스
하나님께 순종하는 세계관으로 거듭난 성도의 재창조 사명은 아름다운 창조세계 조화를 지켜나가는 것 이전 글에서 성경적 세계관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설명하였다. 이번에는 아담 이후에 태어나는 모든 인간은 기본적으로 죄로 뒤틀린 생각의 틀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뒤틀린 세계관을 근본적으로 리모델링해야 된다는 사실을 설명하고자 한다.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시고, 하나님을 대신해서 창조세계를 경작하고 관리하라는 청지기적 사명을 맡기셨다. 그리고 창조하신
하나님과 직접 교제할 수 있는 청지기 인간의 삶의 목적은 피조물과 함께 하나님 영광과 기쁨에 참여하는 것 이전 글에서는 어떤 이유로 기독교세계관이 체계화되었는지를 설명하였다. 이번 글에서는 성경적 세계관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자 한다. 앞에서 “세계관은 사물을 보고 듣고 생각하는 틀” 혹은 “사물을 바라보는 안경”이라고 정의하였다. 이런 관점에서 “성경적 세계관은 성경에 의해서 형성되고 점검된 세상을 보고 듣고 생각하는 틀 혹은 안경”이다.하나님은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