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은 자아성취와 자기계발 위한 근거자료 아니다

번영신학 조장하는 조엘 오스틴, 하나님을 부와 행복주는 주체로 전락시켜 … 성경 사라진 설교는 기독교와 결별

류응렬 목사 ● 와싱톤중앙장로교회 담임● 고든콘웰신학교 객원교수● 전 총신대 교수
류응렬 목사 ● 와싱톤중앙장로교회 담임 ● 고든콘웰신학교 객원교수 ● 전 총신대 교수

조엘 오스틴에 대한 평가는 미국에서 극단적으로 나눠집니다. 인간에 내재된 자기계발을 통해 최대의 행복한 인생으로 인도하는 설교자, 긍정의 힘으로 삶에 활력을 심어주는 희망 전도자, 또는 심판의 하나님이 아니라 축복의 하나님을 드러낸 목회자로 인정하기도 합니다. 한편에서는 번영신학을 조장하는 자기계발자, 그리스도의 복음을 파괴하는 자, 십자가 없는 기독교를 만드는 자로 비판하기도 합니다.

조엘 오스틴이 기독교계에 위험을 주는 것은 그가 전하는 복음이 성경이 말씀하는 복음과 다르다는데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여들고 설교에 감동을 받고 행복을 누리는 것이 그가 전하는 말씀이 진리에 근거해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에서 벗어나는 순간 설교도, 설교자도 모든 권위를 상실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전무한 설교
조엘 오스틴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확무오한 성경에 대한 신앙을 고백합니다. 레이크우드교회 홈페이지를 보면 “우리는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이며 오류가 없으며, 우리의 신앙과 생활 그리고 교리를 근거할 수 있는 권위를 지닌 것을 믿습니다”라고 밝힙니다. 래리 킹과의 인터뷰에서도 “나는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된 말씀임을 믿습니다”라고 명확하게 고백합니다.

그러나 조엘 오스틴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은 고백적 차원에 머물 뿐, 그의 설교는 전혀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설교제목부터 설교내용까지 실제의 삶과 직결되는 내용으로 채워집니다. 어떤 설교를 해도 본문과 아무런 상관없이 다음과 같이 긍정의 메시지로 진행합니다.

“저에게 약속이 주어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이제까지 다른 사람을 축하했으니 이제 자신을 축하할 때입니다. 여러분이 빛을 발할 때입니다. 운명의 다른 단계로 접어들 때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꽃피우기를 원하는 씨앗이 있습니다.”

성경의 인용도 잘 나타나지 않지만 인용할 때도 본문의 문맥과 관계없이 필요한대로 이용합니다. 본문을 통해 말씀하는 하나님의 의도에 대한 고려는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빌립보서 1장 6절,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는 말씀을 인용하며 하나님이 주실 풍성한 축복을 강조합니다. 본문은 바울이 감옥에서 쓴 말씀이며, 어떤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복음사역을 성취해 나갈 하나님을 찬양하는 말씀합니다. 감옥에 잡혀 있다가 결국 순교의 제물로 드려지는 바울에 대한 상황과 무관하게 원하는 대로 긍정의 메시지를 뽑아냅니다. 에베소서 4장의 말씀에서 구원의 시간이 가까웠다는 본문에서 하는 설교입니다.

“구원의 시간이 가까웠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어느 때보다 꿈이 가까웠다, 시간이 다가왔다는 말입니다. 어느 때보다 필요한 사람을 만날 시간이 가까웠다는 말입니다. 마지막 단계까지 왔다 말입니다. 치유, 돌파, 승진, 공급이 바로 눈 앞에 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보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걱정하지 마세요. 승리가 바로 눈 앞에 와 있습니다.”

성경의 의미를 벗어나 원하는 대로 본문을 인용하는 것이나, 본문의 주제와 아무런 관련 없이 유익한 말로 청중을 감동시키는 것은 기독교 설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설교가 지니는 권위는 설교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 본문에 있기 때문입니다. 설교자는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도를 찾고 그것에 근거하여 청중에게 설교해야 합니다.

서부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마이클 호튼 교수는 조엘 오스틴의 설교를 두고 “나는 그의 신학을 ‘솜사탕 복음’이라고 칭하고 싶다. 그의 주요 메시지는 ‘하나님은 멋지시고, 당신도 멋지다’는 것이며, 그의 설교는 음악을 듣는 것 같다. 그는 성경을 ‘포춘 쿠키(운세를 알려주는 메시지를 담은 과자)’처럼 사용한다. 마치 ‘이것은 당신에게 일어날 겁니다. 내일 이런 횡재를 만나게 될 겁니다’라고 속삭인다. 하지만 성경 어디에도 이런 메시지는 없다”고 비판합니다.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
조엘 오스틴의 가르침과 설교에는 기독교 설교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등장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라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진 사건과 죽음을 이기고 영원한 산 소망이 되신 부활이 핵심을 이룹니다. 하지만 조엘 오스틴은 십자가의 복음을 버리고 오직 인간의 희망과 꿈을 심는 메시지로 강단을 채웁니다. 그에게 복음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아니라 남들을 위해 사랑을 베풀고 축복의 씨앗을 뿌리는 선한 삶으로 대체됩니다.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강조되지 않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을 가르치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 아니라고 밝힙니다.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사랑의 하나님을 보여주고 축복을 선포하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고백합니다. 인간의 죄성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을 외면하고 긍정적 사고와 축복을 쏟아내는 복음은 반쪽 복음(sub-gospel)이 아니라 반 복음(anti-gospel)에 가깝습니다. 성경에 존재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것을 위해 존재하는 신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예수를 전하지 않는 것은 단지 성경을 외면하는 것뿐 아니라 결국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관점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래리 킹과의 인터뷰에서 예수님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힙니다.
래리 킹: 유대인과 이슬람교도들은 어떻게 되죠? 그리스도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으면요?
조엘 오스틴: 누가 천국에 가는지에 관해서는 말하는 것이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래리 킹: 그리스도만을 믿어야 한다고 믿는다면 그들은 잘못된 거 아닌가요?
조엘 오스틴: 그들이 잘못된 사람들이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아버지와 인도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들의 종교에 대하여 잘 모릅니다. 그래도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잘 모르겠지만 그들의 신실함을 보았습니다.

유대인과 무신론자들이 천국에 갈 수 있는지에 대한 래리 킹의 질문에 즉답을 피하는 그는 몰몬교도 기독교라고 주장해서 물의를 빚은 적도 있습니다. 조엘 오스틴은 진정한 신앙을 판단하는 성경적인 기준도 없을 뿐 아니라 단지 좋은 사람으로 모든 것을 수용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번영신학에 물든 복음
조엘 오스틴에게 주어지는 가장 거센 비난 가운데 하나가 번영신학을 조장한다는 비판일 것입니다. 번영신학의 핵심은 하나님이 건강과 부와 행복을 준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어둠은 잊어버리고, 미래의 걱정을 버리고, 오늘 긍정적 판단을 하라. 그러면 행복은 자신의 소유가 된다는 말로 요약됩니다. 번영신학은 기독교와 성경이라는 간판을 걸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복음은 사라지고 인간의 행복과 건강 또는 물질적 풍요를 위한 지침서와 고백서로 채워져 있습니다.

조엘 오스틴은 번영신학을 설교를 통해 퍼트리는 전령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책과 설교에 단골로 반복되는 단어는 풍요로움, 축복, 챔피언, 건강, 꿈, 행복, 승진, 치유, 기대, 영웅, 승리자, 번영, 성공 등 입니다. 번영의 신학은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이 더 좋은 것을 주신다는 희망의 신학과 연결됩니다. 희망의 신학은 하나님에게 근거를 두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에 근거합니다. 자신의 믿음이 상황을 타개하고 현실을 변화시켜 더 나은 미래를 가져 온다는 것입니다.

희망을 품는 자체가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주님 안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의 꿈을 품어야 합니다. 죽음을 앞에 둔 사람에게, 실망으로 낙심에 빠져 고통 받는 사람에게 그의 책을 소개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의 가르침이 자존감을 고양시키는 유명 강사나 동기부여를 위한 전략을 다루는 책이라면 좋겠지만, 문제는 그가 목사라는 것이고 교회라는 이름으로 설교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복음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비기독교적인 가르침을 남발하며, 즐겨 사용하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권위를 상실한 채 강연의 목적을 위한 근거자료로 사용되고 있을 뿐입니다.

자아성취와 자기계발
레이크우드교회는 예배를 시작하면서 “자신 안에 숨겨진 챔피언을 발견하라”(Discover the Champion in You)는 노래로 시작하고, 조엘 오스틴의 설교나 사역을 소개하는 영상 앞에 이 구절을 반복해서 소개합니다. 2004년에 세계적인 돌풍을 몰고 온 책 <긍정의 힘>(Your Best Life Now: 7 Steps to Living at Your Full Potential)에서, “나는 비전을 키우는 사람이다. 나는 건강한 자아상을 일군다. 나는 생각과 말의 힘을 발견한다. 나는 과거의 망령에서 벗어날 것이다. 나는 역경을 통해 강점을 찾는다. 베푸는 삶을 살라. 나는 언제나 행복하기를 선택했다” 등의 7가지 삶의 방향을 제시합니다.

2007년도에 출간된 <잘 되는 나>(Become a Better You: 7 Keys to Improving Your Life Every Day)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잘 될 것이다.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다. 나는 좋은 습관을 가진 사람이다. 나는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나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나는 비전이 있는 사람이다. 나는 믿음으로 산다” 등의 7가지 실천 덕목을 제시합니다. 성경에 대한 가르침없이 현실의 어둠과 난관을 극복하여 자신의 최고를 계발하고 성취하는지에 집중합니다. 가끔 제시되는 성경적인 배경이나 구절도 자신의 주제를 위해 이용할 뿐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세상에서 마음껏 누리고 행복을 노래하며 살아가는 것, 무엇이 잘못일까요? 신자라고 매일 고민하고 가난과 싸워야 하고 세상을 등지는 인생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의 가르침의 내용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지지를 받지도 못하고, 성경을 제멋대로 사용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조엘 오스틴의 가르침은 기독교의 딱딱한 가르침에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들 그리고 아메리칸 드림을 추구하는 많은 사람에게 아무런 저항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찬송되어져 왔습니다. 삶의 최고 목적은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행복해지는 것이라는 주장은 비기독교인들에게도 박수를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왜곡되게 해석하고 그리스도와 십자가가 사라진 복음 그리고 번영신학과 자아성취를 위한 강연으로 전락된 그의 설교는 기독교 설교와는 결별을 보여줍니다.

순례자로 살아가는 지상의 그리스도인에게 진정한 행복은 상대적인 우위를 획득함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실 그 자체에서 얻어진다는 사실이 강단에 울려 퍼져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없는 강단은 이미 기독교 강단이라 할 수 없습니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