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복음으로 세상에 답하다 ⑥ 죄로 뒤틀린 세계관을 리모델링하라

하나님께 순종하는 세계관으로 거듭난 성도의 재창조 사명은 아름다운 창조세계 조화를 지켜나가는 것

▲ 최재호 목사
·대구성일교회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 Ph. D.(변증학)

이전 글에서 성경적 세계관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설명하였다. 이번에는 아담 이후에 태어나는 모든 인간은 기본적으로 죄로 뒤틀린 생각의 틀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뒤틀린 세계관을 근본적으로 리모델링해야 된다는 사실을 설명하고자 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시고, 하나님을 대신해서 창조세계를 경작하고 관리하라는 청지기적 사명을 맡기셨다. 그리고 창조하신 모든 세상을 보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평가하셨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세상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왜 이렇게 변질되었는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이 죄로 오염되었고, 인간의 생각의 틀이 죄로 뒤틀렸기 때문이다. 죄로 타락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죄로 뒤틀려진 인간의 생각의 틀을 창조 때의 원래 모습대로 바로 잡아야 한다. 이 작업이 죄로 뒤틀린 세계관을 리모델링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

하나님께서 6일 간의 창조를 마치신 후에 그 모든 창조세계를 보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31)고 평가하셨다. 하나님의 평가는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창조자 하나님의 만족이다.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대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졌다는 창조결과에 대한 만족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피조물들의 기쁨이다. 하나님의 만족 속에는 피조물들의 기쁨과 만족도 포함된다. 따라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평가하신 창조세계는 창조자의 기쁨과 피조물들의 행복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 세계의 모습이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는 직접적인 창조행위는 6일 만에 완성되었다고 하더라도, 창조의 대리자로 세우신 인간을 통한 간접적인 창조는 계속된다. 하나님이 의도하신 계획과 실제로 아담이 수행하는 창조의 행위에는 조금도 불협화음이 없었다.

아담이 동물들의 이름을 짓는 장면은 하나님의 감독 아래서 아담이라는 대리자를 통한 창조행위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 준다(창 2:19). 아담이 이름을 짓고 하나님은 아담의 행위에 전적으로 동의함으로써 동물들의 이름이 결정되었다. 아담이 부르는대로 동물들의 이름이 결정되었다는 것은 아담이라는 대리자를 통해서 계속되는 창조행위가 하나님의 의도에 맞게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창조자 하나님과 그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창조의 대리자 사이에 완벽한 소통과 아름다운 협력관계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선하게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계의 모습이다.

사탄의 파괴적 공격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청지기적 사명을 맡기실 때, 그에게 허용하신 것과 금지하신 것이 있다. 아담에게 에덴의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도록 허용하시면서 한 가지 금지사항을 주셨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

단순히 금지하신 것이 아니라 ‘반드시 죽으리라’는 엄중한 벌칙까지 덧붙여서 금지하셨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이런 강력한 금지사항을 주신 의도는 아담에게 창조의 대리자로서 창조의 주인인 하나님께 지속적으로 충성하고 순종하게 하기 위한 언약적 안전장치로 주신 것이다. 아담은 자기에게 주어진 재량권의 범위 안에서 자기의 모든 재능과 역량을 총동원하여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들이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경작하고 관리하는 사명을 수행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들짐승 중에서 가장 간교한 뱀이 하와를 유혹하여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도록 만들었다. 뱀은 두 가지로 하와를 유혹하였다. 하나는 선악과를 먹어도 결코 죽지 않는다고 하나님의 금지를 정면으로 부정하였다(창 3:4). 다른 하나는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매력적인 욕심을 불어넣었다(창 3:5). 뱀이 하와에게 불어넣은 강력한 욕심이 그의 생각과 행동을 완전히 지배하기 시작하였다. 뱀이 하와에게 불어넣은 욕망의 눈으로 선악과를 바라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창 3:6)하였다.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는 강력한 욕망이 하나님의 금지 규정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게 만들었다.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은 목적어가 주어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반역을 일으킨 것이다. 아담의 불순종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창조의 주인과 대리자의 관계가 아니라, 창조의 주인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경쟁관계로 변질시켜 버렸다. 하나님과의 경쟁관계에 돌입한 아담에게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경작하고 관리하는 대리자로서의 사명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치열한 투쟁과정에서 자신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아담의 불순종은 하나님께서 선하게 창조하신 세계의 아름다운 조화를 깨버리고, 모든 관계를 자기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적 경쟁관계로 변질시켜버렸다. 첫 번째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하나님의 대리자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치고, 숨어버렸다(창 3:10).

두 번째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투쟁적 경쟁관계로 변질시켜버렸다.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한 아담과 하와의 관계가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창 3:16)이라는 투쟁적 경쟁관계로 변질되었다.

세 번째는 아담의 불순종은 인간과 세상의 관계도 처절한 투쟁적 경쟁관계로 타락시켜 버렸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 3:17). 간단히 정리하면, 아담의 불순종은 ‘보시기에 심히 좋은’ 세상을 처절한 전쟁터로 타락시켰다. 창조자의 계획과 청지기에게 부여된 경작의 사명은 사라지고, 오로지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한 투쟁과 경쟁만 남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회복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하신 세계가 죄로 인하여 파괴되는 것을 그대로 버려두시지 않는다. 죄의 영향력이 확대되지 못하도록 억제하신다. 뿐만 아니라 죄로부터 완전한 치료와 회복을 계획하셨다. 하나님의 구원은 창조세계의 전 영역에서 죄로 뒤틀려진 모든 타락한 질서를 창조 때의 원래 모습으로 회복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은 아담을 능가하는 새로운 대리자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타락한 세상을 회복하기 위해서 범죄한 아담을 대신해서 자기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회복은 타락한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는 차원을 넘어서 창조의 전 영역을 구원하는 것이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0).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타락한 창조질서를 회복하는 하나님의 구체적인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이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 1:20). 아담의 불순종은 하나님이 선포하신 대로 죽음을 대가로 요구한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아담이 범한 죄의 형벌인 죽음이라는 대가를 십자가에서 지불하심으로써 모든 창조질서를 죄로 인한 타락으로부터 구원하시고 회복하셨다.

하나님의 구원은 타락의 원인을 제거하여서 타락의 모든 결과들을 바로잡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은 인간의 마음에 뿌리박고 있는 죄와 불신앙을 제거하여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바꾸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에서 순종하는 것으로 바뀌는 것이 ‘거듭남’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사람들은 생각의 틀이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에서 순종하는 것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에, 죄로 인하여 타락한 세상을 회복시키는 재창조의 대리자로서의 사명과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투쟁적 경쟁관계로 뒤틀려진 모든 관계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름다운 협력과 조화의 관계로 회복시켰다. 뿐만 아니라 거듭난 자들에게는 “화목하게 하는 직분”(고후 5:18)을 주셨다. 이 직분을 수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도구로 “화목하게 하는 말씀”(고후 5:19)을 주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재창조의 사역은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는 원리와 연결된다.

결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로 인하여 뒤틀린 창조세계의 모든 질서가 회복되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창조의 대리자로서의 지위와 청지기적 사명도 회복되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계시의 말씀도 회복되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생각의 틀’에서 ‘순종하는 생각의 틀’로 거듭난 성도들에게 주어진 재창조의 사명은 죄로 인하여 타락한 창조세계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때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회복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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