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진리의 말씀으로 강단을 숨쉬게 하라 ③ 새로운 설교학을 주도하는 사람들
[특별기고] 진리의 말씀으로 강단을 숨쉬게 하라 ③ 새로운 설교학을 주도하는 사람들
  • 류응렬 목사
  • 승인 2019.02.11 17: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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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말씀 성경, 역동적으로 듣고 반응하게 하라

▲ 류응렬 목사
▲ 류응렬 목사

프래드 크래독:귀납적 설교를 향하여

새로운 설교학을 주도한 핵심 인물 두 사람을 소개하려 합니다. 크래독과 로우리입니다. 영미권의 12대 설교가 중 한사람으로 뽑힌 프래드 크래독은 본래 신약학자로 출발했으며, 에모리 대학 신학부에서 신약과 설교학을 가르쳤습니다. 크래독이 전통적인 설교형식을 비판하고 나온 첫 인물은 아니었지만 에스링거가 크래독의 책 <권위 없는 자처럼>을 두고 설교학에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을 일으켰다”고 지적한 것처럼 크래독으로 인해 새 설교학이란 말이 유행되기 시작했습니다.

1971년 출판된 크래독의 <권위 없는 자처럼>에 대해 유진 로우리는 “북미의 설교학에 새로운 시대가 탄생했다. 그가 설교학 세계에 전혀 새로운 폭탄을 던진 것은 아니지만 그 정교한 형식으로 크래독은 설교학에 새로운 정신을 불어넣었다”고 평가했습니다. 설교학계에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나 폭탄이라는 말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설교학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는 의미입니다. 그 혁명은 전통적인 연역적 설교를 거부하고 귀납적 설교를 주창한 것입니다.

크래독은 기존의 설교가 연역적이고 권위적인 사고에서 발생되는 인지적이고 명제적인 설교라고 비판합니다. 설교자가 객관적인 답을 들고 설명해가기 때문에 설교자와 본문 그리고 청중의 교감을 빼앗아 버립니다. 전통적인 설교방식을 거부하고 새로운 설교를 제시한 그의 설교기법은 설교의 형식, 목적, 적용 부분의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청중의 경험과 역할을 강조하는 귀납법적 설교를 주장합니다. 연역적 설교란 일반적 진리에서 적용으로 옮겨가는 것을 가리킨다면, 귀납법적 설교는 구체적인 사건에서 시작하여 일반적인 진리로 결론을 이끌어 가는 설교방식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답을 가진 교과서처럼 연역적으로 살아가지 않고, 답을 찾아 탐구하는 귀납적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연역적 설교방식은 청중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죽음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모든 사람은 죽습니다”하는 일반 원리로부터 시작하면 청중의 동의를 얻기 어렵고 오히려 따분하게 만들기 쉽습니다. “어제 김 형제가 입원했는데 지금 죽음을 앞두고 있습니다”라고 구체적인 예를 보일 때 청중은 죽음을 피부로 느끼고 말씀에 집중하게 됩니다. 똑같은 진리를 강조한다면 귀납적 전달은 긴장과 청중의 공감을 일으키는 좋은 전달방식이 될 것입니다.

둘째, 설교자의 목적은 성경의 진리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청중의 경험에 호소하여 마음에 정화가 일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 내용을 직접 설명하는 것은 성경을 잘 아는 사람에게는 지루하게 들릴 것이고, 성경에 무지한 사람에게는 생소하게 들릴 것이기에 효과적이지 못하다고 주장합니다. 청중과의 교감을 위해서 본문을 그대로 드러내지 말고 청중의 경험을 강조하면서 간접 전달방식으로 진행하여 긴장과 흥미를 고조시키자는 주장입니다.

크래독의 설교신학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도 경계해야 할 점도 여기에 있습니다. 설교의 목적은 하나님의 진리를 그대로 드러내고 삶으로 연결하여 듣는 사람에게 거룩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성경본문을 그대로 전할 필요가 없다는 그의 주장은 문제이지만, 진리의 말씀이라도 일방적인 설명에 그칠 것이 아니라 삶에 스며들도록 만들어 나의 이야기로 들려지게 하는 것은 귀담아 들어야 할 교훈입니다.

셋째, 설교자는 명령이나 적용은 약하게 하고 설명만 할 것을 주장합니다. 설교자가 본문을 기반으로 결론을 내리고 적용함으로 청중의 참여를 막아서도 안 되고, 마음을 불편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결론을 내리고 적용하는 것은 청중에게 맡김으로 청중을 적극적으로 설교에 동참시키게 하라고 주장합니다.

귀납적 설교의 핵심인 ‘설교자는 제시만 할뿐 결론과 적용은 청중에게 맡겨라’는 주장이 성경적 설교를 지향하는 설교자에게는 철저히 배격해야 할 부분이기도 합니다. 설교란 진리의 말씀으로 청중의 변화를 지향하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물론 진리가 없다면 적용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임을 그대로 믿는 설교자라면 진리에 근거하여 반드시 삶으로 적용해야 합니다. 찰스 스펄전이 “적용이 시작될 때 설교가 시작된다”는 말은 설교를 가장 잘 보여주는 한마디입니다.

유진 로우리:이야기식 설교의 플롯을 향하여
크래독의 설교기법을 더욱 발전시킨 사람이 미국 세인트 폴 신학교에서 설교학을 가르친 유진 로우리입니다. 본문의 흐름을 역동적으로 전달하는 그의 설교를 듣고 있으면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설교에 빨려들게 만드는 뛰어난 설교자입니다. 로우리도 기존의 명제적 진리나 주제를 전달하는 설교의 목적을 부인하고 청중의 경험을 창조하는 것을 설교의 목표로 삼습니다. 논리만 세우는 설교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없다는 것입니다.

크래독이 귀납적 설교의 대명사라면, 로우리는 내러티브 설교의 대명사로 알려진 사람입니다. 사람들의 경험은 긴장의 연속인 내러티브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설교도 삶의 구도를 따를 것을 강조합니다. 설교란 설교자와 청중 사이에 일어나는 커뮤니케이션으로서 ‘시간 속에 일어나는 사건’으로 규정하고, 크래독처럼 설교의 목적을 청중의 체험에 둡니다. 이를 위해 로우리는 본문 분석보다 청중의 현실문제를 분석하여 청중과 교감이 일어나는 설교를 통하여 그 문제를 해결할 것을 강조합니다. 로우리의 체험에 관한 강조는 객관적 진리의 말씀에 집중하기보다 개인주의적 성향을 보이게 됩니다.

로우리는 <이야기식 설교 구성(Homileti-cal Plot)>에서 모든 설교가 자신의 ‘설교학적 플롯’을 따를 것을 주장합니다. 즉, 내러티브 형식 혹은 이야기식 형식을 지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극작가가 연극 스토리를 들려주듯이 줄거리(플롯)가 설교의 요체가 된다는 말입니다. 설교자가 관심 가져야 할 것은 주제나 개념이 아니라 플롯이라고 강조하는 로우리는 내러티브 설교방법을 위한 다섯 단계를 제시합니다.

첫째, 평형을 뒤집어라. 설교자는 처음 2~3분만에 청중이 체감하는 필요에 기초하여 문제를 제시할 것을 강조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문제가 청중의 마음에 지금까지 지니고 온 평형감각을 깨트릴 수 있도록 제시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엘리야는 지금 도망가고 있습니다. 실패해서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성공했기 때문에 도망가고 있습니다.” 이런 설교를 들으면 청중은 왜 성공하고도 도망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지니게 됩니다. 의문이 호기심을 자극하여 청중의 관심을 모은다면 설교 시작은 성공적으로 된 것입니다.

둘째, 모순을 분석하라. 설교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단계로 설교자는 왜 이러한 모순이 삶 속에 일어나는지 자세히 설명합니다. 엘리야가 성공한 후에도 도망해야 하는 이유를 분석하는 것입니다. 이 단계에서 설교하는 이유가 나타나기 때문에 청중은 그들의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 것인가에 대한 기대감을 지니게 됩니다. 로우리는 예화를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본문 자체를 긴장이 있는 내러티브 형식으로 구성해 설교함으로 본문이 가진 흐름을 살려내는 설교가 어떤 것인지 잘 보여줍니다.

셋째,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라. 이 단계에서 설교자는 문제 해결을 위해 복음으로부터 실마리를 제시합니다. 설교자는 예상되는 대답보다 예기치 못한 해결을 제시함으로 청중에게 놀라움과 호기심을 증폭시켜야 합니다.

넷째, 복음을 체험하게 하라. 지금까지 내러티브 형식으로 설교를 진행해 온 설교자는 이제 복음을 체험하는 사건으로 일으켜야 합니다. 서두에 제시된 인간의 모순에 대한 대안으로 청중에게 복음을 체험시켜야 한다는 말입니다.

다섯째, 결과를 예측하라. 설교자는 복음을 통하여 인간의 문제를 살펴본 후 어떤 것이 기대될 수 있는지 묻습니다. 복음을 체험하고 난 후 청중은 인간의 모순에 관하여 스스로 답을 예상하게 됩니다. 로우리도 크래독처럼 결론이나 적용을 맺는 것을 거부하고 청중의 손에 맡기기를 강조합니다.

플롯을 강조하는 로우리의 설교기법은 성경의 문학적 특징을 이해하는 데서 비롯합니다. 로우리는 기존의 명제적인 사고가 성경이 지닌 경험적 의미를 희석시킨다고 주장합니다. 비록 성경에 명제적인 내용이 나타나긴 하지만 거의 대부분 내러티브 형식이기 때문에 청중과의 공감을 위해 설교자는 내러티브 형식의 설교를 살려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로우리의 설교기법은 평소 생각하는 익숙한 이슈를 낯설게 함으로 청중에게 호기심을 유발하고 그 모순을 풀어감으로 흥미를 더하고 복음을 체험하게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크래독과 마찬가지로 로우리의 설교기법은 전달면에서 역동성을 살려내어 강단을 활기차게 만드는 설교구성법을 제시했습니다.

진리의 말씀과 뛰어난 전달로 강단을 숨쉬게 하라
여기서 내러티브 설교와 스토리텔링 설교의 차이를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러티브 설교는 이야기식 설교라 할 수 있고, 스토리텔링 설교는 이야기 설교라 할 수 있습니다. 내러티브 설교의 핵심은 이야기 자체가 아니라 이야기식으로 하는 설교로, 본문의 긴장을 살려내는 설교라 할 수 있습니다. 소설을 구성할 때 발단, 전개, 절정, 결말처럼 이야기의 흐름을 지닌 본문구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스토리텔링 설교는 본문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아니면 다양한 이야기를 가미한 설교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전통적인 설교자들은 크래독이나 로우리에게 역동적인 설교전달을 배울 수 있습니다. 개혁주의 신학을 강조하는 것이 교리로 강단을 채우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저자의 의도를 따라 그대로 살려내어 청중이 역동적으로 듣고 반응하게 하는 것이 성경적 설교자가 해야 할 임무입니다.

미국 복음주의학회(ETS)에서 최근의 설교신학에 대한 논문을 발표할 때였습니다. 크래독의 설교신학이 성경의 진리를 그대로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강단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비평하자 한 미국인 교수가 일어나 질문했습니다. 크래독의 설교가 혁명을 가져올 정도로 강단에 새바람을 일으켰는데 부정적 평가가 정당한 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제가 답변을 채 하기도 전에 사우스웨스턴침례신학교에서 설교학을 가르치는 데이비드 알렌 교수가 일어나 제가 하고자 하는 답변을 시원하게 대신해 준 일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전달력에 혁명을 가져온 설교기법이라 해도 성경을 진리의 말씀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설교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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