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로 103회 총회를 시작으로 105회기까지 감사부를 섬기게 되었다. 감사부를 떠나면서 교단이 발전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그동안 경험하고 느낀 바를 짧게나마 언급하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감사한 것은 총회라는 큰 조직을 이해하게 되었다. 유지재단과 총회본부, 총신대학교, GMS 등 우리 총회의 모든 구조와 현황을 조금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이것이 감사한 이유는 총회를 위해 기도를 할 때, 제대로 알고 기도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은 큰 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우리 교단이 더 미래지향적으로 성장할 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인류에게 가장 큰 비극은 지나간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다는 데 있다”고 했다. 그동안 우리 교단은 타 교단에 비해 역사의식이 부족하다는 꼬리표를 달고 있었다.개혁주의 신학의 탁월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집단적 약점을 노출하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에 대해 총회역사위원회는 줄곧 질문을 던져왔다. 그 결과 ‘총회가 역사위원회만 같았으면 좋겠다’(2019년 8월 6일자 사설)는 분에 넘치는 격려를 받기도 하였다. 그만큼 그동안 미진했던 교단의 역사 부문을 위해 여러 측면으로 노력을 경주하였다.
지난 1년 6개월 남짓 본 교단은 물론 한국교회는 코로나19로 인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 같은 때에 본 총회는 성삼위 하나님의 거룩과 의를 지키는 일에 더욱 분발해야 하지 않았을까? 이런 와중에 진행된 제105회기 정기 감사를 받은 교육부장으로서 ‘감사부의 감사가 이대로 괜찮은가?’ 하는 점을 토로해 보고자 한다. 교육부에 대해 감사부가 잘못이라고 지적한 부분은 그 지적이 결코 옳은 일은 아니었으며, 앞으로 시정되어야 할 사항으로 여겨진다. 지난 20여 년 한 점 부끄러움을 겼은 일 없이 총대로 총회를 섬기면서 금번 감사부
남북통신선이 다시 불통이다. 북한은 작년에 차단했던 통신선을 7월 27일 복원했다. 그러나 한미연합군사훈련에 대해 비판한 후 다시 통신은 두절됐다.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진행하며 한반도 평화구축에 나섰다. 그러나 실제적인 성과는 없다. 남북 상황은 예전과 다를 바 없다. 북한의 핵문제는 여전하다. 미국을 비롯해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도 달라지지 않았다. 민족의 분단과 6·25전쟁이 발발한 지 70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분단 상황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
청소년들을 위협하는 3가지 중독청소년들의 중독문제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스마트폰 과의존 사용과 함께 마약중독, 도박중독의 증가로 인해 청소년 중독은 개개인의 문제를 뛰어넘어 사회적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국내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중독 과의존 위험군 비율이 전체 23.3%로 전년(20.0%) 대비 3.3%포인트 늘어났다. 이 가운데 과의존 위험균의 비율을 보면, 청소년(만10~19세) 비율이 35.8%로 가장 높고, 유아동(만3~9세)이 27.3%로 뒤를 이었다. 중독에 빠져드는
우리는 한동안 속수무책이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염병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코로나로 뭘 할 수가 없다”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다”라며 버텨왔다. 하지만 톰 레이너는 에서 ‘우리는 코로나가 끝나기를 기대하지만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단언한다.사람은 하고자 하면 방법을 찾고, 하지 않고자 하면 변명을 찾는다고 한다. 다행히도 작년과 이번 해가 다른 점은, 더 이상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간다는 부분이다. 우리는 답을 찾아야 한다.사실 지금까지 다음세대 사역의 수많은
지난 6월 고교 3학년 김 모 군이 실종 7일 만에 분당의 한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 관계자는 타살 혐의점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미연에 방지할 수는 없었을까’하는 생각에 안타깝기 그지없다.자살을 하는 당사자는 이제 세상을 끝낸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남아있는 가족이나 지인들은 일생동안 트라우마를 경험하게 된다. 내가 잘못해서 자살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죄책감을 안고 산다.코로나19 상황에서 자살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청소년뿐만 아니라 전
해마다 여름이 되면 한국교회는 각종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영적 재충전과 다음세대를 준비하는 소중한 계절을 보낸다. 그러나 금년 여름도 지난해처럼 코로나19의 위협 앞에 우리의 열정과 헌신을 망설이며 주춤하게 만들어 버렸다. 우리는 지금 어찌 할 줄을 몰라 당황해 하고 있다. 자유도 잃어버리고, 소중한 기회도 놓쳐 버리고 나서야 깨닫는 것이 많다.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강가에서 가슴을 치며 통곡의 노래를 불렀던 심정을 이해하게 된다. 그들은 마음껏 성전에서 섬기고 충성하고 봉사할 수 있었을 때 그 일이 고마운 줄, 소중한 줄
소강석 총회장께서 06월 28일자 에 ‘WEA와의 관계 이렇게 정리하면 된다’라는 제하의 논단을 기고하셨다. 한마디로 시의적절한 글이었다. WEA는 World Evangelical Association, 즉 세계복음주의연맹의 약자이다. “복음적”(evangelical)이라는 말은 성경에 나오는 “복음”(유앙겔리온)에서 파생된 단어로 마틴 루터는 로마천주교와 구별된 개신교를 칭할 때 사용했다. 오늘날은 주로 성경을 믿는 보수 교인이나 교회를 칭할 때 사용한다. 그런데 이런 복음주의가 WEA와 같은 세계적인 조직으로 구성되었
상주(喪主)는 장례가 있을 때 장자(長子)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친자녀도 아닌 목사가 교회 장로가 소천했을 때 상주가 되었다는 사실은 필자가 살아오면서 처음 듣고 접해 보는 일이다.소강석 총회장님께서 6월 30일에 전화를 주시어 본 교회 장로님이 소천했기 때문에 본인이 상주 역할을 감당하게 되어 3일간 모든 공적 업무에 참석하실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마침 다음날 7월 1일은 오래전부터 통합측 총회임원들과의 연석회의로 약속되어 있었고 이어서 총신후원금 전달식 예배 등 주요 일정이 있었다.그런데 소 총회장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충분
목사님이 떠나신 지 벌써 1년이 지났다.(2020년 6월 19일, 오전 9시 40분 소천) 엊그제 같은데 1주기가 되었다. 고 조동진 목사는 격동의 시대에 태어나 조국 분단과 함께 실향민으로 향년 97세를 사셨다. 1924년 평북 용천에서 태어났고 본명은 조덕천이다. 장로회신학교(당시 남산 신학교)를 수석 졸업했다. 1957년 도미해 미국 에즈베리신학교에서 한국인 최초로 선교학을 전공했다. 도미 후 후암교회 담임목사로 18년 시무하다 50대 중반에 조기 은퇴하고 ‘한국선교훈련원 바울의집(Pauline House)’을 설립했다.그 당
최근 차별금지법을 찬성하는 국민청원이 22일만에 10만명을 채웠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찬동한 것은 국가보안법 폐지 세력 및 외국인들이 연대했기 때문이었다. 또 민주당 이상민 의원이 차별금지법 ‘평등에 관한 법률안’ 대표발의(의원 23인 공동발의)를 강행하고 말았다. 이는 대다수 국민과 기독교계의 의견을 무시한 처사라고 할 수 있다.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대다수 국민들과 기독교계는 철저히 소외되었고 완전히 배제됐다.이상민 의원의 평등법안은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금지하겠다는 것이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부인하는 민주주의의 적에 대해
대한민국은 작은 나라이지만 위대하고 좋은 나라다. 그러나 이렇게 좋은 나라가 거저 된 것은 아니다. 우리 민족은 가난에 대한 한이 맺혀 있었고 지긋지긋한 일제 36년의 식민통치 속에 고통을 겪다가 광복 5년 만에 다시 동족상잔의 비극 6·25전쟁을 치르게 된다.전쟁이 끝난 후 교회에서, 산과 들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구국 기도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식음을 전폐하며 목숨 걸고 기도 하는 사람들도 헤아릴 수 없었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찬란히 빛나고, 정원에 나무는 다듬을 때 아름다워진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승리의
제58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는 특별했다. “울게 하소서!”라는 주제로 기도의 눈물뿐만 아니라 감동의 눈물까지 흐르게 하여 시간마다 은혜의 홍수를 이루었다. 그리고 그 은혜의 절정은 총회의 역사와 비전을 담은 갈라 콘서트 ‘불의 연대기’였다. 그 결과는 예상을 뒤엎는 ‘엄청남’이었다. 아무리 작은 규모라고 해도 목장기도회에서 갈라쇼를 기획한 총회장의 뛰어난 추진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고, 규모와 수준도 어느 공연에 비해 손색이 없었지만 그 은혜와 감동은 기대를 뛰어넘는 ‘엄청남’이 있었다. 특별히 사회를 맡아 공연에 작게나마 참여하게
목회자는 목회의 길을 가면 되돌아서지 않는다. 목회하는 동안 난관에 봉착해도 그 길에서 돌이키기보다, 난관을 극복하고서라도 그 길을 가고자 한다. 그러면서 어느덧 정년이라는 시간과 함께 은퇴의 순간을 맞게 된다. 그러나 많은 목회자들이 은퇴 후 육신의 노쇠함과 더불어 생활의 위협까지 받게 된다. 그렇기에 총회에서 은퇴 목회자에 대한 대책으로 최소한의 기본 생활을 유지하도록 해 줘야 한다.필자는 그 대책으로 연금 이상 좋은 것이 없다고 본다. 일할 수 있을 때 연금에 가입해 놓으면 노후에 대한 대책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