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1일은 부부의 날이었다. 부부의 날은 2007년부터 국가기념일로 제정하여 시행해오고 있는 제도이다. 부부의 날을 5월 21일로 정한 데는 5월 가정의 달에 둘(2)이 하나(1)가 된다는 나름의 각별한 이유가 있다. 가정의 핵심인 부부가 행복해야 그 자녀들도 잘 자라고 부모님도 효성으로 모실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부부가 화목해야 우리 사회의 청소년 문제나 황혼 이혼율 증가, 결혼율 저하, 가정의 해체 등 각종 사회문제의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자연에 봄·여름·가을·겨울의 변화가 찾아오듯 결혼생활에도 변화가 찾아온다. 심
어떤 보도자료에서 민사소송 중에서 교회와 관련된 소송 건수가 전체의 약 18%에 달한다는 것을 보았다. 통계의 신빙성에 대한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최근 교회 관련 소송이 세상 법정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교회의 영적 권위를 잃게 했고, 복음에 큰 걸림돌이 되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여기에는 두 가지의 원인이 있다. 첫째는 교권의 남용 혹은 부당한 집행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정당한 치리를 위해 일정한 기관에게 치리권을 위임하셨다. 그렇다면 그 치리권은 정당하게 집행되고 행사되어야 한다. 죄에 대하여는
2년 4개월 동안 진행된 코로나19는 21세기의 최첨단의 문명을 비웃으며 전 세계를 뒤집어 놓았다. 이제 코로나19의 긴 터널을 빠져나온 듯하지만, 코로나19가 진행되는 동안 한국교회는 예배의 두 길(비대면 혹은 대면) 사이에서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그런가하면 코로나19는 교회가 마치 반사회적인 집단인 것처럼 비난을 받게 했다. 그 중심에는 한국교회를 싸잡아 욕을 먹도록 원인을 제공한 집단(신천지, 전광훈, 최바울)이 있었다. 세 집단은 정통교단들이 사이비 이단 내지 교류금지 혹은 집회참석 금지 결정을 한 부류들이다. 그런데 심상치
코로나19가 한국교회에 미친 영향이 결코 적지 않다. 통계를 보니 우선 소그룹 활동이 80%까지 축소되었다. 사회봉사가 63%, 그리고 헌금은 30% 가량 줄어들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주일학교의 58%가 약화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여기서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코로나19 이후만이 아니라 이미 이전에도 한국교회는 다음세대에 대한 경고를 받고 있었다. 이미 다음세대 신앙교육에 빨간 불이 켜져 있었다. 문제는 그 경고를 무시하고 코로나19를 맞이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코로나19 이후 정말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요즘 사람들은 세태의 혼란을 틈타 저마다 욕심 채우기와 자기 몫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곪아 터진 피고름과 같은 현상들이 곳곳에서 나타나 온 나라가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정치, 경제, 사회, 교육, 종교, 어느 곳 하나 성한 곳이 없다. 곪은 곳은 짜내거나 수술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게 된다. 탐욕과 이기심에서 벗어나는 일은 마치 우리 사회의 코로나 바이러스를 죽이는 것과 같이 중요한 일이다. 서로가 서로의 것을 빼앗는 이기적인 공동체에서 서로가 서로의 것을 나누어 주는 나눔의 공동체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여
지금부터 약 30년 전 담임목사로 부임했을 때가 생각난다. 비교적 오랜 세월 성경과 신학을 공부하고 가르쳐왔다고 자부했지만 여러 가지 현실적인 고민들이 생겨났다. 그 중에 성도들의 각 가정 대문이나 아파트 출입문 키높이 중앙에 붙여놓아아야 할 교회 이름 표지를 어떻게 디자인해야 할 지가 큰 숙제였다. 한참 기도한 끝에 ‘가정은 작은 교회, 교회는 큰 가정’이라는 문구를 새겨 넣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그런데 내 반세기 목회 여정을 돌아볼 때 이 표어는 내 가정, 내 교회에서 조차 온전히 실현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가슴 속 깊은
지금 대한민국은 심각한 갈등 프레임에 갇혀 있다. 양극화 된 빈부갈등에서 이념적 정치 갈등, 사회적 갈등에 이어 젠더 갈등까지 여러 가지로 갈등의 골이 깊지만 가장 심각한 갈등은 세대 갈등이다. 갈등은 칡나무와 등나무가 서로 꼬여있는 상태여서 심리적으로 서로 싸우는 양상을 말한다. 그래서 ‘요즘 버릇없는 것들’이라는 말과 ‘꼰대’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이 갈등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하다못해 고대 벽화에도 세대 갈등이 묘사된 그림이나 글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과거는 현대처럼 수명이 길지 않았기에 일정 이상으로 심화되기 어려
제106회 총회 ‘은혜로운동행기도운동’이 전국 14개 지역기도회, 163개 노회, 해외 3개 노회까지 기도회를 마치고, 이제 전국 기도회를 앞두고 있다.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며, 교단의 영성을 주도하며, 교회의 부흥을 도모하는 선한 목적이 은혜롭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지역에서 시작하여 노회, 지교회들로 이어진 기도운동이 마치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이 한반도 전역을 기도의 불로 태웠던 것처럼, 성도 개인의 삶과 가정 그리고 사회 전 영역까지 성령의 역사와 은혜를 사모하는 뜨거운 기도부흥으로 지속될 줄로 믿는다.기도는
토마스 선교사가 순교의 피를 흘린 터전 위에 세워진 평양 신학교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발전하여 오늘의 총신대학교가 됐다. 총신대가 한국교회를 넘어 세계적인 학교로 자리매김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이는 없을 것이다.총신의 오늘이 되기까지 신학교를 졸업한 수많은 동문들과 성도들의 기도와 헌신이 있었다. 이는 총신에서 우수한 목회자들이 양성되어 하나님께서 주신 전도와 선교의 소명을 잘 감당하기를 바라서였다. 그러나 사학법이 제정되고 총신대가 사립학교로 전환되면서 총회와 학교, 그리고 교육부가 상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다. 사회법적으로는
5년에 한 번씩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는 현행 대통령 직선제는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 개정된 헌법에 따른 것이다. 당시 여당의 6년 단임제와 야당의 4년 연임제가 제시되었는데 타협안으로 5년 단임제가 채택됐다. 이후 노태우 대통령이 13대 대통령으로 당선됐고 지난 3월 9일에는 20대 대통령으로 윤석열 후보가 선출되어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있다. 남북관계는 집권 정부의 대북정책에 크게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대북정책 수립에는 북한에 대한 인식과 통일관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북한을 바라보는 관점이 적대적인가 협력적인가,
얼마 전에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어떤 사람은 자신이 지지했던 후보자가 당선되어 기뻐했고, 또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음에 분노했다. 이 싸움이 교회 내부에서도 동일하게 진행되었다. 목사, 장로들의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각각의 지지자들에 대한 찬반이 극명하게 갈렸고, 영혼을 내건 싸움을 방불케 했다. 선거가 끝난 지금에도 그 싸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같다.사람들은 대통령 선거에 왜 그렇게 민감했고, 여전히 그것 때문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가? 단순히 누굴 좋아하고, 그렇지 않음의 문제인 것 같지는 않다. 한편을 진리나 정의로 이해했
선거에서 유권자가 행사한 한 표의 힘은 하찮아 보이지만 한 표의 향방에 따라 바뀌어진 역사의 운명을 보면 한 표의 위대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1889년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맞이한 프랑스 정부는 기념 상징물을 만들기로 하고 이를 공모한 결과 에펠의 작품이 당선되었다. 그러나 예술의 도시인 파리에 철골 구조물의 에펠탑을 설치하게 되자 시인 베를렌과 소설가 모파상 등이 앞장서서 설치를 반대하였다. 에펠탑 건립 11년째 되던 해에는 ‘에펠탑 철거를 위한 300인 선언’이 발표되면서 에펠탑의 철거와 보존의 결정은 대법원으로 넘어가게 되
지난해 독일 베를린에서 개막된 IFA국제가전박람회에서 한 미래학자는 “아날로그 시대가 디지털로 변했듯, 디지털이 인공지능 시대로 변한 것이 확실하다”라고 말했다.이 흐름 속에서 총회도 분명한 미래전략을 제시해야 한다. 이제 3월이면 새로운 총회를 준비하는 봄 노회가 속속 개최될 전망이다. 이번 봄 노회가 과거와 현실의 문제를 넘어 미래전략에 초점을 맞추기를 기대해 본다.필자의 교회가 헌의해서 총회가 받아들여 시행하고 있는 두 가지 내용이 있다. 하나는 총신대학신학대원 입학 때 표준 심리검사제도를 진행하여 정신건강을 체크하고 문제가
총회의 선거는 내가 보기에는 정치의 장을 떠나 자본이라는 돈의 공간으로 옮겨갔다. 그래서 선거는 가시성에서 비가시성으로, 투명성에서 불투명성으로, 공정성에서 차등성으로, 부정적인 면을 드러내게 되었다. 이러한 선거가 된 것은 선관위가 선거규정을 적용하고, 운영하며 선거를 관리하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보여진다. 본래 선거규정이란 모임의 대표자나 임원을 공명정대하게 선거를 통해 선출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규정에 의해서 경쟁하게 하고, 더욱이 선거전(戰)이 과열되지 않도록, 또 소모적인 마타도어에 휩쓸려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통나무를 아무렇게나 놓고 도끼질을 하면 힘만 들지, 나무가 쪼개지지 않는다. 나무결을 따라 도끼질을 해야 손쉽게 나무를 쪼갤 수 있다. 요령이 있어야 일을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요령’은 다른 말로 ‘원리’다. 무슨 일이든지 원리에 따라 해야 일이 쉽다. 원리대로 일하기만 하면 풀리지 않을 문제가 없다. 목회도 그렇지 않을까? 요즘 신학교 졸업과 입학 시즌을 맞이하여, 이사야 42장을 묵상하며 목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선지동산을 나서는 신학생들이 사명을 감당하므로 한국교회 부흥의 견인차 역할을 해 주기를 바란다.첫째 목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