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6년에 4366명의 교인 수가 집계되며 그 당시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로 알려진 런던 메트로폴리탄의 타버나클교회가 있다. 찰스 스펄전 목사님이 이 교회에서 목회할 때 필자가 수요예배에 참석한 적이 있다. 앞서 본 웨스트민스터 채플의 썰렁한 모습과 달리 예배당이 교인들로 꽉 차 있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스펄전 목사님은 어느 주일 성도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을 향해서 가슴이 뜨거운 사람 열두 명만 있다면, 이 런던의 삭막하고 고독한 환경을 기쁨이 충만한 곳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나 43
필자가 서독에서 미군으로 복무할 때였다. 어느 날 정복 차림으로 친구와 식당을 갔는데 옆자리 손님이 나에게 “야파나?”(일본인이냐?)라고 물어서, “노. 코리안”이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다시 “차이나?”라고 물어, 이번에는 “노. 아메리칸”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는 영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떠났다. 미군 정복을 입고 있었지만 그 손님은 내 얼굴만 보고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질문을 한 것이다.훗날 재미교포 2·3세의 정체성 문제로 목회 상담을 할 때면, 나는 종종 내 경험과 이사야 43장을 인용했다. “야곱아 너를 창
어머니께서는 여러 손주들 중에서 내 큰아들을 유독 좋아하셨다. 다른 손주들은 할머니가 무슨 말을 꺼내면 “그 얘기 벌써 몇 번 들었어요”라면서 다른 데로 가버린다. 반면 내 큰아들은 수십 번 들은 이야기라도 마침 처음 듣는 것처럼 끝까지 경청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지난날 추억을 회상하면서 살아가다보니 옛날 얘기를 자주 하는 것이 나이 많은 분들의 특징 중 하나이다.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도 광야를 힘들게 지나는 동안, 옛날을 회상하면서 모세를 향해 불평과 원망을 쏟아냈다. 현실적으로 갑자기 마실 물도 없고, 먹을 것이 충분하지 못한
비즈니스에서 자주 사용하는 ‘시너지’라는 용어가 있다. 그리스어로 ‘συνεργός’라 하는데 ‘함께 일하다’라는 뜻을 가졌다. 혼자보다 둘이 합쳐졌을 때 독립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 이상의 효과를 낸다고 해서 ‘협력작용’ 혹은 ‘상승 효과’를 ‘시너지 효과’라고 부른다.시너지의 기원을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 창 2:18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게 여기셔서 그에게 ‘돕는(에제르:helper) 배필(네게드:~의 앞에)’을 만들어 주셨다. 계속해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나름대로 결심을 한다. 주로 건강, 자기계발과 대인관계에 관련된 결심을 한다. 그런데 불과 8%만이 그 목표를 달성하고, 60%는 6개월 안에 이전 상태로 돌아간다고 한다. 그러나 결심을 하는 사람은 결심을 하지 않는 사람보다 목표를 달성할 확률이 10배나 높다는 미국 스크랜턴대학교의 연구 결과가 있다.어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너는 뭐가 되고 싶으냐?’고 물었다. ‘저는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라면서 ‘아무리 높은 자리에서 큰일을 하고 명성을 떨친다 해도 사람다운 사람이 아니라면 동물과 다를 바 없으므
교인 중에 집에서 기른 콩나물을 시장 한구석에서 파시던 연세 많은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 허리가 구부러져 걷기도 힘들어 하시고, 몸도 성치 않아 자녀들은 이제 그만하시라고 몇 번이고 말씀드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어느 해 크리스마스 예배 후에 아무 말 없이 꼬깃꼬깃 접은 1000원짜리 몇 장을 내 손에 쥐어 주면서 환하게 웃고 행복해 하시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것은 내가 교인에게 받았던 선물들 중에 사랑이 가장 물씬 담긴 귀한 선물이다.선물 자체가 비싸고 귀한 것이 아니더라도 주는 사람의 마음이 담겨있는 것이라면 그 가
아담의 범죄로 시작된 두려움은 삶을 파괴하는 힘이 있다. 마치 잉크 한 방울이 떨어지면 삽시간에 컵 안의 물 전부가 잉크색으로 변하는 것처럼,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를 고민한다는 보도는 삽시간에 온 국민의 마음을 잠식했다.3단계가 되면 누구라도 감염될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인해 일상생활의 리듬이 깨지고, 경제적인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지게 될 것이 예견된다. 하지만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니는 것과 같은 상황이 설령 온다 해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독일 통일 이전에 풀다(Fulda)라는 지역의 한 가정집을 방문했다. 놀랍게도 집 안에서 동서독의 경계선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집안의 서독 쪽은 깨끗했지만, 동독 쪽은 먼지가 10cm이상 수북이 쌓여있었다. 주인에게 반쪽 난 집에서 살면서 얼마나 불편했는지, 선을 넘어 가고 싶은 유혹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물었다. 어느 누구도 감시하지 않아 종종 동독 쪽으로 건너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실제로는 한 번도 선을 넘지 않았다는 답을 들었다.에릭 프롬은 “인간의 의식적이나 무의식적 심리와 행동의 밑바닥에는 분리를 극복하여 하나
어릴 때에는 12월이 빨리 오기만 기다렸다. 평소에는 선물 받을 일 한 번 없던 내게, 12월만 되면 미국에서 소포가 도착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교회에서 보내준 학용품, 옷, 장난감 등 그 당시 시골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것들이었다. 동네 친구들이 나를 부러워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본디 크리스마스는 화려한 날이 아니다. 그런데 요즘 시대에는 백화점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란 걸 만들어 오색찬란한 불빛과 장식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특히 12월 24일 성탄전야는 많은 사람들이 환락과 술에 취해 온갖 소동을 저지르는 ‘사고의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교회 가는 것을 싫어하셨다. 어느 주일, 할아버지는 “나락을 말리라”는 지엄한 분부를 내리셨다. 하지만 나락을 보고 있던 아버지는 종소리가 들리자 결국 예배당으로 행했다. 그런데 하필 그 때 갑자기 소낙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예배가 끝날 때까지 나락 걱정과 무서운 할아버지께 혼날 걱정에 시달리던 아버지는 겁이 나서 집에 가지 못했다. 어두워질 때까지 예배당 종각에 올라가있던 아버지의 귀에 “남진아!”하며 애타게 부르는 음성이 들렸고, 아버지는 “엄니, 나 여기 있소”라고 대답했다고 한다.언젠가 이 이야기를 아버지
1994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지낼 때였다. 한밤중에 침대가 마구 흔들려 깨어서 보니, 사진액자들이 바닥에 떨어지고 있었다. 지진이 일어난 줄도 모르고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식구들을 서둘러 깨워서 밖으로 대피했다. 한참 후에 집으로 들어와서 뉴스로 확인해 보니 규모 6.7의 강진이 발생하여 건물들과 고속도로가 무너지고, 비행장이 일시 폐쇄되었다. 무려 72명이 숨지고 250억 달러의 재산피해가 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후에도 계속되는 여진이 발생하면서, 가스가 폭발하여 불이 날 지 모른다는 생각에 집 안에 있는 것이 불안하게 느껴졌다.만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6:1~2에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 했다. 이 말씀을 보면, 그 당시 고린도교회의 문제와 영적 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받은 성도 중 일부가 거짓 교사의 가르침에 현혹되었다. 그 은혜를 공허한 것으로 만들지 말라고 권면하면서, 하나님께서 은혜로 인간을 구원하시는 때가 도래했음을
그 동안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는 경험을 한 필자는 ‘죽음 이후에는 어떻게 될까?’라는 문제에 대해 관심이 깊어졌다. ‘죽으면 천국에 간다’는 믿음이 있었지만, 수술 전날 담당의사로부터 ‘내일 수술하다가 잘못되면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라는 말 한 마디를 듣고 난 후 밤새 잠을 못 이뤘다. 그러다 문득 병실 창밖의 가로등 밑을 지나가는 행인을 바라보며, 나도 저렇게 다시 걸어 다닐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죽음 앞에서 찾아오는 불안과 두려움은 목사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사망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진 것을 믿는 그리스도
마태복음 2장 1~3절을 보면, 예수께서 나셨을 때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들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는 말 한마디로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에 소동이 벌어졌다.당시 헤롯은 유대인들에게 왕으로서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하였다. 그 이유는 헤롯이 유대인으로 개종한 에돔인으로서, 로마에 가서 돈을 주고 왕위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키스트메이커는 주장하였다. 안토니의 제의와 옥타비안의 동의를 얻어 헤롯은 로마 원로원으로부터 주전 40년 유대의 왕으로 임명되었으며, 유대인의 반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를 방문했을 때,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어떻게 사람이 사람에게 이렇게 끔찍한 일을 할 수 있었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975년에서 1979년 사이 폴 포트가 이끄는 크메르 루즈가 자행한 집단학살로, 그리고 기아와 질병으로 캄보디아 인구의 1/4인 170만~250만명가량이 사망했다. 이때 죽은 시체들을 2만개 이상 한꺼번에 묻은 집단매장지 ‘킬링필드’는 훗날 크메르 루즈 정권이 세운 민주 캄푸치아가 몰락한 뒤 발굴되어 세상에 알려졌다.이곳을 떠나면서 일어난 생각 하나를 떨칠 수 없었다. 당시 극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