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종율 목사의 사진묵상-성령의 열매]

어머니께서는 여러 손주들 중에서 내 큰아들을 유독 좋아하셨다. 다른 손주들은 할머니가 무슨 말을 꺼내면 “그 얘기 벌써 몇 번 들었어요”라면서 다른 데로 가버린다. 반면 내 큰아들은 수십 번 들은 이야기라도 마침 처음 듣는 것처럼 끝까지 경청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지난날 추억을 회상하면서 살아가다보니 옛날 얘기를 자주 하는 것이 나이 많은 분들의 특징 중 하나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도 광야를 힘들게 지나는 동안, 옛날을 회상하면서 모세를 향해 불평과 원망을 쏟아냈다. 현실적으로 갑자기 마실 물도 없고, 먹을 것이 충분하지 못한 광야생활을 견뎌내야 했던 그들의 불평이 이해는 된다.(출 16:1~18)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갈수록 그들의 불평과 원망의 도가 지나쳤다. 그 불평이 하나님의 영광과 보호의 상징인 구름기둥의 울타리를 뚫고 하늘까지 이르게 되자,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출 16:11~12)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모세와 언약을 맺기 전에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 이스라엘이 언약을 지키면 ‘내 소유’가 된다는 약속의 말씀을 하셨다.(출 19:3~6) 이스라엘은 힘들어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까지 가느냐, 아니면 계속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애굽에서 종노릇하던 옛날의 모습으로 돌아가느냐 결단을 해야 할 지점에 이르게 됐다. 이 장면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교훈을 받을 수 있다.
이스라엘이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언약 백성과 좀 더 친밀한 교제를 원하셔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 중에 계셨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아담이 하나님을 피해 숨은 것처럼 원망을 쏟아내면서 옛날(애굽)로 돌아가고 싶어했다.(민 14:1~5) 그 결과는 우리가 아는 바와 같다. 시내산에 도착한 백성과 가나안 땅에 들어간 백성이 다르다는 것이 출애굽기의 안타까운 결론이다.
힘들고 어려울 때면 “옛날이 좋았다”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많다. 하지만 옛날은 다시 오지 않는다. 우리가 할 일은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믿음으로 약속의 땅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이 아닐까?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위기 상황에서도 말이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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