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 목사의 희생과 헌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조형물 ‘사랑과 헌신’.

사랑의 이야기가 보물처럼 쌓여있다
손양원 목사 비롯 순교적 삶의 감동 곳곳에… “신앙 초심 회복하는 소중한 장소”

원자탄이 떨어졌다. 한 바탕의 충격이 있은 후에,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스멀스멀 사람들 사이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괜히 눈물이 나고, 속이 뜨거워지는 이상한 증세가 찾아왔다. 하지만 그 후유증은 고통이 아니었다. 용서였고,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 손양원 목사와 두 아들을 비롯한 12명의 순교자들을 추모하며 제작된 부조.

2012년 개최된 여수세계박람회는 지구촌 사람들에게 해양기술의 발달이나 아름다운 미항의 자태만 소개한 것은 아니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이래로, 세상 어디에서 듣지 못했던 이 동네의 뭉클한 사랑 이야기가 열방만민에게 전파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전쟁 통에 목숨 걸고 교회를 지키다가 패잔병들의 총탄에 숨진 한 순교자의 이야기이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한센병자를 끌어안고 몸소 자신의 입으로 피고름을 빨아낸 의인, 두 아들의 목숨을 빼앗은 원수를 양자로 받아들인 아버지, 자기에게 맡겨진 양떼들을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참 목사. 바로 애양원교회 손양원 목사가 그 주인공이다.

▲ 양원의 아픈 역사와 하나님의 긍휼을 보여주는 애양원역사박물관과 한센기념관 내부.

“아버지의 본명은 손연준, 어머니의 본명은 정쾌조이셨습니다. 애양원에 부임하시면서 두 분께서 각각 손양원, 정양원(훗날 정양순)으로 이름을 개명하셨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만큼 애양원 가족들과 한 몸, 한마음이 되고 싶으셨던 간절한 소망이 있으셨던 것이죠.”

애양원 내 손양원목사순교기념관에 요즘 거의 매일 나와 관람객을 상대로 전시물을 설명해주는 손동길 목사는 손양원 목사의 막내아들이다. 아버지께서 순교하시던 그 날 아침 태어나, 장례식 내내 어머니의 품 안에 안겨있던 아기가 바로 그이다.

▲ 손양원목사유적공원에 세워진 사랑의 열매탑.

그의 설명처럼 손양원 목사의 삶은 희생과 헌신으로 점철되어 있다.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투옥과 핍박을 받으면서도 굴하지 않은 강한 심장을 가졌지만 애양원 식구들에게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줄 정도로 한없이 자애로웠던 사람, 해방 조국에서 얼마든지 더 편하고 높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음에도 굳이 자식 잃는 슬픔까지 감수하며 더 낮은 곳으로만 향했던 인물.
애양원의 새로운 상징이 된 사랑의 열매 기념탑 옆에 새롭게 들어서는 조형물은 그의 희생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10월 22일 제막식을 갖는 ‘사랑과 용서’라는 제목의 이 조각은 손양원 목사가 한 남자를 끌어안는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으며, 뒤쪽에는 두 개의 빈 의자가 놓여있다.

포옹하는 상대를 양아들 안재선이나 애양원 식구들, 나아가 겨레와 조국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처럼, 빈 의자는 여순사건 때 목숨을 잃은 두 아들 동인과 동신 혹은 스스로 포기한 부귀와 안락한 삶, 나아가 자신이 내던진 목숨으로까지 치환할 수 있을 것이다.

작은 것 하나라도 포기하지 못해 욕심나는 것들은 온통 손아귀에 움켜쥔 채 살아가는 오늘 우리의 모습이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그 부끄러움을 안고 고난의 길, 용서의 길, 사랑의 길로 이름 붙여진 세 개의 산책로를 따라 손양원 목사 삼부자의 묘소, 기념전시관, 팔복광장, 애양원교회당 등을 차례로 둘러본다.

엑스포를 전후해 애양원 일대에 손양원목사유적공원이 조성되고, 도로와 다리 등 지역 관광인프라가 크게 확충되면서 이곳을 찾는 이들도 크게 증가했다. 당초 건립이 예정된 청소년체험관과 성서식물원까지 들어서면 관람객들의 수는 훨씬 더 늘어날 것이다.

일제치하와 6·25의 고난기를 함께 겪었던 노년들, 손양원 목사의 삶과 신앙을 담은 영화 <사랑의 원자탄>(1977년 작)을 극장에서 본 중년들, 손 목사의 뒤를 이어 ‘청년순교자’로 살아갈 것을 목이 터져라 외치는 젊은 세대들까지 다양한 세대들이 이곳을 찾는다.

▲ 사랑의 순교자 손양원 목사와 두 아들이 묻힌 삼부자 묘소.

“더 어린 세대들도 애양원에 꼭 찾아오길 바랍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보여주신 진실한 예수 제자의 길을 아이들도 본받고 뒤따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저희들도 애니메이션 ‘사랑의 원자탄’을 전시관에서 상영 중이며, 앞으로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다양한 전시물과 교육 자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9년간의 독일선교사 생활을 마치고 제7대 담임목사로 애양원교회에 부임한 정종원 목사의 초대인사이다. 부목사 시절 애양원 주최 ‘청년순교’ 운동을 주도하면서 이곳에 쌓은 열정과 사랑이 적지 않기에 정 목사는 애양원교회 담임목사로서 책임감과 부담감 또한 막중하게 느낀다.“순교적인 삶이란 꼭 목숨을 바쳐야만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주님을 위해 내가 누렸거나 당연히 누릴 수 있었던 모든 것을 포기한다면 그것 또한 순교자의 생애와 다르지 않겠지요. 저도 마찬가지지만 애양원은 많은 이들이 신앙의 초심을 회복하는 소중한 장소입니다.”

정 목사의 설명처럼 애양원의 어제와 오늘은 초대 원장이었던 윌슨 선교사(한국명 우월손)를 비롯해, 30년간 애양원교회를 섬기다가 3년 전 별세한 이광일 목사까지 순교적인 삶을 살았던 수많은 이들의 이야기로 점철되어 있다.

이름 없이 애양원 가족으로 살다간 수많은 사람들의 사연도 마찬가지이다. ‘평안사’라고도 불리는 노인요양원에는 지금도 40여 명의 한센환우들이 거처하고 있으며, 이들은 애양원교회 200여 성도들과 함께 순교신앙 천국소망을 굳건히 붙잡은 채 주님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린다.
그들의 면면은 교회당 맞은편 애양원역사박물관(소장:주형순)과 최근 개관한 한센기념관 등에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두 건물 속에 담긴 스토리들은 애양원 식구들의 애환과 함께 하나님께서 이곳에 베푸신 인자와 긍휼을 보여준다.

‘사나 죽으나’ 믿음으로 사랑으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보물처럼 쌓인 곳, 그래서 애양원은 여수 뿐 아니라 한국교회 모두의 자랑이다.

 

▲ 장영학 목사(한국교회역사자료박물관 관장)

애양원(愛養園)은 한센병 환자들을 치료하는 병원과 교회, 그리고 손양원 목사의 기념관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애양원교회는 1913년 광주군 효천면 봉선리에서 월슨 선교사에 의해 봉선리교회로 시작되었다. 봉선리교회가 1928년 여수시 율천면 신풍리로 이전하여 신풍교회로 불리웠으나 1935년부터 병원 명칭이 애양원의 이름을 가지게 됨으로 신풍교회는 애양원교회로 불리게 되었다. 애양원은 ‘사랑으로 양육한다’는 뜻이다.

애양원교회는 특수한 사명을 가지지 않으면 부임할 수 없는 한센병 환자들의 교회였다. 이 교회가 한국교회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것은 1939년 7월 손양원 목사가 당시 전도사 신분으로 부임하면서부터이다. 손 전도사는 1938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하였지만 신사참배 반대자라는 이유로 목사 안수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애양원교회가 그를 담임교역자로 청빙한 것이다. 하지만 부임하고서도 손 목사는 1940년 신사참배 반대를 이유로 투옥되어 목회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 애양병원 마당에 세워진 애양원 초대원장 윌슨 선교사의 조형물.

해방 후 출옥하여 손양원 목사는 다시 애양원교회에 부임하고 1946년 2월 경남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그러나 1948년 10월 21일 여순사건으로 두 아들이 안재선을 중심으로 한 좌익 학생들에게 순교를 당하는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안재선을 용서하고 양아들로 삼는 일을 통해 사랑의 실천자로 알려졌고, 1949년 안용준에 의해 이를 기록한 <사랑의 원자탄> 책자가 나왔다. 그러나 6·25 전쟁 중 손양원 목사도 공산군에게 끌려가 1950년 9월 27일 총살당하며 순교자가 되었다.

손양원목사순교기념관은 애양원교회와 여수노회 그리고 한국교회의 성도들의 헌금으로 1993년 4월 27일 건축되었고, 이후 많은 순례자들이 탐방하였다. 2012년 5월에는 손양원목사순교기념탑인 사랑의 열매탑이 애양원 경내에 세워졌고, 2013년에는 손양원목사순교유적공원이 조성되면서 손 목사를 비롯한 12인의 순교자들의 부조물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전남 동부권 일대 순교자 발견하다 

여수의 순교유적지를 순례하는 이들은 손양원 목사 외에도 또 다른 귀한 이름들을 발견하게 된다. 천국에서는 동일한 영광으로 빛날 고흥 광양 구례 순천 여수 등 전남 동부권 일대의 순교자들이다.

손양원 목사와 함께 미평과수원으로 끌려가 인민군의 총탄에 목숨을 잃은 조상학 목사, 윤형숙 전도사, 지춘철 성도, 지한영 강도사, 허상용 집사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또한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순교한 이기풍 목사와 양용근 목사, 6·25 당시 순교한 김정복 목사, 안덕윤 목사, 이선용 목사 등의 이름도 보이며, 손양원 목사의 두 아들 동인 동신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애양원 손양원목사유적공원 내에 설치된 손양원 목사 기념상 곁에는 이들을 기념하는 조형물들도 나란히 배치되어 있으며, 순교현장인 미평과수원 부근에 조성된 여수시 둔덕동 순교자공원과 광양 웅동리의 광양선교백주년기념관 등에서도 이들의 면면을 확인할 수 있다. 손동인 동신 형제가 피살된 구 순천경찰서 자리인 순천시 남내동에는 지난해 순천시에서 표지석을 세워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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