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염산교회 전경.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 되었다
한국전쟁 당시 77명 목숨 잃어…총회 제1호 순교사적지로 지정, 의미 돼새겨

족히 4~5kg은 넘어 보이는 돌을 목에 걸었다. 양손으로 돌을 받친 채 낑낑대며 걸어도 고개가 자꾸 앞으로 휘어진다. 몇 걸음 지나지 않아 비칠비칠 땀이 흐르고, 목과 어깨까지 시큰해지는 느낌이다. ‘순교자의 길’을 걷는 체험은 예상보다 더 고됐다.

영광 염산교회(임준석 목사) 예배당에서 마을을 돌아 순교자들이 최후를 맞은 설도항까지 이어지는 길을 걷는 일은 서글프고 숙연하다. 역사위원회 회계이자 순교자기념사업부 총무로 이 여행에 동행한 오광춘 장로도 말을 잃었다. 두렵고 한스러웠을 이 길을 66년 전 그들은 찬송을 부르며 걸었다는 이야기는 생존자들의 증언이 아니었다면 꾸민 전설처럼 여겨졌으리라.

▲ 염산교회 순교기념관에 전시된 유물들.

1950년 10월, 그 길을 무겁게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착하게만 살아왔던 부부, 남다르게 영특해 장래를 촉망받던 청년, 젖먹이 동생을 업은 순박한 어린 소녀. 그들에게는 예수를 열심히 믿었다는 것 말고 이렇게 죽음을 맞이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하늘은 짙푸르고 조금씩 서늘한 바람도 불어오는 무렵이었지만 염산의 바닷가에는 덥고 어두운 공기가 내려앉았다. 행렬 사이로 동생들을 다독이는 맏언니 옥자의 낮은 속삭임이 퍼져나갔다. “울지 마, 우리는 지금 천국으로 가는 거야.”

노을이 짙기로 유명한 칠산바다의 거친 물결이 설도항 수문 앞에 넘실대는 가운데 마침내 잔인한 처형이 시작됐다. 무거운 돌을 목에 맨 사람들은 바닷물에 던져졌고, 하나 둘씩 파도 속으로 사라졌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맨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노병재 집사의 찬송소리도 스러져갔다. 그의 형제와 일가 22명은 함께 목숨을 잃었다.

참극은 바닷가에서만 끝나지 않았다. 당시 염산교회를 담임하던 김방호 목사는 퍼붓는 몽둥이 아래에서 가족 8명과 함께 나란히 순교했고, 동역자였던 허상 장로는 아내와 함께 야산으로 끌려가서는 죽창에 찔려 생을 달리했다. 예배당은 불에 타올랐고, 그 불길 속에서 강대상을 끄집어냈던 목포성경학교 학생 기삼도마저 폭도들에게 생명을 빼앗겼다.

▲ 77인 순교자를 기리는 순교기념비와 합장 묘역. 이 땅에 하나님나라가 임할 때까지 오는 세대에 계속해서 순교신앙을 가르치는 산 교육장이 될 것이다.

그렇게 하나 둘씩 천국으로 떠난 순교자의 숫자가 무려 77명에 이르렀다. 누군가에게는 행운을 상징하는 이 숫자가, 여기에서는 비극의 상흔이 되고 만 것이다. 그들 중 32명의 시신은 교회 앞마당에 조성된 순교공원에 합장되어있으며, 다른 지역에 안치되어있던 김방호 목사와 허상 장로의 묘소도 2014년에 이곳으로 옮겨와 6·25 당시의 아픈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비극은 염산교회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인근 야월교회에서도 65명이 목숨을 잃는 등 전쟁 중에 영광군 전체에서 194명이라는 사상 최다의 기독교 순교자가 발생했다. 이에 영광군에서는 대표적 순교현장인 염산교회 아래 설도항 입구에 기독교인 순교탑을, 야월교회당 옆에는 순교자기념관을 각각 건립해 추모하며 후세를 위한 역사유산으로 활용하고 있다.

예배당이 사라지고 교인 대다수가 희생된 절망적 상황에서도 교회가 재건되고 다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놀라운 일이었다. 과연 순교자의 피는 과연 교회의 씨앗이었던 것이다.

살아남은 이들 43명이 사건 이듬해인 1951년 2월 염산농업창고에 모여 항아리 속에 숨겨두었던 성경책과 찬송가를 꺼내 수요예배를 올리면서, 무너진 제단을 신축하기 시작했다. 김방호 목사의 가족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둘째 아들 김익 전도사도 이 무렵 돌아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염산교회 4대 교역자로 사역했다. 부임 후 그의 첫 설교는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나는 이곳에 내 부모 형제들의 원수를 갚으러 왔습니다. 원수 갚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을 예수 믿게 해서 천국 가게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참된 원수 갚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도 저와 함께 이 일에 힘을 합쳐주세요.”

이후 염산교회는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를 감싸 안는 사랑의 교회로 불렸고, 슬프고도 자랑스러운 순교유산을 간직한 채 오늘에 이르렀다. 어느새 염산교회는 전국 곳곳에서 순교신앙을 배우고자 찾아오는 순례자들의 필수 방문코스로 부각되었다.

특히 김태균 목사 시무 당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순교사적 발굴 및 보존 작업이 임준석 목사 부임을 전후로 제대로 꽃을 피워, 염산교회에서는 최근 몇 년 사이 기념비적인 일들이 수차례 벌어졌다.

▲ 순교현장인 설도항에 건립된 영광지역 기독교순교자들의 기념탑과 조형물.

2009년에는 순교체험관과 전망대를 갖춘 새로운 예배당이 건축되었고, 이후 묘역정비와 함께 순교기념공원 조성, 순교자들을 기리는 박종구 목사의 추모시비 건립, 순교사적을 소개하는 영상물 및 도서제작 등이 차근차근 이루어졌다.

그 중 가장 주목할 지점은 염산교회가 총회 제1호 순교사적지라는 명성을 얻게 된 일이었다. 2014년 77명의 순교자가 총회 순교자 명부에 등재된 이듬해, 제99회 총회에서 염산교회를 최초의 총회 순교사적지로 지정하도록 결의한다. 이후 염산교회를 교단 차원의 순교신앙 교육장소로 지정하자는 논의와 함께 국가 사적지 지정을 위한 노력 또한 이어지고 있다.

순교기념공원을 잠시 거닐다 내려다본 바닷가에서는 지금도 어제와 다른 포말이 일어났다 부서지고, 새로운 생명들이 탄생했다가 소멸하기를 반복한다. 하지만 1950년 가을에 일어났던 거룩한 순교행적은 여기의 시공간 어디쯤에 고정되어, 단단히 자리를 잡고 또 다른 시간과 세대를 만난다.

아마도 하나님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그 날까지 염산교회는 신앙의 산 교육장, 천국의 안내소로 그렇게 남아있을 것이다.

▲ 6·25 당시 소실되었던 염산교회 옛 예배당의 복원공사가 한창이다.

염산교회 옛예배당 복원 앞둬
국가사적지 지정 위한 교단적 협력 중요

77인 순교자들의 영적 보금자리이자, 전란과 학살의 아픔을 상징하는 존재인 염산교회 옛 예배당이 한창 복원공사 중이다. 이미 외부 공사가 거의 마무리된 상태로, 예정대로라면 9월 총회 이전에는 완공된 모습을 선보일 수 있게 된다.

처음부터 염산교회가 서광주노회를 통해 총회에 헌의한 바는 국가사적지 지정을 받도록 도움을 달라는 것이었다. 제100회 총회에서 총회사적지 지정이 이루어지자 본격적으로 지방자치단체의 협력을 얻어 정부에 사적지 지정을 신청하는 단계에 돌입했는데, 문제는 사적지 지정을 받기에 충분한 역사자료들을 구비하는 일이었다.

순교자 묘역이라든가 각종 기록과 증언, 순교체험관에 전시된 유물 등 적지 않은 자료들이 이미 갖춰져 있기는 하지만, 좀 더 상징적인 존재 하나가 필요했고 그것이 바로 오래 전부터 교회가 복원을 구상해왔던 옛 예배당이었다.

총회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서 지난 5월 5일 옛 예배당 터에 예전모습 그대로 약 50여 평의 건물을 짓는 공사가 시작되었고, 이 건물은 순교유물과 유품을 전시하고 체험 및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공간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전남도청 등 지자체에서도 부대건물 건립을 지원하는 등 대단히 협조적인 분위기이다.

문제는 총회지원금, 교회와 노회 등에서 부담하기로 약속한 금액을 합해도 약 5000만원의 공사비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자칫 이대로 회기가 넘어가면 공사는 속절없이 지연될 것이고, 한껏 무르익었던 국가사적지 지정 추진 분위기도 탄력을 잃을 것이 우려된다.

한국교회의 소중한 유산이 민족 전체의 유산으로 대우받을 수 있도록 전국교회가 나서주어야 할 때이다. 후원계좌:농협 351-4611-4890-63(오광춘).

 

“순교신앙은 새로운 시작이어야”

▲ 오광춘 장로가 염산교회를 방문해 옛 순교자들처럼 목에 돌을 걸고 순교체험을 하고 있다.

피 흘리고 목숨 바쳐 신앙의 변절을 거부하며 처절한 몸부림으로 신앙을 지킨 순교자들을 우리 믿음의 후손들이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순교자들의 신앙은 우리의 자랑이고 긍지이며 진정한 모델이다.

염산교회는 특히 세계교회사에 기록될 정도로 많은 순교의 피를 흘려, 한국교회 순교사적에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두려움 없이 죽음의 길을 걸었던 순교자들의 그 숭고한 발걸음이 헛되이 잊히지 않도록 지키는 것이 후대들의 사명이다. 순교는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개인적으로는 순교자의 고장인 영광에서 나고 자란 신앙의 후배로서, 마땅히 그 사적을 세상에 알리고 다음세대들을 순교신앙으로 일깨우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총회역사위원회와 순교자기념사업부에서 열심히 사역하며 관련 사업을 진행하는 중이다.

한국전쟁 때 불타버렸다가 현재 복원작업이 진행 중인 염산교회 옛 예배당이 8월말 준공을 앞두고 있다. 복원되는 예배당은 총회의 자랑스러운 유물이자, 우리 교단은 물론 한국교회 전체를 위한 순교정신 교육의 장이 될 것이다. 또한 앞으로 순교자 등재와 사적지 발굴지 및 지정사업이 더 힘있게 펼쳐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 사업이 무사히 완공될 수 있도록 전국의 교회와 성도들이 기도와 협력의 손길로 동참해주시길 당부 드린다. 

오광춘 장로(영광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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