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봉 목사(거금도월포교회)

강태봉 목사(거금도월포교회)
강태봉 목사(거금도월포교회)

대한민국이 아직 산아제한 정책을 시행할 때, 나는 여섯 자녀를 낳았다. 강원도 횡성에서 사역하던 시절 두 딸이 태어났는데, 신학대학원을 다니며 교육전도사로 섬기던 때라 분유값 대는 것조차 버거웠다.

아내가 셋째 아이를 임신하고 3개월이 되었을 무렵 고흥 나로도로 사역지를 옮겼다. 한 여름에 트럭을 타고 다시 배로 옮겨가며 거의 13시간을 이동하는 것은 산모에게도, 뱃속의 아기에게도 무리가 되는 일이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이듬해 3월 아들을 출산했는데, 태어나면서부터 심장협착증을 갖고 있었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치료했지만 결국 세상에 나온 지 14개월 만에 하나님 품으로 돌려보내야 했다.

자녀를 잃은 아픔과 충격은 오래갔다. 특히 아내는 날마다 힘겨워했다. 다시 세 아이를 더 낳아 키우면서 다친 마음을 치유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아들 하나를 대신해 다섯 공주를 주셨다. 아이들이 하나씩 태어날 때마다 진심으로 기뻐하고 환영했다. 성감별 따위는 하지 않았다.

현재의 사역지인 거금도에 와서는 첫째와 둘째가 배를 타고 녹동읍까지 가서 유치원을 다녔다. 배를 잘못 타서 엉뚱한 항구로 가는 소동도 겪었지만, 결국 둘 다 무사히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다른 세 아이는 마침 거금도 안에 대흥교회 어린이집이 생겨, 그곳으로 다녔다. 집에서 10km 떨어진 거리에 있는 어린이집이었는데, 고맙게도 아이들을 지극정성으로 돌봐주었다. 특히 막내는 우리 부부가 거금도농원에서 밤늦게까지 일하기 시작한 무렵에 태어나는 바람에 생후 18개월부터 어린이집을 다녀야 했는데, 선생님들 등에 업혀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같은 교회 권사님 한 분이 아이들을 친손녀처럼 돌봐주셔서 큰 덕을 보기도 했다. 자녀들의 어린 시절을 책임져 주신 선생님들, 지금도 아이들이 할머니처럼 따르는 윤선례 권사님께 감사드린다.

비록 가난한 섬 교회 목회자이지만 자녀들만큼은 세상에서 경쟁력을 갖춘 인물들로 키우고 싶었다. 잘 먹이고, 잘 가르치려고 애를 썼다. 거금도농원이 다섯 아이의 만만찮은 식비와 교육비를 감당할 수 있도록 힘이 되어 주었다. 노동은 부끄럽지 않았다. 아버지로서 책임을 다하는 것인 만큼 떳떳한 자세로 일했다.

학업을 다 마친 아이들은 이제 각자 전공을 살려 어엿한 사회 일원으로 활동 중이다. 막내만 아직 대학교에 재학 중이다. 자녀들을 잘 길러주시고, 우리 부부 또한 부모로서 역할을 소홀히 하지 않도록 인도해주신 하나님 은혜를 찬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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