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열 교수
·총신대 호크마교양교육원 원장
·융합콘텐츠학

우리의 신앙은 이미지를 통해 더욱 강화될 수 있다

하나의 이미지를 가지고 크신 하나님 사랑을 여러 세대에 걸쳐 전달할 수 있어

기독교콘텐츠 기획자들은 성경 메시지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표현할지 고민해야

사람들에게 ‘이미지’하면 연상되는 단어들을 말해보라고 하면 ‘자극적이다’라거나 ‘솔직히 뭘 뜻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자주 나온다. 보통은 이미지를 대할 때, 그냥 직관적으로 바라보고 그 의미를 파악하려는 경향들이 있다. 그리고 대다수는 자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미지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사고하거나 판단하곤 한다. 우리는 좀 더 깊은 수준으로 들어가 보자.

이미지란 무엇인가?

이미지(image)는 ‘…에 대한’이라는 대상성을 갖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진 이미지는 거기에 담긴 대상으로서의 자연물이나 사물 등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 화가가 그린 그림, 사진 작자의 사진, 디자이너의 디자인 작품 등처럼 다양한 결과물을 완성하는 데는 필요한 대상이 존재한다.

그림1. 작품명 ‘Only’(김정열 교수 작) 말씀의 핵심인 믿음, 소망, 사랑 그리고 오직 예수를 상징적인 포스터로 디자인한 작품.
그림1. 작품명 ‘Only’(김정열 교수 작) 말씀의 핵심인 믿음, 소망, 사랑 그리고 오직 예수를 상징적인 포스터로 디자인한 작품.

사전에서는 이미지에 대해 ‘마음 속에 언어로 그린 그림’ 또는 ‘상(像), 영상(映像), 심상(心象)’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여기에서 ‘상’이란 인간이 만든 사물과 그것을 그린 그림을 말한다. ‘영상’이란 디스플레이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그림을 말하며, ‘심상’이란 사람의 마음속에 그려지는 이미지를 말한다. 이 모두가 이미지인 것이다. 좀 더 쉽게 이야기하자면, 어떤 대상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들을 이미지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정의를 바탕으로 기독교콘텐츠로서의 이미지는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자. 기독교,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사물과 그것을 그린 그림은 ‘상’에 해당되는 기독교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읽고 사람들의 머릿속에 어떤 그림이 그려진다면 그것은 ‘심상’에 해당하는 기독교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그림1 참조) 어느 쪽이든 기독교콘텐츠에 활용되는 이미지는 대부분 성경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돌아온 탕자

그림2는 미술에 대해 좀 배웠다 하는 이들은 거의 다 알고 있는 유명한 작품이다. 그림의 제목은 ‘돌아온 탕자’(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이다. 1668년부터 1669년 사이에 작업한 것으로 성경 이미지를 주제로 많은 작품을 남긴 렘브란트의 그림이다. 그림의 크기는 가로 2m에 세로 2.6m 정도로 큰 작품에 해당된다. 현재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슈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그림2. 작품명 ‘돌아온 탕자’(렘브란트 작, 1669년).
그림2. 작품명 ‘돌아온 탕자’(렘브란트 작, 1669년).

어려서부터 기독교 문화에서 자라온 사람들이라면 ‘돌아온 탕자’라는 제목의 설교를 수도 없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우리가 잘고 있는 것처럼 누가복음 15장 11절부터 32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표적인 비유 중 하나이다.

두 아들을 가진 아버지가 있었다. 그런데 작은 아들이 자기 몫의 유산을 요구한다. 아버지는 그 요구를 들어주었지만, 작은 아들은 재산을 탕진하고 굶주림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결국 작은 아들은 아버지에게 돌아가 자기를 더이상 아들이 아닌 종으로 받아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를 꾸짖지 않는다. 도리어 성대한 잔치를 열고 돌아온 아들을 환영한다. 아버지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드러내는 큰 아들에게 아버지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이 네 것이며, 둘째 아들은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것이 대략적인 탕자의 비유 스토리이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죄인인 인간을 아버지의 마음으로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드러낸다.

이 이야기를 이미지로 표현하기 위해 렘브란트는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비유의 어떠한 부분이 중요한지,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그리고 성경말씀을 과연 정확히 전달할 수 있을 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필자도 작품을 하게 되면 많은 구상을 한다. 하나의 도형을 그려 넣는 데에도 작품에서 이 도형은 어떠한 의미를 내포하는지, 어느 위치에 배치를 하는 것이 적절할지, 또 어떠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효과적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시각적인 접근 방식, 또 그렇게 표현했을 때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을지 여부, 혹시 작가의 의도와 다르게 해석될 여지는 없을지에 대해서까지 수많은 번민을 겪으며 작업에 임한다.

그래서 렘브란트의 작품을 보면서도 과연 작가는 무엇에 중점을 두었을지 열심히 추측해 보았다. 이미 이 작품의 이미지에 대해서 학자들의 다각적인 분석들이 나와 있지만, 필자가 나름대로 해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그림 속에서 아버지의 모습은 하나님을, 탕자의 모습은 우리들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을 떠나 세상 속에서 힘들게 살아 온, 그리고 지금도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가 결국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는 것을 작가는 표현하고자 했다. 따뜻한 두 손으로 아들을 감싸주고, 위로하는 모습에서 자녀 된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에는 이와 같은 스토리텔링이 함축적으로 담겨있다. 자신의 작품 관람자들에게 더 많은 힌트를 주고 싶었던 렘브란트는 아버지의 두 손과 아들의 두 발을 대조적으로 묘사하면서, 하나님 사랑의 따스함과 거친 세상의 비정함에 대한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설교를 통해 배운 ‘돌아온 탕자’의 교훈은 렘브란트의 작품을 통해 우리 내면에 더욱 강화된다. 우리는 이 작품을 감상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지를 동일하게 혹은 더 강도 높게 확인한다.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를 기독교콘텐츠라 규정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기호학 관점에서 기독교이미지

언어학자인 소쉬르는 기호를 ‘기표’와 ‘기의’라는 개념으로 분리해서 설명한다. ‘기표’는 기호의 지각 가능하고 전달 가능한 물질적인 부분이다. 대표적으로 언어와 이미지가 있다. ‘기의’는 기표를 인지한 사람들이 각자 다양하게 생각하고 떠올리는 것들을 말한다.

기호학의 관점에서 ‘돌아온 탕자’를 해석하는 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들은 렘브란트가 그림 속에서 아버지의 두 손을 일부러 다르게 표현한 것을 주목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 부모의 사랑과도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사람의 눈높이에서 가장 하나님의 사랑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손은 강인한 남자의 손으로 묘사해 아버지의 사랑을, 다른 한 손은 부드러운 여성의 손으로 묘사해 어머니의 사랑을 함께 그림 속에 표현했다는 것이 학자들의 해석이다.

이러한 차이점을 포착하지 못한 이들이라면 같은 그림을 보면서도 렘브란트의 의도를 100%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혹은 차이점을 포착했다고 해도 그냥 양손이 좀 다르게 보인다는 정도로 지나칠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의 핵심은 작가가 성경을 읽고, 마음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 것인지 고민하고 기획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작가는 오랜 고민을 거쳐 수많은 성경 내용 중 ‘돌아온 탕자’의 비유를 소재로 선택하고, 이를 활용해 하나님의 사랑을 시각적 이미지로 구현해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은 것처럼, 렘브란트의 작품을 통해서도 은혜를 받았을 것이다.

김정열 교수(총신대 호크마교양교육원 원장·융합콘텐츠학)
김정열 교수(총신대 호크마교양교육원 원장·융합콘텐츠학)

17세기 작품인 이 그림이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 사랑을 알리는 기독교콘텐츠로 각광을 받고 있다. 앞으로도 기독교인들은 물론 비기독교인들에게까지 신앙적 영향력을 끼치는 역할을 할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우리 시대 기독교인들을 통해서도 이처럼 탁월한 기독교콘텐츠들이 제작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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