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로 가득한 사이비 집단의 흉년 든 들판에 서지 말라

시작하는 글

오명현 목사(전주함께하는교회·총회이단대책위 총무)
오명현 목사(전주함께하는교회·총회이단대책위 총무)

우리 바로 윗세대들에게서 들었던  ‘보릿고개’라는 말이 기억난다. 햇보리가 나올 때까지 넘기 어려운 고개라는 뜻이라고 한다. 지금 80~90대의 어른들은 가을에 추수한 쌀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아껴먹었다고 한다. 굶기를 밥 먹듯 하면서 아껴도 3월이면 가을식량이 떨어졌다. 보리가 익을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뱃가죽이 등에 붙어 허기에 지쳐갔다. 밀과 보리가 익기만을 학수고대했다. 그런데 어느 해는 밀과 보리가 다 얼어 죽었다. 흉년 든 들판에 밀과 보리가 새까맣게 죽어 있는 모습에 농부들은 망연자실할 뿐이었다.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흉년 든 들판에서 죽어 가는 자들을 보면서 속을 새까맣게 태우고 있는 집단들이 있다. 교주와 지도부에 속은 줄도 모르고 육체 영생을 확신하는 자들이 있다. 소위 육체 영생한다고 거짓되게 가르치는 집단들일 것이다. 오늘은 신천지 이만희 교주가 요한계시록 6장 6절의 “밀 한 되 보리 석 되”를 인용하여 어떤 주장을 하였는가를 확인하고 그에 대한 반론을 제기해 본다.

1. 이만희의 저울, 밀, 보리에 대한 주장

성경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히 9:27)이라고 했다. 또한 “죄의 값은 사망”(롬 6:23)이라고 증거하고 있다. 전도서 기자는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다”(전 3:2)고 고백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뒤집고 육체로 영생한다고 주장하는 집단들이 있다. 그 중에 신천지 이만희는 밀과 보리를 소재로 삼아 영생을 주장하였는데, 그의 주장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이만희는 “검은 말에 탄 자의 손에 있는 저울은 믿음과 행실을 달아보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다”고 하면서 다음의 성경구절을 인용했다.(삼상 2:3, 욥 31:6, 시 62:9, 단 5:27)(이만희 저, <요한계시록의실상>)
둘째로 이만희는 “밀은 말씀을 가진(렘 23:28) 지도자요, 보리는 증거하는 선지자이다”라고 주장했다.(이만희 저, <계시록완전해설>)

셋째로 이만희는 밀과 보리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를 “말씀(데나리온)으로 척량(저울)하니 말씀(밀, 보리)을 가진 사람(되)이 네 사람이요, 이 말씀의 씨로 이 일 후에 다시 뿌려 신천지에서 농사하게 된다”고 주장했다.(이만희 저, <계시록완전해설>)

넷째로 이만희는 그의 또 다른 저서에서 밀과 보리에 대해 ”결국 모두가 원수 대적에게 다 먹히고 사도요한적인 인물로 오신 자와 그에 속한 두세 명(밀 한 되 보리 석 되)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증거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할 것을 보여준 내용이다“라고 했다.(이만희 저, <계시록의 진상>)

2. 이만희의 저울, 밀, 보리에 대한 반론

첫째로 이만희는 검은 말 탄 자의 손에 들린 저울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검은 말을 탄 자’의 신분과 하나님의 말씀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주장이다. ‘검은 말’은 기근을 상징한다. 즉 경제적인 어려움을 가져다주는 자를 말한다. 앞의 두 재앙은 전쟁을 상징하고 있다. 전쟁이 일어나면 기근이 뒤따라온다. ‘검은 말 탄 자’가 손에 말씀을 가진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저울을 가지고 있다. 박윤선 박사는 구약 에스겔 4장 10절을 근거로 저울은 흉년과 기근을 말한다고 했다. 즉 구약에서 식량을 저울에 달아 무게를 잰 다음에 먹게 하는 것은 극한 궁핍을 나타내는 것이며 그것이 하나님의 징계나 심판을 나타낸다.(레 26:26; 겔 4:16~17) 따라서 저울은 말씀이 아니라 흉년과 기근을 말한다.

둘째로 이만희가 인용한 구절들은 본문(계 6:6)의 저울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의미임을 알 수 있다. “행동을 달아보신다”(삼상 2:3)는 내용과 “나를 공평한 저울로 달아보신다”(욥 31:6)는 내용은 하나님이 우리의 행동을 다 보시고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만희의 주장처럼 달아보신다는 말을 하나님의 말씀(저울)이라고 덧붙이는 것은 그의 자의적인 해석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같은 단어만 있으면 갖다 붙이는 것은 성경 해석의 기본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셋째로 이만희는 밀을 ‘사도요한적인 인물로 오신 자’라고 주장했다. 신천지에서 사도요한적인 인물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바로 이만희를 말한다. 그리고 보리는 이만희에게 속한 두세 사람이라고 했다. 신천지 부산 야고보 지파 강사를 지냈던 지명한 씨가 신천지를 탈퇴하면서 밝힌 바에 의하면, “신천지에서는 밀 1되는 이만희 총회장이요, 보리 3되는 장막성전에서 나온 3명 곧 윤◯◯, 윤◯◯, 지◯◯이라고 대부분 알고 있었다”라고 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신천지는 이 교리를 슬쩍 바꾸었다고 한다, 이유는 절대 죽지 않는다는 보리 석 되 중 한 사람이 그만 죽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사건은 성령체의 계시를 받고 실상을 직접 보았다는 이만희의 주장이 얼마나 허구인가를 반증하고 있다.

3. 저울, 밀, 보리에 대한 성경적 견해

본문(계 6:5~6)의 저울과 밀과 보리에 대한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첫째로 본문에서의 검은 말(馬)이 주는 상징적인 의미는 슬픔과 애곡과 황폐를 상징한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하지 않는 이스라엘을 징계하실 것을 선언했다.(사 50:3; 렘 4:28; 애 5:10) 이 징계는 흑암으로 나타나고 그 때에 사람들이 슬퍼하게 될 것을 선지자들이 선포한 것이다. 어두움은 심판의 결과이다. 따라서 본문의 세 번째 인 재앙의 ‘검은 말’은 황폐와 기근을 상징하고 있음을 확신한다.(그랜드주석 계시록 참고)

둘째로 본문(계 6:6)의 저울은 양식의 무게를 달기 위한 기구로서 세 번째 인 재앙이 내려지면 기근이 온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흉년이 오면 양식이 모자라기 때문에 배급을 주어야 한다. 그래서 저울이 등장한다.(겔 4:9~11 참고) 저울은 공평한 배급을 위한 기구이다. 변종길 교수는 “저울은 기근의 상징이다”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공평한 기구로서의 저울은 풍년 때와 흉년 때에는 그 의미가 각각 달라진다. 본문의 저울은 기구한 처지를 표현하고 있다. 핸드릭슨은 “떡을 저울로 달아서 먹는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곤궁한 상태를 말한다”라고 했다.(핸드릭슨, <요한계시록>)

셋째로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 보리 석 되라는 것은 극한 기근을 말하고 있다. ‘한 데나리온’은 당시 장정의 하루 품삯이었다. 오광만 교수는 “당시는 하루 품삯으로 한 가족이 3일을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검은 말 탄 자의 재앙이 오면, 장정 하루 품삯으로 온 가족이 먹을 수 없게 된다”라고 해석했다. 그만큼 양식 구하기가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래드는 “본문에 나오는 밀과 보리의 값은 신약 시대의 팔레스틴 지방의 평균 물가의 12배나 되는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암시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 기근은 모든 사람에게 미치지만 양식 공급이 제한 된 이 시기에 그리스도인이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재앙은 교회를 핍박하는 세상 권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다. 그러기에 이 재앙은 믿음을 지키고 세상을 이긴 신자들에게는 위로의 메시지인 것이다. 주님은 세상 권세를 심판하시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 삼은 교회에 최후 승리를 보장해 주신다. 교회는 주님의 위로를 누리는 평안의 공동체인 것이다. 그러기에 교회는 그리스도만을 머리 삼고 사나죽으나 그리스도의 것임을 증명해야 한다. 그리스도 외에는 그 어떤 자도 재림 주가 될 수 없다는 믿음을 지켜야 한다.

이만희는 본문에 열거된 기구나 곡식을 사람으로 실상화(實相花) 했다. 이만희는 검은 말과 검은 말에 탄 자를 셋째 천사장의 명령을 받고 출현하는 영과 육이라고 말했다. 즉 검은 말은 육을 가진 어떤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가 누구인가? 이만희는 저울을 말씀이라고 했고, 밀은 말씀을 가진 지도자라고 했고, 보리는 증거하는 자라고 했다. 지명한 씨의 기자회견 내용을 보면, 밀은 총회장(이만희)이요, 보리는 3명 곧 윤◯◯, 윤◯◯, 지◯◯이다. 그런데 이만희는 모순된 주장을 했다. 즉 밀 한 되 보리 석 되가 있는 곳은 사단의 회가 된 일곱 교회라고 주장했다.(이만희 저, <계시록완전해설>) 왜 이만희는 이런 모순된 주장을 했을까? 그가 받았고 먹었고 보았다는 실상 계시가 거짓이기 때문이다.

● 맺는 글

논리는 일관성이 생명이다. 어떤 주장을 했다면 적어도 문장 안에서 충돌을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 본문(계 6:5~6)의 밀과 보리를 실상계시라는 미명하에 그 실명(이만희와 윤, 윤, 지)을 밝혔다. 신천지는 14만4000에 들면 육체 영생을 한다고 가르치고 신천지인들은 그렇게 믿고 있는 줄 안다. 그렇다면 밀(이만희)과 보리(윤, 윤, 지)는 죽으면 안 된다. 그런데 보리 중 한 사람이 죽었다고 한다. 이는 이만희 교주의 실상교리가 거짓이라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신천지가 믿는 육체영생교리가 허구임이 들어났다. 사이비 집단은 흉년 든 들판과 같다. 그 들판에서는 검게 죽어 가는 밀과 보리만 보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허접한 교리에 미혹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성경은 이단사이비 집단에 넘어가는 유형에 대해서 밝혔다. 바른 교훈을 받지 않는 사람, 진리는 듣는 귀가 가리어진 사람, 자기 개인의 욕심을 채워줄 수 있는 스승을 찾는 사람,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는 사람이 사이비 집단에 빠진다.(딤후 4:3~4) 사람이 육체로 영생한다는 주장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다. 성경은 죄의 값은 사망이라고 했다.(롬 6:23)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했다.(히 9:27) 육체로 영생한다는 교리는 새빨간 거짓말인 것이다. 거짓교리가 교회에 들어오지 않게 하려면, 참된 교리(대소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문답, 도르트신조 등)를 가르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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