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은 ‘지금 이만희’가 아닌 예수가 친히 보여주셨다

 

오명현 목사(전주함께하는교회·총회이단대책위 총무)
오명현 목사(전주함께하는교회·총회이단대책위 총무)

시작하는 글

오스트리아 빈 출신인 유태인 성경학자 알프레드 에더스하임의 대표적인 책(메시야)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총 네 권으로 된 책은 제법 두툼하여 읽는 것조차도 만만치 않았다. 1권은 메시야로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속의 일을 성취하기까지의 당시 유대와 주변 세계의 역사, 정치, 사회, 문화, 종교적 배경에 대한 내용이었다. 책의 추천사를 쓴 김지찬 교수는 목회자들의 설교에 대해서 “역사적 배경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조차도 없이 비역사적 또는 탈역사적으로 해석하는 설교자들로 인해 성경 본문이 그저 추상적이고, 종교적 담론으로 전락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를 우려했다. 성경 본문이 담고 있는 당시 지평(사상, 사회, 문화, 정치, 지리)을 무시한 채 이 시대의 자기 집단에 적용하여 왜곡하는 집단들이 있다. 사이비 집단의 가장 극명한 점은 성경의 역사성을 무시하고, 교주의 일방적인 주장을 맹신하는 것이다. 신천지 교주 이만희는 요한계시록 5장 1절의 일곱 인으로 봉함된 인(印)을 자신이 뗐다고 주장했다. 필자는 이만희의 그런 주장이 왜 계시록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가를 밝히고자 한다.

1. 봉함된 두루마리에 대한 이만희의 주장

요한계시록 5장 1절을 보면,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고 했다. 이 구절을 들어 이만희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첫째로 이만희는 “본문의 봉한 책은 계시록 성취 때까지 ‘비유’로 감추어둔 요한계시록이라”고 주장했다.(이만희 저. <요한계시록의 실상>)

둘째로 이만희는 “계시록이 봉해지면 성경 전체가 봉해지는 결과가 되며 계시록이 개봉되면 성경 전체가 개봉된다”라고 주장했다.(이만희 저. <요한계시록의 진상>)

셋째로 이만희는 “창세로부터 6000년간 감추어졌던 이 비밀의 말씀이 주님의 약속대로 오늘날 개봉되어 우리에게 알려지는 것이니”라고 주장했다.(이만희 저. <요한계시록의 진상>)

넷째로 이만희는 “이 외 누구도 계시록의 봉한 책의 내용과 성취된 실상을 증거할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아는 체하지 말고 약속의 목자 이긴 자를 만나 순종해야 구원받게 된다”고 주장했다.<신천지총회교육부출판부 발행. 계시와주석> 뿐만 아니라, 이만희는 “계시록은 지상에 육신을 가지고 있는 인물을 통해서 이 말씀이 증거되고 또한 전파된다는 사실이다”라고 주장을 했다.

다섯째로 신천지는 “신약 성경 계시록은 예수님 재림 때 이룰 것을 비유로 예언한 것이며, 인봉(印封)한 책이다. 봉한 책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주셨고, 예수님은 이를 받아서 봉한 인을 다 떼셨고, 천사를 시켜 요한에게 주워 먹게 했다. 이 책은 요한의 뱃속에 있으며, 천사는 요한에게 책의 말씀과 보고 들은 것을 만인에게 전하라 하셨다. 하여 계시 책을 받아먹은 사람도(계 10장), 계시록 전장의 사건을 보고 들은 자도(계 22:8), 주께서 교회들에게 보내신 사자도(계 22:16) 오직 한 사람이다”라고 했다.<신천지 100항 상세반증>

2. 이만희의 봉함 된 두루마리에 대한 반론

첫째로 계시록은 이만희가 설정한 성취의 때에 열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2000년 전에 주님께서 친히 열어 보여주셨다. 요한계시록 5장 1절에서는 봉함되어졌다고 했다. 사도 요한은 이 봉함된 것을 열어서 보여줄 사람이 없다고 크게 울었다.(계 5:4) 그때에 장로 중 한 사람이 사도 요한에게 “유다지파 다윗의 뿌리가 그 일곱 인을 떼실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계 5:5) 어린 양(그리스도)이 일곱 인을 떼시어서 사도요한에게 보여주셨다.(계 6:1~17; 8:1) 따라서 요한계시록은 이만희가 주장한 것처럼 이 시대에 열린 것이 아님을 계시록 자체가 증명하고 있다. 주님은 요한계시록 22장 10절에서 “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고 하셨고, 예수님은 당시 ‘소아시아 교회에 사자들을 보내어 계시록의 말씀을 증언하셨다’라고 말씀하셨다.(계 22:16)

둘째로 계시록이 성경 전체를 좌우하는 것으로 말하지만 이는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에 대한 무지의 소치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다. 계시는 헬라어로 아포칼륍시스(αποκάλυψις)”인데, ‘덮개를 벗긴다’, ‘가리운 것을 제거한다는 의미다. 성경은 이미 창세기부터 열려져 있다. 그래서 창세기 11절을 읽으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이만희는 계시록을 비유로 감추어진 것처럼 주장하면서, 계시록이 열려야 성경 전체가 열린다고 말했지만, 이는 모종의 목적을 둔 거짓말인 것이다. 성경 전체 열쇠를 마치 계시록이 쥐고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정통교인을 미혹하기 위한 수법에 지나지 않는다.

셋째로 이만희는 결국 자기 자신만이 봉한 계시록의 실상을 증거할 수 있고 구원자로 자처하고 있으니 그는 사이비 교주임이 틀림없다. ‘약속의 목자 이긴 자를 만나 순종해야 구원받게 된다’는 주장을 했다. 성경은 ‘예수님 외에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증거한다.(행 4:12). 한 인간에 불과한 이만희는 자신을 ‘약속의 목자’, ‘이긴 자’라고 주장했다. 육체 영생 운운하지만 성경(히 9:27)이 말한 것처럼 인간(이만희)은 한 번 죽는 것이 정한 법칙이다. 늙어간다는 것은 죽어야 할 인간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챘다가 창자가 썩어서 죽었던 헤롯과 같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는 자는 저주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행 12:23)

 3. 인봉한 두루마리에 대한 성경적 증거

요한계시록 5장은 봉인된 두루마리와 어린 양에게 집중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본문은 인봉한 두루마리를 누가 열어 보여줄 것인가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첫째로 원통 모양의 두루마리가 봉인된 채 보좌에 앉아계시는 하나님의 오른 손에 있었다.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은 그 두루마리의 기원이 하나님께 있으며 개봉 여부는 하나님의 주권에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이 책은 ‘그 내용이 안팎으로 쓰여 있되, 장래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계획과 교회의 보호에 대한 계획에 대한 주재권’을 밝히고 있다.<데이비드 E. 아우내, 송태근> 그런데 개봉할 사람이 없다고 사도요한은 크게 울었다. 그러면 누가 인봉된 두루마리를 열었단 말인가?

둘째로 본문의 중심은 어린 양에게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린 양이 아니고서는 인봉된 두루마리를 개봉할 존재가 없다. 본문은 개봉할 존재에 대해서 비유로 말하지 않았고, 또 다른 실상이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요한계시록 5장 5절에서 “유다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인봉된 인을 뗄 것이라고 분명하게 언급했다. ‘유다지파의 사자’는 창세기 49장 8~9절에서 야곱의 자녀에 대한 예언적인 축복의 내용이다. 즉 유다지파의 사자는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마 2:2, 27:11) 박윤선 박사는 “사자는 이기는 자의 표상이요 이기는 것은 메시야의 특징이다”라고 했다.<박윤선 계시록> ‘다윗의 뿌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마 1:1; 계 22:16) 그리고 요한계시록 6장 1절에서 어린 양, 곧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을 떼셨다고 증거하고 있다. 따라서 이만희가 계시록을 6000년 만에 열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허무맹랑한 말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셋째로 두루마리를 개봉할 어린 양은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완수하신 분으로 소개되고 있다. 요한계시록 5장 6절을 보면,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고 했고, 이어서 7절을 보면, “그 어린 양이 두루마리를 취하셨다”고 했고, 8~9절에서는 “이십사 장로가 어린 양에게 엎드려 경배하고, 어린 양이 두루마리를 떼기에 합당하다”고 찬양을 드린 장면이 소개되고 있다. 핸드릭슨은 “그리스도께서 고난과 죽음을 통하여 양과 사자의 두 가지 성격을 보여주셨다. 그는 참 사자이며, 참 된 양임을 보여주었다”라고 했다.<핸드릭슨 계시록> 즉 두루마리를 뗄 분은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죽었던 그리스도 밖에 없다. 죽으시고 부활승천 하셔서 하나님의 보좌에 계시는 그리스도 밖에 없다. 12절을 보면,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다.

맺는 글

이만희는 1931년 9월 15일 경북 청도군 풍각면 현리 702번지에서 이재문 씨와 고상금 씨 사이에서 12아들 중 여섯째 아들로 태어났다.<만국소성회, 영핵. p.75> 그가 십자가에 죽은 적이 있었는가? 이만희는 재림주를 흉내 내고 있지만, 재림주는 반드시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고, 승천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이만희는 이런 과정이 전혀 없었다. 그의 족적을 보면 박태선, 유재열, 백만봉의 수하에서 약 30년을 지냈다. 그가 계시록을 먹었다는 것은 그의 주장일 뿐이다. 그가 내놓은 교리들은 박태선과 유재열과 백만봉에게서 전수받은 것이다. 그는 계시록의 인봉된 두루마리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자이다. 이만희는 이미 예수님이 열어놓으신 것을 마치 자기가 한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그가 회개하지 않고 계속 이런 거짓 주장을 한다면 그에게는 지옥의 유황불만 기다릴 것이다.(계 19:20, 20:10, 21:8, 22:18~19) 

이만희의 허무맹랑한 주장에 정통교회는 많은 교인들을 잃었다. 잃은 양을 다시 찾아야 한다. 잃은 양을 찾으려면, 목사들의 설교가 회복되어야 한다. 구속의 역사를 밝히는 설교, 순전한 복음 설교를 회복해야 한다. 누군가는 교단을 바르게 이끌어가기 위해서 정치도 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는 설교보다 더 중요하지 않다. 예루살렘교회의 사도들처럼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행 6:4)는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이단을 막을 수 있고 잃은 양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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