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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주의 5대교리, 개혁파 신학적 표준 제시하다[특별기고] 도르트신경 400주년 ⑩ 도르트신경이 교회사에 미친 영향
▲ 조현진 교수
(한국성서대)

1618년부터 1619년까지 지속된 도르트총회(Synod of Dort)는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이 항의서에서 제기한 5가지 신학적 문제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도르트신경(Canons of Dort)을 채택하였다. 도르트총회는 회의가 개최된 네덜란드뿐만 아니라 영국, 스코틀랜드, 스위스, 독일 등 여러 나라 개혁교회의 대표들이 참가한 국제적인 성격을 지닌 회의였다. 도르트총회가 채택한 칼빈주의 5대교리는 각 교리의 영문 앞 자를 따서 “TULIP교리”라고도 불리는데 1)전적 타락(Total Depravity) 2)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3)제한 속죄(Limited Atonement) 4)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 5)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Saints) 교리를 가리킨다. 이 교리들은 각기 분리될 수 없는 유기적인 연관성을 지니고 있어서 개혁주의 구원론의 입장을 명확히 설명하고 있다.

도르트총회는 재판적인 성격을 지닌 회의로 개혁파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로 인해 개혁파는 자신들의 신앙을 보장받게 되었고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은 추방되었다. 그러나 아르미니우스주의가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1625년 도르트총회를 지지하던 나소의 영주, 모리스(Prince Maurice of Nassau)가 죽고 항론파를 지지하던 그의 동생 하인리히(Heinrich)가 통치권을 가지면서 추방령은 철회되고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은 다시 복귀하여 자신들의 교회를 재건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아르미니우스주의는 영국 성공회와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91)의 감리교 운동을 통해 유럽 전체와 심지어 신대륙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도르트신경을 표준으로 한 개혁파와 여러 신학적 논쟁을 일으켰다. 아르미니우스주의는 시대를 거치며 다양하게 발전되었는데 온건한 입장의 아르미니우스주의는 감리교, 성결교, 오순절 운동을 통해, 진보적 입장의 아르미니우스주의는 유니테리안 보편주의로 발전하여 현재까지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제 도르트신경이 교회사에서 후대에 끼친 주요한 영향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도르트신경은 구원론에서 개혁파의 신학적 표준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했다. 도르트총회에서 개혁파는 구원사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를 역사적으로 확인하고 정리하였다. 개혁파가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과 차별화하고 강조한 내용은 구원은 타락한 인간의 능력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능력에 의존하여 성취된다는 것이었다. 즉 하나님은 구원의 은혜를 베풀려고 하는 자에게 값없이 자신의 은혜를 제공하셔서 주권적으로 그 구원을 이끄시는 분이다.

이 사실을 도르트신경은 칼빈주의 5대교리로 간결하면서도 탁월하게 정리하였다. 이는 교회사에서 장로교회를 포함한 개혁파에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대표적인 것이 도르트총회 이후 대략 30년 정도 지나 장로교 신학의 표준 문서로 작성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1647)이다. 도르트신경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신학적 기반이 되어 이를 통해 도르트신경은 전 세계 장로교회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이후 칼빈주의 5대교리는 여러 혼란하고 복잡한 신학적 논쟁들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도전해오는 인본주의적 아르미니우스주의에 대항해 개혁파의 신학적 표준이 되어왔다. 대표적으로 17세기 소뮈르(Saumur)학파는 도르트회의가 채택한 엄격한 입장의 칼빈주의를 완화하여 아르미니우스주의와의 절충을 시도하는 가설적 보편구원론인 아미랄디즘(Amyraldism)을 주장했다.

아미랄디즘에 따르면,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준비는 보편적이지만 적용은 특별한 자들에게 한정된다. 이에 대항해 존 오웬(John Owen)이나 프란시스 투레틴(Francis Turretin)과 같은 개혁파 신학자들은 도르트신경의 제한속죄설에 호소하면서 아미랄디즘을 비판하였다. 이후 18세기와 19세기에도 제한속죄론은 다양한 진영으로부터 상당한 비판을 받아왔지만 이러한 시대적 도전에 맞서 개혁파는 항상 17세기 도르트신경을 통해 명확히 정리되었던 칼빈주의 5대교리를 재확인하면서 응전할 수 있었다. 교회사에서 도르트신경은 이처럼 여러 형태를 지닌 아르미니우스주의와 인본주의의 도전 속에서 개혁파의 신본주의적 입장을 재확인하는 신학적 표준으로써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해왔으며 이를 통해 개혁파가 역사적 변천 속에서도 본질적인 신학적 동질성을 유지하도록 해주었다.

둘째 도르트신경의 칼빈주의 5대교리는 교회의 영적 부흥을 일으키는 주요 동인이었다. 특별히 개혁파가 주도했던 18세기 미국 1차대각성운동은 주목할 만하다. 미국 독립 이전 신대륙에서도 유럽과 비슷한 양태로 아르미니우스 논쟁이 일어났다. 영국 성공회는 대감독 윌리엄 라우드(William Laud)로 인해 칼빈주의에 반대하는 흐름이 조성되어 이후 아르미니우스주의의 영향 가운데 있게 되었다. 이처럼 유럽에서 시작된 아르미니우스주의는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에도 확산되었다.

또한 1710년 다니엘 휘트비(Daniel Whitby)는 Discourse on the Five Points를 저술하여 칼빈주의 5대교리를 노골적으로 반박하였다. 이로 인해 개혁파 목회자인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는 아르미니우스주의를 경계할 필요에서 “Justification by Faith Alone”이라는 칭의론 설교를 통해 도르트신경이 확정했던 인간의 전적 타락, 불가항력적 은혜, 하나님의 주권사상을 성도들에게 가르쳤다. 이러한 설교들과 가르침을 통해 성도들은 아르미니우스주의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고 자신들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구해야하는 타락한 존재임을 인식하면서 마음을 찢으며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기도에 전념함으로 대각성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외에도 에드워즈는 자신의 대표작인 <의지의 자유>(Freedom of the Will)를 저술하여 신학적인 논쟁도 함께 이어갔는데 인간의 의지를 자기결정능력으로 보는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의 잘못된 견해를 비판하면서 아담의 범죄 이후 인간의 의지는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도르트신경의 내용을 통해 강조하였다. 또한 에드워즈는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이 믿음(faith)을 순종의 법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서 신율법주의자들이라고 비판하였다. 이처럼 성령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1차대각성운동은 조나단 에드워즈나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와 같은 당대 개혁파 목회자들이 부흥을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의 선물로 보며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를 간구함으로 일어났던 것이다. 이처럼 칼빈주의 5대교리는 신학적인 면에서 뿐 아니라 교회의 영적 부흥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교회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셋째, 도르트신경은 한국장로교회의 신학적 전통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앞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도르트신경의 칼빈주의 5대교리는 장로교가 주류인 한국교회에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통해 영향을 미쳤다. 칼빈주의 5대교리의 핵심사상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기초한 “오직 은혜”사상이다. 한국장로교회는 선교 초기부터 보수적인 성향을 지닌 장로교 선교사들로부터 이 사상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대표적으로 한국장로교회가 1907년 신앙고백으로 채택했던 ‘12신조’를 살펴보면, 칼빈주의 5대교리를 확인할 수 있다. 6조에서는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임을 언급하고 있으며, 8조에서는 인간의 의지를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주도적인 구원사역을 잘 설명하고 있다. ‘12신조’가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의 영향 가운데 작성되었기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담겨있는 도르트신경의 개혁주의도 그 안에서 함께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한국장로교회의 신학적 전통을 이끌었던 박형룡은 1964년 <신학지남>에 발표한 “한국장로교회의 신학적 전통”에서 이에 대해 언급하기를, “한국 초대 장로교회가 연합 부흥 전도보다도 각종 사경회에 치중한 것은 죄인의 회심을 성령의 주권적 유효적 소명에 기대하는 청교도 전도의 방식에 따름인 듯하였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신념은 천명을 믿는 한국사람 고유의 사상과 잘 조화되므로 한국인 기독교 신도들에게 잘 환영되었다”고 한다. 이 글에서 박형룡은 한국장로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이들로 청교도를 언급하고 있기에 도르트신경보다는 청교도들이 작성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염두에 두고 있지만 이 글에서 회심사건을 “성령의 주권적 유효적 소명”으로 보면서 도르트신경의 결정 내용을 재확인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박형룡은 또한 영국 청교도 신앙과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의 작성에 도르트신경의 영향이 있었음을 이 글의 앞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인정하고 있다. “구주 대륙에서 칼빈 개혁주의 신학이 하나님의 주권과 성경의 권위에 치중함으로 출발하고 전적 패괴, 무조건적 예정, 불가항력적 은혜, 성도의 견인을 5대 요령으로 하여 전개된 칼빈 개혁주의 신학이 서(쪽으)로 영국에 건너가 열렬하고 심각한 경건으로 받아들이는 교인들이 많아서 청교도(Puritan)이란 별명을 얻었다.” 박형룡이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네덜란드 개혁파가 작성한 도르트신경의 칼빈주의 5대교리는 청교도들이 작성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로 발전 정비되어 한국장로교회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쳐왔던 것이다.

박형룡은 도르트신경의 칼빈주의 5대교리를 한국장로교회에 신학적으로 명확히 해석하여 접목시키고자 노력하였다. 그는 자신의 작품들인 <신론>과 <구원론>에서 도르트신경이 확인한 하나님의 전적 주권사상과 성령의 유효적 은혜 사상에 대해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특히 그는 1962년 9월에 <신학지남>에 기고한 “칼빈신학의 기본원리”에서 구속사역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신학적 설명을 제공하면서 도르트신경이 채택한 5대교리를 칼빈신학의 구원체계로 묘사하면서 <기독교강요>를 기반으로 5대교리를 설명하고 있다.

박형룡 이외에도 박윤선을 비롯한 후대 장로교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에 의해 칼빈주의 5대교리는 현재까지 계승 발전되어왔다. 특별히 한국장로교회 역사에서 칼빈주의 5대교리는 인본주의나 자유주의와 논쟁하고 싸우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한국장로교 신학의 정체성을 확인해주는 주요한 역할을 해왔다. 물론 일부 극단주의자들이 칼빈주의 5대교리를 편협하게 해석하여 인간의 행함이나 책임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모든 사건의 원인을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로만 돌려서 숙명론이나 운명론의 위험에 빠지는 과오가 있었음도 인정한다.

올해로 400주년을 맞는 도르트신경이 채택한 칼빈주의 5대교리는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처럼 칼빈주의 전체를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구원론에 있어서 전세계 개혁교회와 한국장로교회에 많은 영향을 끼쳐왔다. 이제 우리는 도르트신경의 칼빈주의 5대교리의 정신과 사상을 오늘의 현실에 적용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며 지켜야할 시대적 사명을 감당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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