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도르트신경 400주년 ⑤도르트회의 결정문 의미-(3) 제한속죄

대리적 속죄의 의는 무한하며 하나님의 선하신 기쁨에 따라 복음의 약속에 동참하는 하나님의 자녀만을 위한 것

 

▲ 문병호 목사(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1. 알미니우스주의자들의 5개 조목 항론

도르트신경은 항론파라고도 불리는 알미니우스주의자들을 반박하며 개혁신학의 정통적 맥락에서 성경의 가르침을 순수하고 참되게 고백한 것이다. 이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더불어 그 신학적 체계나 가르침에 있어서 17세기에 가장 주목받는 신경으로 여겨지고 있다. 알미니우스는 칼빈의 대를 이은 제네바의 종교개혁자 베자의 영향 아래에 있었지만 칼빈의 사상과는 양립할 수 없는 돌이킬 수 없는 몇 가지 큰 오류에 빠져 있었다. 그 핵심이 1610년에 작성되어 공표된 <알미니우스주의 혹은 항론파의 조목들(Articuli Arminiani sive Remonstrantia)>에 다섯 가지로 나타난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1조, 조건적 예정(conditional predestination). 하나님은 구원받을 공로를 이룰 자질을 갖춘 사람을 미리 아시고 택하여 구원하셨다. 이는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하여 체제를 갖춘 로마 가톨릭의 예지예정론과 일맥상통하다. 제2조, 보편속죄(universal atonement).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각 사람 모두를 위하여 죽으셨다. 그 공로 혹은 값은 모두를 위한 것이나 다만 그 작용은 믿는 자들에게 한정된다. 제3조, 구원적 믿음(saving faith, fides salvifica). 타락한 인류는 선을 행할 능력이 없을뿐더러 구원에 이르는 믿음도 스스로 가질 수 없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거듭난 사람만이 그 믿음을 가진다. 다만 그 믿음은 그저 선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공로의 산물이다. 제4조, 항력적 은혜(resistable grace). 구원의 은혜는 성도의 공로가 합력하는 은혜이므로 불가항력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제5조, 견인의 불확실성(the uncertainty of perseverance).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부여되는 의는 구원에 족하나 그것이 한번 주어졌다고 결코 상실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2. 도르트신경에서 수립된 칼빈주의 5대 교리와 제한속죄의 중심성

이러한 입장은 어거스틴과 칼빈으로 이어지는 정통적 성경이해에 전적으로 배치된다. 그러므로 이에 반기를 들고 도르트신경이 수립되었다. 여기에서 이러한 알미니우스주의자들의 5개 조목이 다음과 같이 비판되었다.

제1장,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하나님은 전적이고 절대적인 은혜로 그리스도 안에서 일부를 선택하셨으며 일부는 그렇게 하시지 않고 그냥 두셨다. 구원은 오직 은혜로 말미암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공로나 자질에 대한 예지가 없이 영원한 작정에 따라 무조건적으로 선택이 이루어졌다. 제2장, 제한속죄(limited atonement).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는 오직 택함 받은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다. 중보자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으로서 대속의 모든 의를 이루셨으니, 그 의는 무한하고 만인을 살린다. 그렇다고 해서 그 의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고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제3장, 전적 타락(total depravity)과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able grace). 이 둘은 알미니우스주의자들의 구원적 믿음과 항력적 은혜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아담의 타락 이후 인류는 전적으로 타락하여 모태에서 조성될 때부터 사망의 형벌을 지고 전적으로 무능하고 전적으로 부패하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어떤 선도 행할 수 없으며 선을 행할 의지도 상실했다. 구원의 의는 오직 그리스도께만 속하며 그 의의 역사로 구원의 믿음도 전적이고 절대적인 은혜로 선물로서 부여된 것이다. 그러므로 궁극적으로 거역하거나 거부할 수 없다. 제4장,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므로 성도의 자질이나 의향이나 열심에 따라서 구원이 중단되거나 무효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도르트신경의 다섯 가지의 선포는 순서를 바꾸어 흔히 T·U·L·I·P이라고 일컫는 바, 이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하나님은 전적으로 타락한 인류의 일부를 무조건적으로 선택하셔서 그리스도의 대속적 의를 전가하심으로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구원을 얻게 하셨으므로 그것은 성도의 자질이나 성향이나 뜻에 따라 변개되지 않는다.

도르트신경은 믿음에 공로가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로마 가톨릭은 반(半)펠라기우스주의(Semi Pelagianism)에 서서 믿음에는 구원 이전에 사전(事前)적으로 요구되는 공로가 있다고 보았다. 루터와 그를 잇는 루터파 신학자들도 비록 적극적이지는 않았지만 이를 대체로 받아들였다. 최소한 믿음에는 은혜를 거역하지 않는 공로라도 있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알미니우스주의자들은 위에서 본 제3조에서 비록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전체적인 맥락을 고려할 때 믿음에는 공로가 있음을 사실상 확정하고 있다.

믿음에 공로가 있다고 보는 이상 전적타락이 즉시 부인되며 전적타락이 부인되면 전적은혜는 설 자리가 없어진다. 전적타락이 부인되면 사실상 언약신학의 대표성의 원칙이 허물어지고 창세 전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협약이 무색해지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영원하신 성자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를 구속주로, 대속을 구속방식으로, 선택과 유기의 이중예정 가운데 구속백성을 작정하셨다는 가르침이 무너지고 만다. 달리 말하면, 성경이 가르치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영원한 구원 작정이(엡 1:4) 부인되는 것이다.

결국 도르트신경의 요체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무조건적 선택에 있다고 볼 것이다. 무조건적 선택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선택을 칭한다. 이는 전적타락을 전제하며, 전적타락은 그리스도 중보의 필연성을 드러낸다. 오직 그리스도의 의로 구원에 이르게 되므로 그 은혜는 불가항력적이다. 왜냐하면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도구가 되는 믿음도 어떤 공로도 없이 값없이 부여되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성도의 견인은 구원의 전 과정의 의가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에 있다는 점을 부각시킬 뿐, 그 이상 어떤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곧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영화롭게 하시는 모든 구원의 과정이(롬 8:30) 자기 자신과 함께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롬 8:32) 그리스도의 다 이루신 의에(요 19:30) 있기 때문이다. 이 의는 오직 택함 받은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며 그들에게만 그들의 것으로 삼아진다. 즉 전가(轉嫁)된다. 이것이 제한속죄의 교리이다. 이제 이를 도르트신경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3. 제한속죄: 오직 택함 받은 사람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대리적 속죄의 의

도르트신경은 제1장에서 그리스도는 “중보자, 택함 받은 자들의 머리, 구원의 기초이시다”라고 선포하고 있다(1.7). 여기에서 확정되는 ‘선택(electio)’과 ‘유기(reprobatio)’의 이중예정론은 그리스도의 의가 누구를 지향하고 누구에게 적용되는지를 분명히 제시한다(1.6).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즉 오직 그리스도의 의로, 구원에 이르도록 택함을 받은 자들의 은혜를 논하는 것이 ‘무조건적 선택’ 교리의 핵심이다(1.15). 다만 주목해야 할 것은 “택함 받은 자들에게 값없이 주어지는 은혜(gratuita electionis gratia)”는(1.18)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대속적 공로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사실이다.

제한속죄를 다루고 있는 도르트신경의 제2장은 제1장에 기초하여 수립된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실(misercors)” 뿐만 아니라 “의로우신(justus)” 분이시므로 자신의 무한한 엄위 가운데 죄에 대해서는 합당한 형벌을 베푸신다. 그 형벌은 다름 아닌 사망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의를 충족시켜야 한다. 곧, 보아스가 룻의 기업을 물렀듯이 값을 치르는 ‘무름(satisfactio)’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2.1). 그런데 타락한 인류는 아무도 스스로 이를 무를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독생자를 “우리를 위한 보증(nobis sponsor)”으로 주셔서 “우리를 위한(pro nobis), 우리 대신에(vice nostra), 죄가 되시고 저주가 되시게” 하셨다(2.2). 여기에서 우리를 위한 중보자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시자 참 사람이셔야 할 필연성이 선포된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죄를 위한 “완전한 희생제물과 무름(profectissima victima et satisfactio)”이 된다. 그것은 “세상 전체의 죄를 속하기에 넘치도록 충분한(abunde sufficiens) 무한한(infiniti) 가치와 고귀함”을 지닌다(2.3). 이는 그가 “완전히 거룩하신 참 사람이시며 독생하신 하나님으로서 성부와 성령과 동일한 영원하고 무한한 본질”을 지니셨기 때문이다(2.4). 여기에 제한속죄 교리의 신학적 변증이 있다. 첫째, 그리스도의 대리적 속죄의 의는 무한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 되셔서 참 하나님이시자 참 사람으로서 모든 의를 다 이루셨기 때문이다. 451년 칼케돈 신경에서 선포된 중보자 그리스도의 위격적 연합 교리가 여기에서 확정된다. 그리스도는 인성에 따라서 고난당하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지만 그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그 의에 무한한 값이 있다. 둘째, 그러나 이 의는 “하나님의 선하신 기쁨”에 따라서 ‘복음의 약속’에 동참하는 택함 받은 자들만을 위한 것이다(2.5). 복음의 선포를 듣고도 믿지 않는 자들의 멸망은 그리스도의 의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죄 때문에 초래되는 것이다(2.6). 그러므로 택함 받은 자들의 구원의 은총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부터 그들에게 주어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부터(ex sola Dei gratia......ab aeterno ipsis in Christo data)” 나오는 것이다. 이러한 은혜는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은 것이며, 그 공로는 그 외에 “아무에게도 돌려지지 않는다(nemini debet)”(2.7).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공로는 오직 택함 받은 사람들을 위한 것임이 분명히 천명되고 있다. 그 공로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인데 다만 그것을 누리는 사람이 일부일 뿐이라는 알미니우스주의자들의 주장은 성경의 가르침에 전면으로 배치된다. 아들의 죽음은 택함이 없는 자들과는 그 효과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그 공로에 있어서도 무관하기 때문이다. 이를 환기시키고자 도르트신경은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살리고 구원하는 가장 값진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의 효과는 모든 택함 받은 자들에게 미친다”(2.8).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영원한 사랑”이다(2.9). 여기에서 칼빈 이후 정립된 개혁주의 언약신학의 본질을 만나게 된다. 즉 아버지의 사랑과 아들의 공로를 은혜언약의 두 요소로 삼는 것이다. 칼빈은 이를 “사랑의 시작은 의이다(Principium amoris est iustitia)”라고 <기독교 강요>에서 말하였다(2.17.2).

4. 결론적 고찰

도르트신경이 교리사에 남긴 획기적 자취는 그것이 선택과 유기의 이중예정을 기독론적으로 읽어냈다는 점에 있다. 이만큼 이를 명시적이고 상세하게 다룬 신경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다. 그리스도의 의는 온 인류를 구원하기에 족하지만 그 전가는 선택된 백성에게 한정되므로 결국 그의 의는 택자만을 위한 것이라는 결론이 여기에서 분명히 도출된다. 이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첫째, 오직 그리스도의 의만 대속의 값이 된다. 둘째, 그 의는 택함 받은 자들만을 위한 것이다. 셋째, 구원의 전 과정에 작용한다. 즉, 칭의와 성화가 모두 은혜이다(이중적 은혜, duplex gratia). 넷째, 그 의는 믿음을 도구인(道具因)으로 삼아 전가된다. 그 믿음은 은혜의 선물로서 아무 공로도 없다(3.14). 다섯째, 그러므로 칭의와 성화와 견인은 구별은 되나 분리될 수 없다. 즉 함께 있다.

영원히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올립니다(Soli Deo gloria in aetern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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