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도르트신경 400주년 ① 도르트신경의 신학적 특징과 역사적 의미

올해는 도르트종교회의가 열린 지 400주년이 됩니다. 도르트회의는 1618년 11월 13일 네덜란드 도르트에서 열린 이래 7개월간 진행되었고 ‘도르트신경’을 제정했습니다. ‘도르트신경’은 칼빈주의 5대교리로 알려진 ‘전적부패’ ‘무조건적 선택’ ‘제한속죄’ ‘불가항력적 은혜’ ‘성도의 견인’을 담고 있습니다. 개혁주의 교리의 핵심이자 표준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도르트신경’을 제정한 회의의 의미와 정신을 신학자들의 기고를 통해 되새겨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서론: 교회의 개혁운동에서 경건한 문화구축으로

▲ 김재성 박사
·국제신학대학원 대학교 부총장
·한국개혁신학회 직전회장

한국의 대표적인 장로교회들은 400여 년 전에 네델란드에서 채택된 ‘도르트신경’에 담긴 교리들, ‘전적부패’ ‘무조건적 선택’ ‘제한속죄’ ‘불가항력적 은혜’ ‘성도의 견인’을 개혁주의 교리의 핵심이자 표준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개혁신학회에서는 2018년 봄 학술대회의 주제로 ‘도르트신경’을 선정하여 신학적 특징과 역사적 의미를 되새긴 바 있다.

특히, ‘도르트신경’이 알미니안주의자들의 문제점들을 비성경적이고, 이단적이라고 단호히 배척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전 세계 복음적인 교회들 안에 여전히 알미니안주의가 광범위하게 스며들어있음에 유의하여야 한다. 개혁신학의 종합적인 체계를 진지하게 공부할 기회가 없었던 교회에서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스스로의 결단을 부추기는 왜곡된 해석들을 무비판적으로 따라가면서, 세속화되고 상업화되었다.

우리가 ‘도르트신경’의 교리들을 다시금 강조하려는 이유는 너무나 분명하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세계교회가 물려받은 중요한 신학들을 유산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멀리는 초대교회로부터, 그리고 가까이는 루터와 칼빈을 비롯한 종교개혁자들로부터 가장 순수한 기독교 신앙을 전수받았다. 1517년부터 확산된 유럽 개혁운동은 오직 성경으로, 오직 믿음으로, 오직 그리스도만으로, 오직 은혜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도록 신학적인 토대를 구축하였다. 엄청난 숫자의 개혁자들이 순교적 희생을 치렀고, 핍박 속에서 투쟁하면서, 미신적인 로마 가톨릭 교회를 개혁하여 참된 교회의 순결함과 순수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노력했었다.

루터와 칼빈의 새로운 시대로부터 약 100여 년이 지난 후에는 보다 더 철저하고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진일보한 개혁운동의 노력들이 ‘도르트신경’을 채택하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1572년부터 1618년까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추진하는 운동 속에서 네델란드 개혁교회가 중심에 서서 로마 가톨릭의 잔재들을 철저히 청산하려는 염원들이 확산되었다. 하나님과 인간이 상호 협력하여 구원을 성취하게 한다는 ‘신인협력설’이 여전히 남아있었기에, 개혁주의 진영 내부에서 제기된 신학적인 문제점들을 명쾌하게 구별 짓는 ‘도르트신경’이 작성되어진 것이다. 결국, 개혁주의 구원론에 관련하는 다섯 가지 조항들의 기독교 교리가 재정립되었고, 개혁주의 신학의 통일성을 구축하게 되었다.

1. 칼빈주의 신학과 경건의 실현을 향한 몸부림
유럽 전역에서는 개혁을 증진시켜 나가려는 운동이 17세기에도 추진되고 있었는데, 그들은 제네바를 배경으로 하는 칼빈주의 신학적 토대 위에 서 있었다.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를 세우고자하는 고위 통치자들, 신앙과 도덕적인 이상을 제시하던 목회자들, 일상생활에서 개인적 경건을 추구하던 성도들이 동참하였다. 17세기 영국에서는 온갖 박해 속에서 청교도 운동이 전개되고 있었고, 프랑스에서는 신교와 구교 사이에 종교전쟁으로 수많은 위그노들의 피흘림이 지속되던 중이었고, 역시 네델란드 저지대 지방에서도 2차 종교개혁이 진행되었음에 주목해야 한다.

‘도르트신경’의 역사적 의미는 점증하는 스페인의 침략 위험과 절체절명의 핍박을 목전에 놓고서도 개혁신학의 금자탑이 확고하게 세워졌다는데 있다. 종교적으로는 로마 가톨릭의 상하지배 구조 하에서 다스림을 받고, 정치적으로는 오랫동안 스페인 국왕의 직접 통치를 받아오던 유럽 북서부 저지대 지방에 살던 성도들은 1572년부터 종교개혁의 흐름을 타고 단결하였다.

스페인 국왕 필립 2세가 자신의 아버지 합스부르크 왕가 황제인 챨스 5세를 이어 1555년에 황제로 등극한 후, 개신교회들에 대해서 극렬한 탄압을 하면서, 알바 장군을 파견하여 개신교 성도들을 체포하고 구금하였다. 이러한 대적들을 개신교회 성도들이 무찌르고 1588년에 독립을 쟁취하기까지 엄청난 피를 흘렸다. 1561년에 벨직 신앙고백서를 작성한 기룜 드 브레는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저지대 남부지방에서 활동하다가 그 다음 해에 처형당했다. 1619년 ‘도르트신경’을 채택한 회의도 스페인의 지속적인 공격이 일시적으로 뜸하던 시기에 소집될 수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일련의 전쟁과 대립 속에서 각 지역 교회에서는 제네바 장로 제도를 받아들여서 강력한 개혁교회를 추구하였다.

더 확고한 개혁운동을 목표로 노력하던 저지대 지역의 개신교 교회들은 17세기에 이르러 참된 경건의 진보와 발전을 향한 노력들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그 당시 네델란드 저지대 지역에서는 개신교 기독교인들이 50%도 되지 않던 상황이었다. 그들은 명목에 불과했던 로마 가톨릭 신자로 살았던 구습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무엇을 하든지 살아계신 하나님의 면전에서 살아간다”는 목표, 즉 ‘경건의 생활화’를 실천하고자 노력하였다. 이처럼 아주 단순하고 명쾌한 목표를 갖고서, 로마 가톨릭의 잔재들을 말끔히 청산하고자 분투노력하였다.

진일보하는 네델란드 개혁운동에서는 네 가지 독특한 차원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는데, ‘도르트신경’의 배경을 이루고 있던 이들의 시대적 정신들은 소중한 산물이다. 첫째, 영적이며 체험적이고 경건함을 추구하였다. 둘째, 도덕적인 사회 건설을 추구하면서 경건한 문화를 창조하려고 노력했다. 셋째, 모든 생활과 활동을 교회 중심적으로 결집시키고자 했다. 넷째, 국가의 통치 구조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다스리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들 네 가지 측면들은 서로 연관을 맺고 있으며, 무엇이 우선 순위라고는 말할 수 없다.

저지대 지방의 칼빈주의 교회들과 성도들은 신앙적인 행동의 핵심을 그저 개인의 양심문제라든가 영적인 체험이라고 규정하거나 물질적인 것과는 대조되는 신령한 것을 다루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교회 내에서만 머무르는 개인적인 신앙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참된 경건의 능력이 가정에서나 사회와 국가적으로 다 하나가 되어서 표현되고 구현되어야만 한다고 확신하였다. 경건의 능력을 제공해 주는 절대적인 토대이자 기반은 개혁주의 교리들이라고 간주하였다.

2. 더 깊은 개혁과 신학적인 특징들
‘도르트신경’의 신학적 특징들은 초기 유럽 종교개혁에서 제기된 교리들에 대해서 신학적인 진일보를 성취한 것들이다. 개혁된 교회가 더 앞으로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 당시에 일부 비판자들이 이의를 제기하는 주제들에 대해서 답변하되, 철저하게 하나님만을 섬기고자 하는 입장에 서서 해결책을 제시하였다. 개신교회가 단지 로마 가톨릭의 불순물을 제거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개혁되지 않은 영역들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참된 신앙의 싸움을 싸워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 분투하였다는데 역사적 의미가 크다.

17세기 저지대 지방에는 로마 가톨릭의 성상숭배와 각종 미신적인 전통들이 여전히 잔재로 남아있었다. 보다 철저하게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개혁주의 원리를 반영하고자 노력하였지만, 성경적인 문화의 건설에는 장애물들도 많았다. 그 저변에는 종교적인 죄악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성경의 가르침에 대해서 무지하였으며, 종교개혁에서 정립된 개혁주의 교리에 대해서 무식한 사람들이 많았고, 성례를 시행하고 설교를 하면서도 열정이 없는 자들이 증가하고 있었다. 거짓된 맹세를 하거나 허망한 약속으로 순간을 모면하는 비양심적인 자들, 주일을 더럽히는 자들, 로마 가톨릭의 성일들이나 축일들을 은밀히 고수하는 자들도 많았다.

16세기 종교개혁은 최고 상층부 학자들, 루터를 비롯한 신학자들과 국왕, 군주들, 교황청과의 대립 속에서 전개되었다. 17세기 ‘도르트신경’에 담겨진 더 깊은 종교개혁운동은 교회 밖으로 시선을 돌려서 성도들의 일상과 사회 전반에 걸친 공적인 영역에서도 사도시대의 삶을 구현해보려는 것들이었다. 수없는 논쟁을 거듭하는 동안에, 도르트에서 회집된 국가적인 교회의 총회에서는 청교도들과 칼빈주의 신정통치의 이념들이 결집되어졌다.

상당수 개혁교회 목회자들이 주요 지도자들로 광범위한 개혁운동을 이끌었다. 쟝 타핀(Jean Taffin, 1529~1602)이 가장 앞장서서 경건한 개혁운동의 이상들을 제시하였다. 빌렘 틸링크 (Willem Teellinck, 1579~1629)는 영국 청교도의 신앙운동이 저지대 지방에서도 성취되도록 저술과 설교로 감동을 주었고, ‘제2차 개혁운동의 아버지’라고 알려져 있다.

3. 하나님의 작정, 예정, 창조질서의 순수성 논쟁
‘도르트신경’은 칼빈의 신학을 근간으로 하여 성장한 17세기 칼빈주의자들이 제이콥 알미니우스(1560~1609)와 그를 따르는 ‘항론파’들을 단호히 척결하는 다섯 가지 항목을 발표한 것이다. 지난 2000년 동안에 흘러온 신학의 역사에서 볼 때, 이 시기를 ‘개신교 스콜라주의 시대’라고 부르는데, 보다 학문적이고, 보다 체계적으로 주요 주제들을 정립하고자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미니안주의와 그의 추종자들은 신학을 비기독교적인 사상과 결합시켜서, 합리적인 이해를 추구하면서 변질시키고 말았다. 이들은 구원론에서 근간이 되는 하나님의 작정교리와 예정론을 거부하였고, 인간의 상당히 자유로운 의지와 결정권을 제기하였다. 알미니우스는 인간의 합리적인 생각에 근거하여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명상에서도 개혁주의와는 다른 논지를 제기했고, 피조된 질서는 창조주로부터 느슨한 관계에 있기 때문에 상당히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알미니우스가 창조와 예정에 관한 교리에서 거론하는 요소는 인간의 타락이 과연 하나님의 창조에서 나온 것이냐 아니면 허용된 작정이냐를 놓고서 다툰게 아니다. 그는 창조가 먼저 있었고, 그 후에야 인간 타락이 왔으며, 작정은 그 후에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타락 이전에 하나님의 작정이 있었다는 논지를 거부하였다. 하나님은 창조의 작정을 하시고, 가능성을 열어놓았고, 미래의 일들에 대한 예지의 능력을 갖고 계신다는 주장이다.

칼빈 이후로 예정론을 철저히 옹호하던 제네바의 베자와 청교도 신학자 윌리엄 퍼킨스가 타락 전 선택설을 제시하였고, 네델란드에서도 고마루스가 선택과 유기로 구별되는 하나님의 작정이 먼저 있었음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알미니우스는 이러한 작정은 ‘넌센스’라고 논박하면서,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결정을 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로마서 9장과 에베소서 1~3장에 나오는 내용들은 다른 성경에서는 명쾌하게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알미니우스는 인간의 상대적인 자율성을 강조하려고 하기 때문에, 타락 후 선택설에도 여전히 반대하였다.

결론: 하나님의 주되심과 주권적 권위, 통치, 임재

개혁신학에서는 하나님의 주권, 절대권위와 통치와 임재하심을 성경에 근거하여 철저히 강조하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오직 하나님 여호와가 피조된 만물의 주(Lordship)가 되신다(시 100:3, 대상 29:11, 신 6:4, 마 16:16). 피조된 세상을 향하여 창조주 하나님께서 주가 되시기 때문에 그의 주권 하에서 시행되는 모든 일들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권위, 통치, 임재의 영역에 속한다. 하나님의 작정, 예정과 선택의 교리는 결코 차갑거나 냉랭하거나 비인격적인 것들이 아니다. 인간의 왜곡된 이성체계와 부패성과 한계로 인해서 하나님의 오묘하신 작정들과 예정과 섭리를 다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도르트신경’은 하나님의 작정과 구원에의 예정을 확고히 선포하여, 죄악된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연약한 성도들로 하여금 철저하게 구원의 감격과 확신을 갖도록 도움을 준다. 하나님의 선택하심을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므로, 믿음을 가진 성도들은 안심하고 위로를 얻는다.
하나님의 깊고도 비밀스러운 것들에 대한 알미니안주의자들의 탐구는 허망하고도 이단적 것이라고 규정하여야 마땅하다. 지금도 신학자임을 자처하면서, 사람의 뛰어난 생각으로 하나님의 어리석음을 비난하는 자들이 있다. 인본주의적인 사색에 빠진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여전히 세상 지식을 혼합시켜서 교회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도르트신경’은 지금도 인간 자율적 결정만을 강조하는 자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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