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기획] 다시 보는 총회 역사유산 (2)김제 만경교회와 총회 회의록

참혹한 비극, 교회록과 생존 성도 회고록에 담아…제2호 순교사적지 지정 확정

두 번째로 살펴볼 역사유산들은 영광 염산교회에 이어 제2호 한국기독교순교사적지로 지정되는 김제 만경교회와, 총회 역사상 최초로 한국교회역사유물로 지정되는 총회 회의록이다. 만경교회는 한국전쟁 당시 15명의 순교자를 배출한 전북의 대표적 순교성지로 최근 총회순교자 명부 등재와 사적지 지정에 이어, 순교역사관 건립이 추진되는 중이다. 역대 총회 회의록에 대해서는 한국교회역사자료박물관장 장영학 목사가 그 의미와 가치에 대해 기고한다.<편집자 주>

▲ 제2호 한국기독교순교사적지로 지정되는 김제 만경교회.

너른 금만 벌판을 가로 질러 만경교회에 도착하기 전, 순례자들이 먼저 들러야 할 곳이 있다. 만경면사무소 앞에 선 ‘반공혁명단원 추모비’이다. 풍설에 깎이고 빛이 바라며 새겨진 글씨조차 희미해진 이 비석은 67년 전 이 동네에서 벌어진 비극의 시작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

한국전쟁 발발 후 인민군과 좌익세력들이 김제와 만경 일대를 장악하며 위세를 떨치던 시절, 탄압에 항거하기 위해 비밀리에 결사를 한 청년들이 있었으니 그 이름이 바로 반공혁명단이었다. 이 모임에는 젊은 신학도 최정열을 비롯한 만경교회 청년들 다수가 가입해 있었다.

안타깝게도 누군가의 고변으로 이들의 정체가 탄로 나면서, 서슬 퍼런 좌익들의 보복이 벌어졌다. 1950년 9월 10일에는 김제내무서에서 만경교회 교인들의 동태를 조사했고, 이틀 후에는 내무서원들이 이른 새벽 무장한 채 교인들의 가정을 급습하여 청년들을 먼저 잡아갔다. 곧바로 김종한 목사와 강성진 장로 등 교인들의 체포가 이어졌다.

▲ 전경과 순교기념비.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연합군의 인천상륙작전과 서울 수복이 이루어지면서, 궁지에 몰린 인민군들에 의해 만경교회 성도들과 우익인사들은 상상하기 힘든 수난을 겪게 된다. 9월 27일 새벽이 시작된 학살의 총성과 비명이 며칠 동안 계속됐다. 이웃들은 감히 집 바깥을 내다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겨우 세상이 고요해진 후 우물 속, 방공호 등 마을 곳곳에서 참혹하게 뒤엉킨 시신들이 발견됐다. 전주로 압송됐던 청년들 역시 이미 숨지고 말았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담임목사부터 젖먹이 아이까지 적어도 15명이 목숨을 잃은 만경교회는 큰 초상을 치러야 했다.

교회 종이 다시 울리고, 기도와 찬송소리가 예배당을 채웠지만 가족과 동료를 잃은 성도들의 아픔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그 상처의 기록들이 교회록에, 생존한 성도들의 회고록에 고스란히 남아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

세월이 흘렀다. 2009년 총회 순교자기념사업부는 희생자 15명을 추모하는 순교기념비를 당시 신축한 만경교회 앞마당에 건립했다. 총회 출판부에서 발간한 <한국교회 순교자전기>에도 김종한 목사를 중심으로 한 만경교회 성도들의 순교사적이 생생하게 수록되었다.

하지만 이들 전원의 이름이 총회순교자명부에 등재되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김종한 강성진 강춘길 최남인 유상덕 유금식 등 여섯 명의 등재가 진작 이루어진 데 반해, 나머지 9명의 등재는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제101회 총회에서 이루어졌다.

내친 김에 총회역사위원회는 만경교회를 제2호 한국기독교순교사적지로 지정해 줄 것을 청원했고, 이 또한 올해 제102회 총회에서 가결되었다. 만경교회는 김제노회를 통하여 총회에 순교역사관 건립 지원도 신청해놓은 상태이다.

현재 만경교회는 찬양대실로 사용하는 공간에 순교자들의 사진과 관련 기록 등 역사자료들을 전시해놓았지만, 공간이 협소해 순교역사를 제대로 보여주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상태이다. 이에 총회역사위원들이 현장 방문을 통해 역사관 건립의 타당성과 가능성을 검토했고,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역사관이 건립되면 현 예배당 옆 순교기념비와 우물가, 구 예배당 및 종탑 그리고 순교자들 시신이 한꺼번에 매몰된 만경지서 옆 우물터와 반공혁명단추모비까지 하나의 벨트로 잇는 순교체험코스도 개발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만경교회 전철희 목사는 밝힌다.

▲ 한국기독교역사유물 제1호로 지정되는 역대 총회회의록.

더불어 순교사적이 세세하게 기록된 만경교회의 ‘교회록’과 ‘당회록’ 등도 100년 넘게 이어져온 만경교회의 역사를 차곡차곡 담고 있고, 보존상태도 비교적 좋아 이후 제작된 ‘세례문답록’이나 ‘교인명부’ 등과 함께 향후 총회 역사유물로 지정될 자격이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만경교회 역사자료실에는 전쟁이 터지기 직전 개최된 부흥회를 기념해 성도들이 단체로 촬영한 사진 한 장이 전시되어있다. 한없이 해맑고 순전한 그들의 표정에서 몇 달 후에 일어날 비극은 아직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삶도 그와 같으리라. 어떤 미래가 우리를 기다릴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가며, 각자에 매인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이 성도의 도리이다. 그렇게 가다보면 천국에서 순교자들 곁에 나란히 서서, 우리를 위해 죽임 당하신 어린양을 찬양하는 영광스러운 장면에 함께 참예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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