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서문교회 등 10곳, 역사적 가치 인정 청원

제103회 총회에는 전주서문교회를 비롯한 총 10곳의 사적지를 한국기독교역사사적지와 순교사적지로 지정해 주도록 역사위원회(위원장:김정훈 목사)의 청원안이 상정된다. 제도 시행 이래 숫자상으로 역대 가장 큰 규모이다. 앞서 지정된 한국기독교역사사적지가 다섯 곳, 순교사적지가 두 곳이었던 것과 비교해보면 그 규모가 각각 배 이상으로 커지는 것이다. 하지만 사적지 지정만 해놓고 그 내용과 실체에 대해 총대들이나 전국 교회가 아무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우리 총회와 한국교회의 자랑이자 영광인 이들의 존재도 ‘빛 좋은 개살구’ 쯤으로나 여겨질 위험이 있다. 이제 본 지면에서는 역사위원회가 제103회 총회에 보고하는 내용 중 사적지 지정 관련 부분을 간추려 소개하고자 한다.<편집자 주>


 

1. 전주서문교회(삼산노회)

전주서문교회는 미국남장로교 선교부에서 세운 호남지역 최초의 교회이다. 1893년 전주 은송리에서 시작하여 지금까지 민족 복음화와 호남지역 선교와 복음화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 이것만으로도 전주서문교회는 한국기독교역사사적지로 지정 가치가 충분하다 하겠다.

무형의 기독교 문화적 가치를 담고 있는 초창기 인물로는 독립운동에 앞장선 김인전 목사와 배은희 목사, 여성운동 선구자 방애인 선생 등이 있으며 교회에는 이들의 공덕비와 묘소 등이 잘 보존되어있다. 또한 유형의 기독교 유물로는 교회 앞마당의 팔작지붕 종각, 선교사들이 세운 신흥학교와 기전학교가 신사참배 반대로 폐교할 당시 교회에 기증한 화분대, 교회 설립 초창기의 모습을 보여주는 각종 문부 등이 있다.

2. 군산 구암교회(군산동노회)

미국남장로교 군산선교부의 활동지였던 궁멀에 설립된, 100년이 넘은 역사를 지니고 있는 교회이다. 선교사들이 세운 영명학교 멜볼딘여학교 구암예수병원 등과 함께 전북지역 근대문명과 근대교육의 대표적 발상지를 이루기도 했다.

또한 구암교회는 1919년 한강 이남과 호남 최초의 만세운동을 주도한 교회였다. 당시 군산의 만세운동은 구암동산에서 3월 5일에 발원해 총 28회에 걸쳐 3만7000명이 참가했다. 현재의 예배당은 호남선교 100주년 기념예배당으로 건립되었고, 1959년에 건축한 옛 예배당은 군산삼일운동기념관으로 사용해왔다. 현재 옛 영명학교의 모습을 본뜬 새로운 삼일운동기념관이 건축 중이며, 호남선교100주년기념비와 군산3·1운동기념비 등이 건립되어있다.

3. 군산 개복교회(군산노회)

개복교회도 구암교회와 역사를 공유하는 군산지역 최초의 교회이다. 군산 3·5만세운동에는 김성은, 정지선, 홍종익, 전종익, 유희순 등 많은 인물들이 선도적인 역할을 감당하며 조국독립과 민족운동에 앞장서왔다. 6·25 한국전쟁 당시에는 청년회장 백형기 집사와 고인영 성도가 순교의 피를 흘렸으며, 조선예수교장로회 제4회 총회에서 한국인 최초 총회장으로 선출된 김필수 목사를 배출하기도 했다.

4. 광주양림교회(빛고을노회)

1904년 12월 25일 유진 벨(한국명:배유지) 선교사의 임시 사택에서 열린 성탄절 예배는 광주 최초의 공식적인 개신교 예배였으며, 동시에 양림교회의 시작을 알리는 첫 예배였다. 이때 참석하였던 사람은 김윤수 집사 가정, 변창연 조사 가정, 요리사였던 서명석 등 40여명이었다.
양림교회는 숭일학교 수피아여학교 제중원(현 광주기독병원) 등과 함께 1919년 광주지역 3·1만세운동의 주된 세력을 이루었으며, 1937년에는 신사참배 반대운동으로 일제에 맞서던 김현승 백영흠 등 교회 청년들이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6·25 한국전쟁 중에는 박석현 목사가 가족과 함께 순교의 길을 걸었다. 광주광역시와 남구에서 ‘역사문화마을’로 조성한 양림동 일대에는 교회를 중심으로 여러 기독교 유적지들이 자리잡고 있으며, 많은 이들이 찾는 명소가 됐다.

5. 영덕 송천교회(경안노회)

송천교회는 영덕지역 기독교 전파에 대한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특히 경북지방의 삼일운동 가운데 가장 격렬했던 영덕지방 만세운동의 중심이었고, 독립유공자를 20명 이상 배출한 민족운동의 본산이기도 했다. 현재의 예배당은 1953년에 세워진 것으로, 목조건물 입구를 포치형태로 만들어 동서양 건축의 조화를 이룬 한국교회 예배당 건축의 중요한 사료이다. 2006년 문화재청으로부터 등록문화재 제288호로 지정됐다.

6. 고흥읍교회(고흥보성노회)

고흥읍교회는 1905년 4월 설립된 고흥지역 최초의 교회이다. 미국인 의료 선교사 오원의 전도로 하나님을 믿은 목치숙, 신우구씨 등 6명이 신씨의 한약방에서 예배한 것이 고흥읍교회 역사의 시작이다. 이후 이기풍 김정복 정규오 등 한국교회에 위대한 족적을 남긴 목회자들이 거쳐 갔고, 일제강점기에는 국채보상운동과 삼일운동 등을 주도하며 조국 독립을 위해 앞장섰다. 동요 <자전거>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7. 광주 삼도교회(남광주노회)

1897년 1월 5일 설립된 잉계교회의 맥을 잇는 광주권 최초의 교회로 알려져 있다. 부설기관으로 기독 광명의숙을 운영하며 많은 인재들을 양성했으며, 교회당 앞마당에 돌로 쌓은 종탑과 역대 당회록 등 여러 유물들을 보존하고 있다. 근래에는 광주일대 최초 복음도래지 표지석, 순교자 기념비, 기독광명의숙 기념비 등을 세우고 광주기독교유적기념관 건립을 추진하는 등 역사 찾기에 매진 중이다.

8. 소록도 다섯 교회(남중노회)

소록도교회의 역사는 한국근대사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치유하는 병원의 역사와 더불어 진행되었다. 중앙 신성 동성 남성 북성 등 소록도 5개 교회는 분산되어 회집하지만 연합당회를 구성하는 특수한 교회형태를 가진다. 1960년대 초반에 건축된 예배당과 매일 정오기도 등 소록도교회만의 특수한 신앙의 양태도 잘 보존되어있다. 특히 6·25 한국전쟁 당시 순교한 김정복 목사의 순교기념비와 묘역, 기도처소 등은 한국교회 순교신앙을 알리는 중대한 자산이다.

9. 경북 의성 여섯교회(경신노회)

경북 의성군 춘산면을 중심으로 그 일대에 소재한 중리 효선 현리 춘산 금천 산운 등 여섯 교회는 순교자 권중하 전도사가 숨지기 직전까지 손수 돌보았던 교회들이다. 권 전도사는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반대운동에 앞장서다 모진 고문을 받아 숨진 인물이다. 고인의 순교기념비가 세워진 중리교회와 그가 수감되었던 구 의성경찰서는 이미 총회로부터 역사사적지 지정을 받은 바 있다.

10. 영광 법성교회(전남제일노회)

법성교회는 김종인 목사를 비롯한 수십 명의 성도들이 6·25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과 좌익세력에 의해 목숨을 잃었으며, 그 중 7명이 총회 순교자 명부에 등재되어있다. 전남 영광군은 전쟁 중에 가장 많은 기독교인 순교자들이 나온 지역이며, 앞서 염산교회가 한국기독교순교사적지 제1호로 지정된 바 있다. 교회 앞마당에는 종탑 모양을 형상화한 순교기념비가 조성되어있으며, 역사관 건립 작업이 진행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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