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그리스도 복음을 증거하라 설교란 하나님께서 설교자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성령의 능력 안에서 사람들에게 전하시는 역동적 사건이다. 앞서 설교란 수직적 차원과 수평적 차원이 만나는 자리라고 언급했었다. 이것을 네덜란드의 신학자 아놀드 반 룰러는 ‘신율적 상호성’(theonomical reciprocity)이라는 용어로 정확하게 묘사했다. 이것이 갖는 심중한 의미는 두 가지다. 첫째, 성령은 인간 설교자의 인격성을 빼앗지 않는다. 즉, 성령 하나님은 인간 설교자의 수고와 노력을 자신의 구원 사역 속에 포함시킨다.
하나의 주제로 눈을 보고 말하라 쉬운 설교를 하고 싶지만, 마음먹은 대로 쉽게 설교할 수 없다는 것이 모든 설교자의 고민이다. 얼마 전 필자의 친구 목회자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의 중학생인 아들이 말하기를, “목사님들은 뛰어난 재주를 가진 것 같아요. 간단하게 말해도 될 것을 길게 늘려 설교하는 기술을 갖고 있어요.” 중학생의 솔직한 지적에 웃음도 나왔지만, 일면 사실이기에 극구 변명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오래 전 칼빈이 설교자는 쓸모없는 여담이나 쓸데없는 수다를 피해야 하며, ‘간결하게’ 성경 저자의 의도를 드러내는 것으로 만족
설교자, 소리에도 주의 기울여야 말로 하는 의사소통은 주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전달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말의 전달 방식이 갖는 다양한 면들을 흔히 간과하기 쉽다.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라는 속담에서 보듯이, 말의 어감이 전달하는 내용까지 결정짓는다. 사실 말하는 문맥과 말하는 방식에 따라 말하고자 하는 내용마저 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이야기하다”라는 것과 “쑥덕대다”라는 말은 전혀 다른 감정을 표현한 것이다.게다가 설교자는 말의 ‘소리’를 내용에 따라 바르고 알맞게 사용하는 법을 알아야
시선을 맞추는 것은 사랑의 기술 의사소통은 기본적으로 말에 의존한 언어적 의사소통, 말없이 소통하는 비언어적 의사소통으로 구분된다. 사람은 끊임없이 소통하며 살아간다. 침묵도 일종의 의사소통이기 때문이다.정서적 차원의 각종 비언어적 신호들, 즉 얼굴 표정, 손짓, 몸짓, 시선, 자세, 행동, 외모, 옷차림 등은 전달해야 할 메시지의 깊이와 크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비언어적 의사소통의 영역들을 세심하게 연구하고 설교전달에 활용할 필요가 있다.설교자의 몸짓(gesture)은 무엇보다 자연스러워야 한다. 한 순간도
“삶에서 쉼 없이 타올라야 한다” 이제 설교자는 설교문을 전달하는 생생한 영적 전쟁의 현장에 서게 된다. 서재에서 씨름했던 것처럼 설교자는 강단에서도 언제나 기도의 자세를 잃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거룩한 설교 사역은 언제나 성령의 임재하심과 일하심을 절대적으로 요청하기 때문이다.로이드 존스 목사는 ‘설교 원고’(sermon)와 ‘설교 행위’(preaching)를 올바르게 구별하였다. 토마스 롱 역시 이를 견지한다. 즉 설교자가 메모나 설교문을 준비하지만, 설교란 단지 종이 위에 써 놓은 기록 자체를 말하는 것이
설교 표절은 부인 못할 영적 게으름 설교문 작성은 쉬운 작업이 아니다. 많은 시간을 요구하는 힘겨운 작업이다. 구어체로 작성해야 하는 의식적 노력이 따르기 때문이다.트림프(C. Trimp) 교수는 에서 설교문 기록의 다섯 가지 유익을 열거한다. (1)기록은 정확하고 분명한 표현을 하도록 자극한다. (2)기록은 사고의 흐름을 통제할 수 있게 한다. (3)기록은 사고를 자극한다. 칼빈이 에서 어거스틴의 금언을 인용했던 것처럼 사고를 진전시키며 기록하고, 기록하면서 사고가 진전된다는 것은 일반적 진리이다. (
소박하게 등장, 소리없이 퇴장해야 예화는 설교의 주제를 선명하게 설명하거나 효과적으로 적용하는 중요한 기능을 갖고 있다. 예화는 기억력을 도우며, 감정을 뜨겁게 하며, 필요를 깨닫게 하고, 주의를 집중시키고, 화자와 청자 사이의 친밀감을 증진시켜 준다.‘예화(illustration)’란 그 어원에 따르면 어떤 주제에 ‘빛(lux)’을 비추어 선명하게 이해하도록 돕고, ‘예증하는(illustrate)’ 기능을 갖는다. 마치 ‘집중광선(spotlight)과 같이 자신은 드러내지 않으면서 비추는 대상을 밝히 드러내는 것이다. 따라서 예화
대화체 설교, 청중 몰입도 높인다 설교의 결론은 서론과 마찬가지로 주의 깊게 준비되어야 한다. 결론은 설교의 목적을 성취하는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설교자는 미리 언제, 어떻게 결론을 내릴 것인지 그 내용과 표현을 분명하게 준비해야 한다.많은 설교자들이 결론에 이르러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라고 언급한다. 이것은 결론에 크게 도움을 주지 못한다. 이런 언급에 대해 청중들은 “이젠 설교가 다 끝났구나”라고 생각하며 긴장의 끈을 놓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설교자가 지금까지 애써 유지해 온 긴장감이 한순간에 풀어져 정작 절정에
하나의 주제로, 완결된 작품돼야 설교란 ‘하나의 작품’이다. 설교는 반드시 하나의 주제만을 다루고, 동시에 완결된 작품이어야 한다.본문 주해가 완결된 후 설교문 작성에 앞서 묵상을 통해 얻은 설교주제와 설교대지들을 중심으로 설교문 전체의 ‘개요’(outline)를 작성한다. 개요는 일종의 뼈대로서 건물의 설계도와 같다. 설교의 내용을 배열하고 배치하는 설계도이다. 설교문의 개요 작성은 설교자에게 최소한 세 가지의 유익을 준다. 개요 작성의 첫 번째 유익은 무엇보다도 설교 내용의 논리적 흐름을 시각적으로 보여줄 뿐만 아니라 설교주제의
창조적 적용은 실천을 격려한다 적용이 빠진 주해는 설교 준비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 설교란 본문의 의미 위에 세워져야 하며, 본문의 의도를 따라 오늘의 청중에게 증거하는 것이다. 설교란 본문의 의도를 오늘의 청중들에게 연결하는 설교자의 묵상을 통해 완성된다. 한 마디로 말하면, 설교란 적용을 통해 완성된다.설교란 청중들이 살아가는 상황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매 순간 청중들의 상황 가운데 진리와 생명의 말씀으로 찾아오시는 사건이다. 성경의 가르침이 오늘날 청중들의 현재적 삶에 파고들어 그들의 삶의 변화를 목적으
묵상 통한 적용이 설교되게 한다 선택된 본문의 의미를 발견하기 위하여 본문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본문 주해는 앞서 살핀 대로 각종 도구들(사전, 문법책, 고고학서적 등)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본문 주해는 가능한 한 편견 없이 객관적 작업이 가능하도록 힘써야 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각기 개인적인 전제와 주관적 경험을 갖고 있기에 본문 이해를 위한 완벽한 객관성을 유지할 수는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견해를 주장하기 위해 본문의 외적인 요소를 강요하는 것은 올바른 주해가 아니다. 오히려 정직한 주해자는 본문의 말씀에 귀를
‘손과 발의 순종’을 경험하라 본문 주해에 있어서 문맥이 중요한 만큼 본문의 장르(genre) 역시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영감된 책인 동시에 인간의 언어로 기록된 책이다. 성경은 특정한 문학 형식을 지닌 다양한 장르로 기록되어 신구약 66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면, 시편, 아가서, 애가서와 같은 시가서가 있으며,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기록한 네 개의 복음서, 바울과 사도들의 많은 편지들인 서신서, 그리고 다양한 상징어들로 기록된 요한계시록과 같은 계시문학서가 있다. 본문 주해에서 설교자
문맥을 떠난 성경 해석은 잘못 선택된 본문을 반복해서 읽는 일은 설교 준비의 기초 작업인 동시에 필수 작업이다. 본문 읽기는 일반적으로 본문 이해의 첫걸음이다. 하지만 교회의 회중을 위한 설교 준비를 위해서는 더욱 자세한 본문 연구가 뒤따라야 한다.본문을 정확하고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해석학적 원칙을 사용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올바른 해석의 관점을 지닌 안경을 써야 한다. 잘못된 해석학적 안경을 쓰면 언제나 잘못된 해석을 잉태하고 잘못된 적용을 낳기 마련이다. 어떤 의미에서 설교의 승패는 본문 해석에 달려있다 해도 과
단일한 사고 단위 본문 선택하라 설교가 기초해야 할 본문은 기본적으로 사고의 한 단위를 지녀야 한다. 훌륭한 설교는 언제나 한 번의 설교에 하나의 주제만을 취급하기 때문이다. 비록 3대지 설교라 할지라도 하나의 초점을 지닌 하나의 주제만을 다루어야 한다. 결코 ‘한 지붕 세 가족’이 되어서는 안 된다.옛말처럼 우물을 파더라도 한 우물을 파야 한다. 두 마리 토끼를 맨손으로 잡는 일은 쉽지 않다. 아니 헛수고만 할 뿐이다. 해돈 로빈슨이 정확하게 표현했듯이, 설교는 ‘산탄’이 아니라 ‘총알’처럼 표적을 제대로 맞추어야 한다. 하나의
말씀과 함께, 말씀을 통해 일하신다 설교문을 작성하기 위한 첫걸음은 본문 선택에서 시작된다.필자는 최소한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설교자가 반드시 본문을 선택해야 한다고 확신한다.첫째, 설교는 언제나 성경 본문에 근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경 본문 없이 설교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기독교 설교의 독특성을 상실한 것이다.기독교 설교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본문을 해설하고 성경의 가르침과 교훈을 성도들의 삶에 적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 바람 부는 날 연을 만들어 하늘 높이 날려 본 경험이 있는가? 갖가지 모양의 연들이 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