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현 교수(총신대학교 설교학)

설교 표절은 부인 못할 영적 게으름
 

설교문 작성은 쉬운 작업이 아니다. 많은 시간을 요구하는 힘겨운 작업이다. 구어체로 작성해야 하는 의식적 노력이 따르기 때문이다.

트림프(C. Trimp) 교수는 <설교학 강의>에서 설교문 기록의 다섯 가지 유익을 열거한다. (1)기록은 정확하고 분명한 표현을 하도록 자극한다. (2)기록은 사고의 흐름을 통제할 수 있게 한다. (3)기록은 사고를 자극한다. 칼빈이 <기독교 강요>에서 어거스틴의 금언을 인용했던 것처럼 사고를 진전시키며 기록하고, 기록하면서 사고가 진전된다는 것은 일반적 진리이다. (4)기록은 적절한 단어 선택과 자신의 어휘를 형성할 기회를 제공한다. (5)기록은 설교의 대지를 수정할 기회를 제공한다.

설교문 작성은 설교문 전체를 기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으로 최소한 목회 초기부터 약 10년 정도 설교문 전체를 기록해야 한다. 그렇게되면 설교문 기록이 주는 유익 때문에 은퇴하기까지 내내 설교문을 기록할 것이다.

물론 작은 메모지에 설교문의 개요만을 간단히 적어 강단에 서는 설교자들도 있다. 오랜 목회와 설교의 경험을 지닌 설교자가 흔히 이런 방식을 따르기도 한다. 그러나 분주한 생활 가운데 설교 준비에 전폭적으로 시간을 투자하지 못한 결과로 간략한 개요만을 기록한 작은 메모지를 들고 강단에 오르는 것이 성실한 설교인지는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각자가 판단할 일이다. 칼빈에게 있어서 신실한 설교란 무엇보다도 ‘준비된’ 설교였다.

특별히 달변의 재능을 지닌 설교자들은 설교문 기록에 게으르지 말아야 한다. 작은 실마리만 있어도 한 시간 정도 충분히 회중들을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는 언변을 지녔다면, 더더욱 설교문 기록에 경각심을 가지고 매진해야 한다. 왜냐하면 올바른 자세가 결여된 달변의 재능은 하나님의 말씀을 봉사하기보다 오히려 말씀 봉사 사역에 커다란 걸림돌과 원수가 된다. 자신의 언변을 믿는 달변가는 십중팔구 설교 준비에 소홀하게 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설교 원고가 완전히 마무리되었다고 설교 준비가 끝났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아직 설교 원고를 자기 것으로 삼아야 하는 과정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원고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말할 수 있도록 내용을 충분히 숙지해야 한다. 기록한 설교문을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을 고전 수사학에서는 ‘암기’(memoria)라고 불린다. 여기서 암기란 원고를 완전히 암기하여 기억 속에서 여자적으로 암송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설교문을 여자적으로 암송하는 것은 설교자에게 불필요한 수고이며, 효과도 적은 방법이다. 매주 설교해야 하는 목사에게 부담만 가중시키는 일이다. 여자적 암송이 더욱 해로운 까닭은 설교자가 여전히 계속 설교 원고에 의존하고 매달린다는 것이다. 그 결과 정작 중요한 의사소통에 있어 회중과의 눈맞춤 대신 원고에 고정되고 만다.

따라서 암기란 메시지를 완전히 파악하고, 설교의 주된 흐름과 중심 개념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원고를 자기 것으로 삼은 설교자는 원고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회중의 얼굴을 바라보며 설교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찰스 브리지스(Charles Bridges) 목사는 <참된 목회>(The Christian Ministry)에서 설교자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점을 지적한다. “설교는 그것이 아무리 잘 소화되었다 하더라도 우리 자신에게 먼저 설교되지 않는다면 결코 바르게 설교된 것이 아니다. …우리의 메시지를 먼저 우리 마음에 적용하는 것이 회중에게 하나님의 일들에 대한 깊고 무게 있는 감동을 전달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설교문 작성과 관련하여 표절 문제가 심각하다. 표절에 대한 기술적 정의는 차치하고서라도 설교 표절에 대한 설교자의 의식과 도덕성, 설교자의 설교문 작성 훈련, 목회 현장에서의 과중한 설교 사역, 인터넷 기술문명의 발달로 인한 사이버 세계, 각 교회마다 인터넷 설교의 업로드, 각종 미디어의 폭발적 증가, 디지털 자료의 손쉬운 복제, 전 세계의 지구촌화 등 21세기 현대생활은 과거에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들이 긍정적으로만 아니라 부정적으로도 발생하고 있다. 우리가 설교 표절이라 말할 때는 최소한 설교자 자신의 본문 주해나 적용의 노력 없이 타인의 설교를 무단 복제하여 자신의 설교인양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필자는 설교 표절과 관련하여 단지 한 가지만 주목하고자 한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부르신 설교자로서의 소명과 사명을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겸손히 기억하자! 근본적인 원리가 제자리를 찾아 회복되기 전에는 그 어떤 노력도 형식적 변화에 그치고 말 것이다. 거듭남이 없이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설교 표절은 부인할 수 없는 영적 게으름의 뚜렷한 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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