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현 교수(총신대학교 설교학)

말씀과 함께, 말씀을 통해 일하신다
 

설교문을 작성하기 위한 첫걸음은 본문 선택에서 시작된다.

필자는 최소한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설교자가 반드시 본문을 선택해야 한다고 확신한다.

첫째, 설교는 언제나 성경 본문에 근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경 본문 없이 설교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기독교 설교의 독특성을 상실한 것이다.

기독교 설교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본문을 해설하고 성경의 가르침과 교훈을 성도들의 삶에 적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 바람 부는 날 연을 만들어 하늘 높이 날려 본 경험이 있는가? 갖가지 모양의 연들이 하늘 높이 날고 멋지게 춤을 추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경험이다. 갑자기 연날리기 추억을 이야기하는 까닭이 있다. 연이란 자고로 연을 날리는 주인의 손에 연결된 줄에 매여 있을 때만 창공을 차고 높이 오를 수 있다. 때로 연줄이 서로 얽혀 공중에서 연싸움이 벌어질 때가 있다. 이때 줄이 끊어진 연은 제 아무리 멋지고 든든 할지라도 힘없이 휘청거리다가 이내 바닥에 고꾸라지고 마는 법이다.

설교도 마찬가지다. 설교가 본문에서 떠나게 되면 하나님 말씀의 봉사라는 고유한 정체성을 상실한 채 더 이상 하나님 말씀의 설교일 수 없다. 교회 역사 가운데 등장한 16세기 재세례파 혹은 신령주의자들의 오류는 다름 아닌 기록된 성경을 무시한 처사였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말씀 없이(sine verbo)’로 지칭된다. 그들은 오로지 성령과의 직접적 교통, 성령의 내적 조명을 통한 새로운 계시만을 열렬히 강조하였다. 이 때문에 문자는 죽은 것이라고 하여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을 무시하였다. 그러므로 설교는 언제나 “구원에 이르는 지혜”(딤후 3:15)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인 성경 본문에 기초해야만 한다.

둘째, 설교자가 성경 본문을 해설하고 그 교훈을 성도들의 삶에 적용할 때, 성경의 저자 되신 성령 하나님께서 친히 회중에게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방법으로 그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고,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구원의 은혜들을 베푸시기 때문이다. 여기에 설교의 신비가 담겨 있다.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때, 성령 하나님께서 친히 그 설교를 사용하시어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다.

성령 하나님은 언제나 ‘말씀과 함께(cum verbo)’ 일하시고, 또한 ‘말씀을 통해(per verbum)’ 일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설교자의 임무이자 의무는 반드시 성경 본문을 강해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리하면 성령께서 설교자의 수고를 사용하시어 친히 그 기뻐하신 뜻을 따라 ‘신비롭게’ 구원의 은혜를 나누어주신다.

화란의 개혁주의 설교학자 트림프(C. Trimp)는 본문 선택을 위한 세 가지 방식을 소개한다. 페리코프(pericope), ‘연속적 성경읽기(lectio continua)’, 그리고 ‘자유로운 본문 선택’이 바로 그것이다.

첫째, ‘페리코프’란 문자적으로 말하면 하나의 책 전체에서 ‘도려낸(cutting-out)’ 부분으로, 페리코프 조직은 매주일 1년 동안 설교할 본문을 미리 정해 놓은 것이다. 페리코프의 장점은 설교자의 본문 선택의 독자적 임의성을 배제하고, 전체 기독교 교리를 해마다 설교할 수 있다. 하지만 미리 정해진 페리코프는 하나님의 뜻을 다 전해야 하는(행 20:27) 설교자의 의무를 수행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동시에 회중이나 세상에서 발생하는 중요한 사건들에 대한 시의적절한 기독교적 응답을 가로막기도 하는 단점을 갖는다.

둘째, ‘연속적 성경읽기’는 회중과 설교자의 성경 지식의 증대를 위해서는 아주 유용하지만, 때때로 “피곤하고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라고 트림프는 평가한다. 왜냐하면 이런 방식의 본문 선택에 따른 설교는 카이퍼(A. Kuyper)의 말처럼, 마치 가족에게 저녁 식사로 처음 몇 달 동안 빵만 주다가, 그 후 몇 달 동안은 채소만 주고, 다시 몇 달 동안 고기만 제공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셋째, 트림프는 ‘자유로운 본문 선택’을 가장 좋은 것으로 옹호한다. 설교자가 하나님의 뜻을 다 전해야 하며, 오늘날 회중들의 현재적 삶을 십분 고려한 본문 선택에 따른 설교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유로운 본문 선택’이 모든 위험에서 면제된 것은 아니다. 설교자의 ‘자유’가 갖는 일방성과 편파적 독단성을 주의해야 한다.

이런 위험을 보완하기 위해 개혁교회는 기독교 교리 전체를 포괄하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설교를 매주일 오후에 해마다 반복한다. 한국의 장로교회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과 쌍벽을 이루는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경륜 전체를 가르치고 설교할 수 있다. 게다가 설교자는 교회력을 고려한 설교, 혹은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한 시리즈 설교를 통해 ‘자유로운 본문 선택’이 갖는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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