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5회 총회를 앞두고 역사 다큐를 준비하여 상영하려고 했다. 필자는 개혁측 출신으로서 총회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을 하다 먼저 우리 총회의 눈물겨운 역사를 담은 다큐부터 만들어야겠다는 감동이 왔다. 도 읽어보았지만 너무 나열식으로 전개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보수적인 신앙과 칼빈주의 신학을 지키기 위해 허허벌판으로 나와 오늘의 총회를 이룬 선진들의 순혈적 사명을 담은 감동적 다큐를 만들어 새 역사의 지평을 열어보고 싶었다.그랬더니 일각에서 소비어천가(?)를 부르는 다큐를 만든다느니, 누구
최재붕 교수가 쓴 는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에 관한 고찰을 담고 있다. 현대인은 스마트폰을 신체의 일부처럼 사용하는 포노 사피엔스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와 대세의 흐름을 이해하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 살아남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명운이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문명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하여 영국과 미국의 사례를 든다.영국에서 자동차가 처음 나왔을 때 마차의 마부들이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고 데모를 했다. 자동차 운행 속도를 말보다 늦게 해야 한다고 주장을 한 것이다. 처음에는 그게 먹혔다. 그래
영국에서 개혁주의 신학과 삶을 따르는 두 부류가 있었는데 하나는 언약도요, 하나는 청교도였다. 언약도는 스코틀랜드를 중심으로, 청교도는 영국을 중심으로 형성이 되었다. 언약도와 청교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는 공통분모가 있었고 그들의 지도자들은 국교로부터 핍박을 받았다.그러면 언약도와 청교도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언약도는 순수한 교회운동을 하였다. 국왕의 교회 통치를 거부하고 국교를 반대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는 교회론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 그런데 이들은 사회 정치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오로지 기도하고 선교하
일반적으로 칼빈주의 하면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하나는 신학이고 또 하나는 교회의 정치원리다. 칼빈은 신학자이면서 목회자였다. 그래서 그는 신학을 교회론에 적용하였는데, 한 마디로 신정주의 정치원리라고 할 수 있다. 칼빈이 처음에 시작한 신정주의 정치원리는 지교회를 통해서 실행한 것이 아니라 제네바 시의회를 통해서 실행하였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 상황으로 칼빈의 장로교회 정치제도를 이해하면 안 된다. 칼빈은 시의회를 통해서 교회를 치리하고 운영하였기 때문이다.칼빈주의 신학과 교회 정치원리를 개교회에 접목한 사람이 존 낙스였다.
얼마 전 분당에 있는 칼빈박물관을 방문하였다. 칼빈박물관은 정성구 박사가 35년 전에 설립한 곳이다. 정성구 박사는 위대한 학자이자 설교자이고 부흥사였다. 나는 그 분을 직간접적으로 여러 번 뵈었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거의 3시간 반 동안 그 분의 간증과 특강, 박물관에 소장된 자료를 소개받았다.박물관에는 폴리갑부터 어거스틴에 이르기까지, 칼빈과 아브라함 카이퍼, 주기철, 박형룡, 박윤선 목사에 대한 원본 자료들이 즐비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칼빈박물관은 전 세계에 딱 3개가 있다고 한다. 프랑스에 있는 박물관은 시립박물관이고 관장이
우리 교단의 선진들은 WCC를 반대하며 보수주의 신학을 지키려고 했지만, 원리적 근본주의나 극단적 분리주의도 배격하였다. 이것이 우리 선진들의 아주 균형 있는 판단이고 신앙의 조화를 이룬 것이었다. 한동안 우리 한국교회에 몸살을 일으킨 행사가 부산 WCC 세계대회였다. WCC 유치는 출발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WCC 행사 때문에 한국교회는 크게 분열되고 말았다.그래서 한동안 한국교회는 WEA를 대안으로 생각했다. 그때만 해도 우리 교단도 WEA에 대해서 비교적 복음적이라며 포용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래서 나도
우리 교단의 선진들은 신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WCC를 반대하며 교단 분리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한 마디로 교단의 선진들은 신학적, 신앙적 순혈주의자였다. 그 순수성이 오늘의 교단을 이루게 하였다. 그러나 신학적 순혈주의가 극단적 원리주의나 분열주의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었다.교단 분리 이후, 남산에서 용산으로 다시 복구 신학교를 세우려고 할 때 재정이 전혀 없었다. 그때 김윤찬 목사는 ICCC 총재였던 매킨 타이어 박사에게 편지를 보냈다.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한국에서 보수신학을 사수하는 곳은 우리 교단과 총회신학교 뿐입니다
최근에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대국민감사콘서트에 다녀왔다. 티켓이 단 몇 분 만에 매진되고, 인터넷도 못하는 내 실력으로는 표를 구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에서 직접 초대권을 보내주어 총회행사를 기획하는데 도전받아야 할 것들이 있는지 배우기 위해서 부목사 몇 분과 갔다. 공연을 끝까지 관람하지는 못하고 도중에 나와야 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실로 엄청난 도전을 받았다.은 방송 역사상 예능프로그램 중 최고의 시청률을 올린 새로운 구성이었다. 트로트는 은연 중에 올드 포맷이 됐고 전형적인 노래
코로나19가 한국교회 예배를 반 토막을 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배와 설교는 계속해서 너무 뻔한 패턴과 포맷으로 행해지고 있다. 달라진 것이 없다. 중세 시대는 더 그랬다. 당시 사제들은 예배를 너무 엄숙하게만 집례하였고 평민들은 전혀 알아들 수 없는 고급 라틴어를 사용하였다. 아니, 빈민들은 예배당 안에 들어가는 것조차도 상상하기 힘들었다.이럴 때 성 프란시스는 교회당 밖으로 나가 거리와 시장, 광장에서 평민들이 사용하는 시장언어를 사용했다. 그리고 당시 유행하던 민요나 대중가요에 복음 가사를 입혀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달하였
한국교회의 가장 중요한 신앙적 자산과 신학적 유산은 예배다. 한국교회는 예배를 통해서 기적 같은 부흥을 이뤘다. 예배에는 찬양, 기도, 헌상이 있지만 개혁주의 예배의 꽃은 하나님 말씀을 대언하는 설교라고 할 수 있다. 개혁주의 예배에서 설교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루돌프 오토가 말한대로 설교는 단순히 하나님의 언어를 전달하는 행위가 아니다. 설교자가 강단에 올라가는 순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강력하고도 압도적인 신적 경험을 해야 한다. 이걸 두려운 신비라고 한다. 설교자가 두려운 신비를 느낄 때 청중에게 전율과 매혹이라는 반응이
제105회 총회 총회준비위원회가 발족이 되었다. 슬로건을 ‘세움’으로 정했다. 한국교회는 언제부턴가 문화 막시즘의 공격을 받으며 중심그룹에서 서서히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나면서 마이너리티가 되어가고 예배에 있어서는 반토막이 나 버렸다. 한국교회를 세울 마지막 골든타임마저 놓쳐 버릴까봐 제105회 총회 슬로건을 ‘세움’으로 한 것이다.총회를 세우려면 먼저 교회를 세워야 한다. 교회를 세우는 가장 큰 동력은 생명력이다. 생명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강단의 말씀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설교는 해돈 로
지난주 목사장로기도회 시간에 기도를 인도하는 박성규 목사님이 한 이야기다. “교회는 원로목사와 담임목사, 당회원만 하나 되면 전혀 문제없이 부흥합니다.” 그 순간 필자는 우리 총회를 연상해 봤다. 우리 총회도 직전 총회장과 현 총회장, 그리고 임원들만 하나가 되면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총회 역사를 보면 많은 경우에 현 총회장과 부총회장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갈등이 있다. 그래서 부총회장이 총회장이 되면 직전 총회장이 결정해 놓은 것을 원점으로 돌려버리기도 한다. 그러면 직전 총회장의 마음이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또
한동안 한국교회가 다음세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면 너무 추상적이고 사변적이며 철학적이었다. 필자는 이 일을 두고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21세기목회연구소 김두현 소장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교회세대라는 용어를 알게 되었다. 한국교회는 다음세대를 넘어 교회세대를 이야기하고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다.지금까지 영국교회와 미국교회의 지도자들은 내면적 영성이나 개인적 믿음에 치중해 왔다. 그러다 보니 한국교회 강단도 영국교회와 미국교회를 따라갔고 주로 다
우리 총회는 너무 정치화되어 있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정치만 있고 정책이 없는 상태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정책을 통해 세움 총회를 이뤄가야 한다. 제105회 총회 슬로건을 ‘세움’(planting)으로 했다. 그러면 세움 총회를 이루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첫째, 신앙의 본질을 리셋하고 세워야 한다. 코로나 때문에 일부에서 가정목회나 멀티미디어 가상교회의 필요성을 강조하는데 그것은 비상시기에 지엽적인 방법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초대교회 신앙을 리셋하는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성도들이 몇 달 동안 예배도 드리지 않고 예배를 드
한국교회가 사회적 공격을 받게 된 것은 시대정신을 제시하지 못하고 시대적 사명과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플랫폼, 공유, 나눔, 섬김의 정신 등을 제시하지 못하고 환경, 생태계, 저출산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오히려 자신들만의 이너서클을 쌓고 종교적 카르텔을 형성하면서 너무 정치화 되었다.또한 리더십을 세우지 못했다. 지금 한국교회는 춘추전국시대이고 무주공산 시대다. 예일대학교 찰스 쿱천 교수가 말한대로 ‘노 원스 월드’(No One’s World), 누구의 시대도 아니다. 우리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