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칼럼/ 총회 100년을 설계하다] (35)총회세대를 세워가자
[소강석 칼럼/ 총회 100년을 설계하다] (35)총회세대를 세워가자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부총회장)
  • 기독신문
  • 승인 2020.06.30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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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부총회장)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부총회장)

한동안 한국교회가 다음세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면 너무 추상적이고 사변적이며 철학적이었다. 필자는 이 일을 두고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21세기목회연구소 김두현 소장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교회세대라는 용어를 알게 되었다. 한국교회는 다음세대를 넘어 교회세대를 이야기하고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영국교회와 미국교회의 지도자들은 내면적 영성이나 개인적 믿음에 치중해 왔다. 그러다 보니 한국교회 강단도 영국교회와 미국교회를 따라갔고 주로 다음세대만을 외쳤다. 그러나 아무리 다음세대를 외쳐도 교회세대에 대한 의식이 없고 그 세대를 이어가지 못하면 교회가 무너지는 것이다. 교회가 무너지면 어떻게 다음세대를 이어갈 수 있겠는가.

다음세대를 준비하자는 말은 개인적이고 가정적인 라인에서 믿음의 유산을 이어가도록 하는 의미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교회세대를 이어가자는 말은 그 교회가 가진 복음의 생명력, 신학의 정체성, 성령의 역동성, 교회론적 가치를 다음의 교회로 이어가게 하자는 뜻이다. 그리고 그 교회를 넘어 지역의 다른 교회와 또 다른 지역의 교회까지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이제 나는 다음세대, 교회세대의 의미를 확장시켜서 총회세대를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 교단은 걸출한 리더들이 많았다. 정규오 목사를 중심으로 51인 신앙동지회, 이영수 목사를 중심으로 한 리더십이 두 축을 이루며 우리 총회의 기반을 다지고 세워나갔다. 두 분의 리더십의 결과 색은 각자 다를 수 있다. 정규오 목사의 리더십은 신본주의적 기반 위에서 서생적 정치를 행사했다면, 이영수 목사는 신앙적이면서도 상인의 현실감각적 정치를 했다. 두 사람이 결이 다르고 색이 달랐어도, 총회를 사랑하고 총회를 세우기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우리는 총회 사랑 보다 총회를 기반으로 해서 어떻게 정치를 할 것인가를 앞세우는 경향이 있지 않는가. 또한 총신을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보다 총신이 정치 무대가 되고 각축장이 되게 한 적은 없는가. 총회세대가 우리에게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우리는 총회세대를 이어가야 한다. 우리 교단의 초창기와 부흥기 때 선진들의 일사각오의 신앙, 보수신학을 지키며 총회를 세우려는 정신과 영성을 이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보다 총회의 눈물겨운 역사를 바로 알고 신학의 정체성을 회복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복음의 생명력과 성령의 역동성을 가지고 정치보다는 정책과 비전을 세워가야 한다.

총회는 정치 놀이터가 아니라 자신의 땀과 눈물의 희생을 쏟고, 축적된 모든 경험을 바쳐서 섬기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이제 총회세대를 세우자. 그리하여 이제는 우리 교단만이 아닌 한국교회를 책임지고 세계교회까지 영향을 미치는 글로벌 총회로 다시 솟구치고 웅비하고 비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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