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제22회 전북독립영화제 개막작 <부유>를 출품한 태자경 감독. 전주 영화의 거리에서 만난 태자경 감독은 하나님 나라를 꿈꾼다고 했다. 아울러 같은 꿈을 꾸는 청년들과 공동체를 이뤄 기독교의 핵심 가치를 담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제22회 전북독립영화제 개막작 <부유>를 출품한 태자경 감독. 전주 영화의 거리에서 만난 태자경 감독은 하나님 나라를 꿈꾼다고 했다. 아울러 같은 꿈을 꾸는 청년들과 공동체를 이뤄 기독교의 핵심 가치를 담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청년들과 협업 원해요”

조언이 단초가 됐다.

고등학교 시절, 사회 선생님은 표현하고 싶은 욕망을 품고 있는 듯한데 항상 고독해 보이면서 생각이 많았던 그녀에게 “너 같은 애가 영화를 해야 해”라고 권했다. 추천서까지 써준 덕분에 청소년 영화캠프에도 참가했다.

은사의 판단은 정확했다. 그녀는 영화에 푹 빠졌다. 캠프에서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경험하며 자신의 이야기가 영화가 되는 게 신기하고 재밌었다. 그때 다짐했다. “언젠가 나의 영화를 만들겠다”고.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2022년 전북독립영화제 개막식을 장식한 영화 <부유>. 이 작품을 만든 신인감독 태자경은 교복을 입고 있던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다만 태자경 감독은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진 않았다. 대신 영화 관련 강의를 수강하고, 영화 워크숍 등에 꾸준히 다녔다. 특히 6년 가까이 영화 스태프로 일하면서 현장경험을 쌓았고, 유준상 감독의 <탑차>에선 조연출을 맡았다. 영화판에서 만난 선배들의 조언은 일과 삶의 방향을 잡아줬다.

“영화 스태프로 일하며 영화와 인생에 관한 얘기를 정말 많이 했어요. 그러면서 영화를 만드는 법과 세상을 사는 법을 배운 거죠. 사람 냄새가 나고 무엇이든 얘기할 수 있는 영화 현장이 좋았어요. 계속 머물고 싶었죠.”

영화감독 태자경.
영화감독 태자경.

태 감독은 지난해 전북단편영화제작스쿨에 참여하며 자신의 이름을 내건 영화 제작에 시동을 걸었다. 직접 각본을 쓰고 배우를 섭외하고 연출을 맡아 선보인 작품이 바로 <부유>다. 처녀작이 전북독립영화제 개막작으로서 영화제의 얼굴이 된 셈이니, 만족스러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예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아주 대단한 각오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요. 나를 덮고 있던 껍질을 깨고 자유롭고 솔직해지니 예술이 거창한 게 아니라, 나의 선택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됐어요. 아, 하긴 저도 오래 걸렸군요. 관심을 가진 지 10년 가까이 되어 첫 작품을 내놓았으니 말이죠(웃음).”
그럼 그녀가 선택한 영화, <부유>를 살짝 들여다보자.

초라해도 마음만은 부유한 그들

취준생 준과 미용보조로 일하는 유는 사랑을 키워오며 넉넉하진 않지만 둘만의 공간도 마련했다. 하지만 삶의 무게는 그들이 감당할 수준을 넘은 지 오래. 가스는 끊겼고 월세마저 내지 못해 짐을 빼야 하는 실정이다. 궁핍함을 못 이겨 이별을 준비하는데.

여름밤, 길을 걷다가 불쑥 달리기 시합을 하자는 유. “먼저 지치는 사람이 지는 거다”라며 힘껏 내달린다. 한참을 뛰더니 결국은 지치고 마는데, 가쁜 숨을 몰아쉬지만 무언가를 털어냈는지 웃음기를 되찾은 준과 유는 이렇게 말한다. “초라해도 우리들은 부유한 마음인거야.”

영화 &lt;부유&gt;는 오늘을 사는 20대들의 이야기로, 태자경 감독은 물질이 부족해도 마음은 부유할 수 있다고 일깨운다. 주인공 준과 유로 분한 배우 정지훈과 조인영의 풋풋한 연기도 눈길이 간다.
영화 <부유>는 오늘을 사는 20대들의 이야기로, 태자경 감독은 물질이 부족해도 마음은 부유할 수 있다고 일깨운다. 주인공 준과 유로 분한 배우 정지훈과 조인영의 풋풋한 연기도 눈길이 간다.

<부유>는 이 시대를 사는 20대들의 이야기다. 감독이 첫 작품에서 가까이 접한 또래의 사연을 소재로 삼는 일은 으레 있지만, 그 사유가 남다르다. 이런 경우 보통의 영화는 공감이 주를 이루지만, <부유>는 문제를 직시한다.

“결국 마음이 문제라는 겁니다. 물질이 삶의 중심이 되다 보니 초라한 생각에 사로잡혀요. 초라하다는 마음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요즘 20대들이 부유하다는 정서를 누리지 못하죠. 물질을 갈구하고 보이는 것을 갈구해 자유롭지 못하는 게 더 큰 초라함이라고 얘기하고 싶었어요.”

그 초라함을 떨쳐내는 수단이 달리기다. 한참 달리다가 임계점에 도달했을 때 준과 유는 초라한 생각을 토해내고 부유한 마음을 충분히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감독의 설명을 듣고선 꽤 심오한 영화라고 짐작할 수 있으나, 전혀 그렇지 않다. 잔잔한 분위기와 배우들의 풋풋한 연기가 러닝타임 내내 편안함을 주고 몇 번이고 다시 보게끔 하는 게 이 영화의 미덕이다.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청년

현재 태자경 감독의 관심사는 이주(移住)다. 세계 곳곳을 오가며 사는 시대인 만큼 그녀의 관심사가 특별하다고 할 수 없지만, 이 또한 들여다보면 예사롭지 않다. 원주민이 보는 이주민이 아니라, 이주민이 보는 원주민에 대한 관심이 많다. 따라서 태자경 감독의 차기작은 이주민 관점에서 카메라 앵글이 돌아갈 공산이 크다.

그녀는 이주, 이민, 다문화가정에 관해 꽤 진지했다. 학창시절부터 다문화가정을 많이 봐왔고 곁에 있는 친구도 다문화가정이라는 게 동기가 됐다. 이주민과 다문화가정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들의 삶을 공부하고 그들의 입장에 들여다보기도 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태 감독은 워킹홀리데이를 준비 중인데, 아예 이주민이 되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이 사안에 관심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저는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사람입니다. 이주민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의 입장에 서지 못한다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있겠어요. 영화라는 도구를 통해 이주민과 원주민 사이에 낯섦이 없는 통로를 만들고 싶어요.”

기독영화계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기독다큐영화는 때때로 상영관에 오르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기독극영화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태자경 감독에게 훗날 기독극영화를 만들 계획이 있는지 물었더니, 또다시 생각지도 못한 답변을 내놓았다.

“저 혼자가 만드는 게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청년들과 공동체를 이뤄 협업하고 싶어요. 기독청년들이 뭉친다면 퀄리티가 있으면서 기독교의 핵심 가치를 명확하게 담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미 문화예술 분야에 있는 청년들과 서로 성장해 작품을 같이 만들자고 얘기하고 있어요. 그런 그림이 조금씩 그려지고 있습니다.”

반가운 일이다. 설 곳을 잃고 있는 기독문화에 새로운 물결이 일어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태자경 감독의 말대로 기독청년이 한 데 모여 하나님의 기뻐하는 공동체를 이루고, 기독문화의 새로운 희망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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