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세상을 바꾸는 모습
(10) 세상을 바꾸는 모습
  • 호용한 목사(옥수중앙교회)
  • 승인 2019.05.14 16: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호용한 목사의 옥수동 소나타]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줄여서 ‘세바시’라 부르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우리 사회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나와서 15분 동안 공개강연을 하는 방송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2014 좋은 글 달력’을 만들어, 그 해 판매 수익금 1400만원 전액을 우유 배달에 후원해 주었다.

나는 후원금이 고맙기도 했지만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이라는 프로그램 명칭이 각별하게 느껴졌다. 세상에는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바뀌는 일들이 많지만, 15분 동안의 짧은 결단과 노력으로 결과가 바뀌는 일들도 많다. 그리고 그런 작은 결단과 노력들이 쌓일 때 예전에는 엄두도 못 냈던 큰일들이 이루어지는 것을 본다. 구제와 섬김도 그 중 하나이다. 나 혼자 힘으로는 아무것도 못할 것 같지만 하나 둘 정성을 모으고 힘을 합치면 동네를 구할 수 있고, 도시를 살릴 수 있다.

더 많이 모으고 쌓아두려는 자세가 아니라, 더 많이 베풀고 나누는 자세가 이루어지도록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일상의 훈련이 필요하다.
더 많이 모으고 쌓아두려는 자세가 아니라, 더 많이 베풀고 나누는 자세가 이루어지도록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일상의 훈련이 필요하다.

2006년에 접어들면서 나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지난 3년 동안 처남 덕분에 우유 배달 사역을 꾸준히 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 처남의 후원이 끊기면 더 이상 사역을 못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처남에게 후원을 더 해달라고 부탁해볼까 생각도 했다.

그러나 염치없는 일일뿐더러 현실적으로도 어려웠다. 아무리 사업가라지만 매월 200만원이라는 돈은 적지 않은 것이었다. 그렇다고 교회 재정으로 우유 배달을 계속하자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없는 살림을 쪼개어 구제를 해 오던 상황에서 매월 200만원을 따로 책정하기는 도저히 불가능했다.

그렇게 고민하는 중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금호동에서 혼자 살고 계시는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3년 전부터 우유를 배달해주어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는 어렵게 말을 꺼냈다. “사실은 이번에 일산에 있는 임대 아파트로 이사하게 됐어요.” “잘됐네요, 그동안 좁은 집에서 고생 많으셨는데 그래도 깨끗한 곳으로 이사하시니 잘되었어요.” “그래서 말인데요. 목사님! 우유를 계속 받아먹고 싶어요.”

할머니는 그러면서 미안했던지 수십 년 동안 금호동에 살면서 고생한 이야기며, 가난한 탓에 공부도 못했다는 이야기며, 자식들이 저 살기 바빠 도와주지도 않는다는 이야기 등 주저리주저리 이어가셨다. 나는 울먹이는 할머니에게 “앞으로도 우유를 보내드리겠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우유배달을 계속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괜한 약속을 하는 건 아닌가 생각도 되고, 서울시에 사는 사람들에게만 배달한다는 취지에 안 맞는 일인 것 같기도 했지만 다른 도리가 없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우유 배달을 하길 잘했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우유 배달을 앞으로도 잘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그동안 나를 힘들게 했던 우유배달 고민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다음 주일 예배 때 나는 우유 배달 이야기를 설교 시간에 꺼냈다. 우유 배달 후원이 이제 끊기게 됐다는 이야기와 함께 나를 포함해서 우리 교인들 25명이 한 달에 10만원씩을 내면 우유 배달을 계속할 수 있다고 눈물로 설교했다. 힘들더라도 우리 동네만큼은 계속해서 고독사 없는 동네로 만들자고 강조했다.
기적이 일어났다. 정말 25명이 딱 채워졌다. 다들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교인들은 가난한 가운데서도 자신보다 더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지갑을 열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오늘의 세태를 비판하거나 방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삶을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들이 이 세상을 비판하고 정죄하기에는 스스로도 자격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우리 자신이 똑같은 죄를 저지르는 결과가 된다. 동시에 세상을 외면하고 살기에는 우리의 신앙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오직 한 가지 예수님이 보여주신 삶을 세상에 보여주는 길이 있다.

우리는 가정에서, 교회에서 세상에 거저 주는 삶의 훈련이 필요하다. 소유는 더 큰 소유를 요구하지만, 결코 소유가 존재를 의미 있게 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소유의 축적보다는 값지게 희생하고 사용하는 원리를 배워야 한다. 예수님의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는 말씀을 오늘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말씀으로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제호 : 기독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4266
  • 등록일 : 2016.12.12
  • 발행인 : 이승희
  • 편집인(사장) : 이순우
  • 편집국장 : 강석근
  • 개인정보관리·청소년보호책임자 : 우리나
  • 서울시 강남구 영동대로 330
  • 전화번호 : 02-559-5900 , 팩스:[편집국]02-557-9653, [광고부] (02)556-5875, 메일:[편집국] news@kidok.com, [광고부] ad@kidok.com
  • 기독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9 기독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kidok.com
ND소프트
SNS에서도 기독신문
인기뉴스
 2196 표지이미지
과월호 호수이미지
과월호 호수이미지
과월호 호수이미지
과월호 호수이미지
과월호 호수이미지
과월호 호수이미지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