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용한 목사의 옥수동 소나타]

장학헌금으로 어려운 학생들을 돕기 시작하자, 이상하게도 여기저기 도와야 할 사람들이 눈에 보였다. 말라가는 새 순에 물을 한번 주면 사방에 가뭄 속에서 힘겨워하는 나무와 꽃들이 보이듯이.

가난한 사람에게는 먹거리가 제일 먼저였다. 사람들은 옷이나 양말, 생필품보다는 쌀을 원했다. 그래서 일 년에 서너 번씩 쌀 10kg들이 300포대(약 800만원)와 라면을 사서 이웃들과 함께 나눴다. 겨울 찬거리를 걱정하는 노인과 장애인 가정들을 위해 겨울이면 김장 김치를 수천포기 담갔다. 결식아동을 위해 급식비를 지원하고, 고독사 방지를 위한 독거노인 우유 배달도 시작했다.

나는 섬김 사역을 시작하면서 원칙을 하나 세웠다. “돈 한 푼이라도 아끼고 허튼 데 쓰지 말자. 그 해 수입은 그 해 다 쓰자. 내년에도 주님이 또 주실 테니까!” 돈 때문에 많은 목사들이 문제가 되고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데, 우리 교회만큼은 그렇게 되지 않고 싶었다.

그래서 장학구제 위원회를 따로 만들고 재정도 투명하게 공개했다. 위원회로 하여금 책임지고 한 푼이라도 더 절약하게 하고, 정확하게 지출하도록 했다. 2001년 한 해에만 장학과 구제 사역으로 사용한 돈은 1억 원이 넘었다. 그 당시 우리 교회 경상 예산의 30퍼센트가 되는 큰돈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우리 교회 장학·구제 헌금은 매년 1억원이 넘는다. 규모로 따지면 지금까지 수천가정을 도운 셈이다. 현재 우리 교회가 돕는 가정 수는 대략 1000개가 넘는다.

가난한 달동네 교인들의 헌금은 성경에 나오는 과부의 두 렙돈과 같다. 예수님은 부자들이 풍족한 중에 내는 많은 헌금보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이 더 크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달동네 사람들의 헌신을 기뻐하셨고, 더 놀라운 일을 예비하고 계셨다.

달동네 교회가 자기들보다 더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다는 소식에 외부로부터도 도움의 손길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신문을 보고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돈을 보내 왔다. 우리 교회가 매년 지출하는 1억여 원 중 상당 부분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외부 후원자들이 보내온 후원금이다.

우유 배달을 시작할 수 있게 해 준 처남은 매년 연말이면 귤 300박스를 교회로 보내주었다. 처음 귤이 한 트럭 가득 실려 왔을 때, 교인들은 처남이 제주도에서 귤 농장을 하는 줄로 오해했다. 그러나 처남은 귤 농장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다만 우유 배달 후원을 했던 것처럼 외로운 이웃들을 섬기고 싶다는 생각으로 무려 500~600만원어치 귤을 사서 보내온 것이었다. 귤은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지만, 시중가의 절반 값에 교인들에게 팔기도 했다. 교인들은 넉넉한 마음으로 귤을 사 주었다. 귤을 판 돈으로는 쌀을 사서 이웃들과 나눴다. 10년 넘게 계속 귤을 보내온 처남 덕분에 우리 교회 성탄절은 더 푸근하고 행복했다.

많은 사람들은 옥수중앙교회가 어떻게 그렇게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그 때마다 내 대답은 동일하다. 전도서 11장 1절에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라고 했다. 우리 교회는 이 말씀을 따라 떡을 물 위에 던진 것뿐이었다. 사실 내 돈을 던진 것도 아니다. 교인들이 한 푼 두 푼 모은 장학헌금이었고, 얼굴도 모르는 후원자들이 보내준 돈이었다. 그 돈을 아껴서 그냥 물 위에 흘려보낸 것이다.

신기한 것은 전도서의 말씀대로 했더니 정말 여러 날 후에 도로 찾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우리 교회는 2001년 1억 원을 흘려보내면서도 4년 만에 은행 빚 10억 원을 몽땅 다 갚았다. 우리 교회가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떡을 물 위에 흘려보냈을 때 하나님은 더 많은 떡으로 우리 교회를 먹이셨다.

고 한승호 권사님 댁에 심방 갔다가 함께 찍은 사진. 이 사진을 찍고 얼마 안 있어 한 권사님은 병원에 입원하셨고, 1주일이 지나 세상을 떠났다.
고 한승호 권사님 댁에 심방 갔다가 함께 찍은 사진. 이 사진을 찍고 얼마 안 있어 한 권사님은 병원에 입원하셨고, 1주일이 지나 세상을 떠났다.

2001년 나에게 2000만원을 주신 분은 고 한승호 권사님이시다. 지금 계산해 보니 우리 교회는 지난 19년 동안 30억원 이상을 가난한 이웃들에게 흘려보냈다. 권사님이 나에게 주신 2000만원은 그 30억 원의 종잣돈이 되었던 것이다. 한 권사님은 3년 전 96세의 나이로 이 세상 소풍을 끝내고 천국으로 이사하셨다. 권사님이 세상을 떠나시기 직전 나는 세브란스 병원에서 권사님의 손을 붙잡고 “권사님께서 옥수동에서 얼마나 귀한 일을 하셨는지 우리 주님이 기억하실 것에요. 천국에서 다시 만나요”라고 조용히 감사의 작별 인사를 드렸다. 그 후 권사님과 나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고, 잠시 후 그분은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그리운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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