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용한 목사의 옥수동 소나타]

‘세상은 왜 변하지 않는가?’ 이 질문으로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2016년 1월 어느 날이었다. 교역자들과 회의를 하는데 사무실 전화벨이 울렸다. “목사님! 안녕하세요? 금호동 4가 주민센터 사회복지 담당입니다.” 가끔씩 교회에 방문하여 반갑게 인사 나누던 주민센터 직원이었다. “금호동 4가 김연순(가명)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연락드려요. 오늘 아침에 우유보급소에서 연락이 와 찾아가 봤더니 그렇게 됐더라고요.”

지난 12월에 금호동에서 80대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1월 초에는 옥수동에서 할아버지 한분이 돌아가셨다. 이번 겨울 들어 벌써 세 번째 죽음이었다. 이런 분들일수록 장례라도 제대로 치를 수 있을까 걱정이다. “아들이 와서 자연사 확인했고요, 장례는 가족들이 알아서 한다니까 걱정 안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내 마음 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건지, 직원이 얼른 말을 이었다. 나는 장례식장은 마련했는지, 매장할 곳은 있는지, 아들 형편은 어때 보였는지 이것저것 묻고는 전화를 끊었다. 착잡한 기분이 얼굴에 비쳤던 모양이다. 교역자 한명이 “그래도 이틀 만에 발견했으니 얼마나 다행이에요?”하고 말을 건넸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가난하게 살다 외롭게 죽어간 한 노인을 생각하면 ‘다행’이라는 말은 너무 아쉽고 마음이 아팠다.

우유배달은 홀로 사는 노인들의 쓸쓸한 고독사를 막는 방편이기도 하다.
우유배달은 홀로 사는 노인들의 쓸쓸한 고독사를 막는 방편이기도 하다.

2017년 인구주택 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65세 이상 독거노인이 우리나라에 약 140만명이나 된다고 한다. 서울에만 27만명이 살고 있다. 한국전쟁을 겪었거나 전쟁의 폐허 속에서 힘들게 삶을 이어온 이들이 인생 막바지까지 팍팍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이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독거노인이 갈수록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15년만 해도 386명이 혼자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김연순 할머니도 그런 독거노인 중 한 명이었다. 할머니는 작고 허름한 연립주택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누군가 일부러 찾아가 만나거나 관심을 갖지 않으면 할머니가 무엇을 먹는지, 어떻게 사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날 아침에도 우유배달원이 현관문에 걸린 바구니에 우유 두 개나 그대로 있는 것을 보고 주민센터에 연락을 하지 않았다면 할머니는 몇 날 며칠 그렇게 덩그러니 내버려졌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됐더라면 할머니의 이름은 신문에 실렸을 것이다. 발견이 늦어진 만큼 사람들은 각박한 세상인심과 정부의 복지정책을 탓하며 목소리를 높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며칠 떠들썩할 뿐 사람들은 언제 관심이나 있었느냐는 듯이 문을 걸어 잠그고, 이웃에 누가 사는지 관심 주지 않은 채 예전처럼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이라는, 세계 최고의 부흥을 이루었다는 우리나라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교회는 그동안 세상의 필요를 외면하며 예배당을 짓고 카페를 만드는 데만 온 정신을 쏟아 왔다. 교회는 가난한 자와 함께 삶을 나누는데 신경을 쓰지 못한 채 더 가지려 하고, 더 차지하는 데만 신경을 썼고, 기적적인 성장을 일으키는데 정력을 소비해 왔다. 그 결과 교회는 부흥했고 성장하는 것 같았지만, 반대로 세상은 더욱 타락하고 악해졌다. 결국 사람들도 서서히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

우리는 흔히 ‘왜 교인들이 이렇게 많은데 세상은 변하지 않는가’라며 자문한다. 그 대답은 간단하다. 교회가 비만증에 빠진 채 세상을 향한 관심과 나눔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전부를 내 놓았을 때 결코 크리스천들과 교회만을 위해 내놓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모든 시대와 모든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주셨다. 우리는 자칫 잘못하면 하나님의 이름 아래서 교회 스스로 이기적 집단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교인들에게 교회에 대한 헌신을 강조했다면, 교회 또한 세상에 대해서 헌신하고 희생할 용기를 가질 필요가 있다. 만약 교회가 나눔의 삶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면 우리 사회는 순식간에 풍요롭고 사랑이 넘치는 세상으로 변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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