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옥수동에 서면 압구정동이 보인다
(7) 옥수동에 서면 압구정동이 보인다
  • 호용한 목사(옥수중앙교회)
  • 승인 2019.04.18 12: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호용한 목사의 옥수동 소나타]

교회에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 교회 빚이 10억원이나 있다는 것을 알았다. 1998년 IMF사태 때 교회당 건축 과정에서 생긴 은행 대출금이었다.

‘어떻게 이 돈을 갚아 나갈까?’하는 걱정은 곧잘 “하나님, 왜 이러십니까? 속사정 살피지 않고, 하나님께서 가라시면 어디든 가겠다는 마음으로 이 교회에 부임했는데 왜 이런 부담감을 주십니까?”하는 질문으로 이어지곤 했다. 그런 생각은 강 건너에 압구정동이 있어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가끔씩 화려한 압구정 거리를 지나칠 때면 나도 저런 곳에서 목회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적어도 압구정동에 있는 교회라면 돈 걱정은 안 하겠다 싶었다. 그리고 그럴 때면 이런 생각이나 하려고 목사가 됐나 하는 자책이 들었고,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워 눈물이 났다. ‘옥수동에 서면 압구정동이 보인다’는 제목의 연극이 있던데, 부임한지 몇 개월 안됐던 나는 실제로 교회가 있는 옥수동 언덕에서 강 건너 압구정동을 바라보며 “왜 나를 이곳으로 부르셨나요?”하고 하나님께 물었다.
하나님은 그런 나에게 대답 대신 기회를 주셨다. 부임한 지 석 달 쯤 지났을 때였다. 우리 교회 한 권사님으로부터 팔순 감사예배 인도를 부탁받았다. 장충동의 한 호텔에서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데 권사님의 아들이 “독일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새로운 교회 부임하여 여러 가지로 힘드실 텐데 아이들 교육비에 보태 쓰시라”며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나는 으레 하는 거마비겠거니 여기고 별 생각 없이 받았다. 그런데 차에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 봉투를 열어보니 1000만 원짜리 수표 2장이 들어 있었다. 난생 처음 쥐어보는 큰돈에 집에 오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봉투를 앞에 놓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쩌면 하나님께서 나를 시험하시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가난한 동네로 부르시고, 가난한 사람들을 집단적으로 만나게 하신 데는 내가 모르는 각별한 계획이 있지 않을까? 우리 자녀들을 위해 쓰라고 주신 돈인데 그대로 쓴다 해도 뭐라 말할 사람은 없지만 하나님은 과연 무엇을 기뻐하실까? 거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하나님께서 이 큰 돈을 주신 이유와 계획이 어렴풋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3일 후 주일 당회를 소집하여 나는 2000만원이 든 봉투를 내 놓았다. “우리 동네와 교회에 어려운 이웃을 위한 장학금으로 사용하면 좋겠습니다. 가난할수록 자식들을 가르쳐야 하잖아요?” 갓 부임한 40대 젊은 목사의 이런 결정은 그 자리에 모인 장로님들의 가슴을 한꺼번에 흔들어 놓았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믿노라 말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아간다. 모든 판단과 말, 행동의 중심이 자신이고,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라면 죄를 짓는 것도,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도 얼마든지 자연스럽다.

나는 종종 TV에 중계되는 청문회를 보면서 ‘하늘나라 청문회’를 생각해 본다. 청문회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진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 대다수가 법적으로,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 국회의원들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그들의 심경을 한번 헤아려 보았다. 얼마나 괴롭고 후회가 많을까?

그러나 이 지상에서의 청문회는 기껏해야 감옥 가는 정도요, 명예가 깎기는 정도의 상처일 뿐이다. 궁극적으로 모든 인생이 예외 없이 서야 할 청문회가 있다. 죽음 다음에 오는 하늘나라 청문회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 지상에서의 삶에만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매긴다. 그러나 영원이란 순간의 삶과 비교할 수 없다. 마지막 날에 믿지 않는 자에게는 사망과 무서운 불의 심판이 있을 것이다. 그 하늘나라 청문회를 기억한다면 자신의 삶을 그냥 죄악과 이기심으로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2000만원을 장학금으로 내 놓을 수 있었던 것도 하늘나라 청문회를 알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나에게 가난한 이웃들을 생각나게 하셨고 결단을 요구하셨다. 내가 등 돌려 하나님의 목소리를 거부했다면 두고두고 후회했을 것이다. 그 때로부터 이 돈이 종자돈이 되어 지금까지 작은 이웃들과 나눈 돈이 모두 30억원, 장학금을 받은 대학생의 숫자는 350명이 넘는다. 100배 이상의 열매다. 모두가 위에서 떨어뜨려 주신 하나님의 은혜이다.

옥수동 언덕에서 한강 건너 압구정을 바라보며 느끼던 상실감. 주님은 나누고 베푸는 목회를 통해 그것을 넘어서도록 은혜 주셨다.
옥수동 언덕에서 한강 건너 압구정을 바라보며 느끼던 상실감. 주님은 나누고 베푸는 목회를 통해 그것을 넘어서도록 은혜 주셨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제호 : 기독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4266
  • 등록일 : 2016.12.12
  • 발행인 : 김종준
  • 편집인(사장) : 이순우
  • 편집국장 : 강석근
  • 개인정보관리·청소년보호책임자 : 우리나
  • 서울시 강남구 영동대로 330
  • 전화번호 : 02-559-5900 , 팩스:[편집국]02-557-9653, [광고부] (02)556-5875, 메일:[편집국] news@kidok.com, [광고부] ad@kidok.com
  • 기독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0 기독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kidok.com
ND소프트
SNS에서도 기독신문
인기뉴스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