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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와 총회교육 미래전략 수립을 위한 사랑방포럼-발제②]4차 산업혁명시대 총회교육 대응과 도전이규현 목사(은혜의동산교회)
  • 정리=정형권 기자
  • 승인 2017.11.17 09:23
  • 호수 2128

흔들림 없이 복음교육 강화하라
바른 기독교 정체성 무장한 ‘디지털 용사’ 양성 위한 전인교육 중요

▲ 이규현 목사 (은혜의동산교회)

4차 산업혁명은 개인에게 최적화 된 자동차, 개인에게 최적화된 집을 갖게 할 것이다. 이동의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질 것이고 여러 가지 유전적 질병을 해결할 길도 생기게 될 것이다. 전 세계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어서 그야말로 전 세계를 하나의 마을이 되게 할 것이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에는 이런 빛만 있는 게 아니다. 거기에는 분명 매우 어두운 그림자도 같이 드리워져 있음을 보아야 한다. 제일 심각한 것은 부의 양극화가 매우 심화된다는 것이다. 일자리에서 내몰린 사람들은 빈궁한 삶을 이어가게 되지만 기계로 그 일을 대신하는 자본가는 엄청난 부를 축적하게 될 것이다.

인간 수명의 연장으로 노인 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를 것이다. 점점 개인화 되고 디지털화 되어 가는 세상에서 인간미는 사라지고 점점 더 심성이 황폐화될 위험도 있다.

기계의 도움으로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기에 공동체성이 약화 되고 고립된 삶을 살면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이 가지고 올 빛의 영역을 활용할 준비를 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4차 산업혁명의 어두운 그림자를 벗겨낼 대안을 준비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총회는 기독교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첫째, 기독교교육의 철학을 확립하고, 교리교육을 강화하는 ‘복음교육’을 해야 한다. 1900년도 이후 자리 잡은 현대의 교육과정은 산업혁명에 따른 직장에서 일할 사람을 키워내는 구조를 갖고 있다. 따라서 현재 교육철학은 실용주의이다. 써먹을 내용을 배우는 거다.

그러나 복음은 당장 써먹을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총회가 교육과정을 만들 때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교재를 만드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독교교육철학을 확립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교육방법 보다 중요한 문제는 왜 가르쳐야 하는가를 먼저 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세계에서는 어제의 진리가 오늘 버림받는다. 거기서 중요한 건 ‘새로운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 속에는 균형 감각이 있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절대 진리가 없는 세상에 살다 보면 절대 진리에 대한 갈구, 변하지 않는 진리에 대한 갈망이 생겨나게 되어 있다. 이때 영원히 흔들리지 않고 변하지 않을 성경적 진리를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 제일 대표적인 것은 교리교육이다. 단, 가르치는 방법은 좀 더 발전된 방식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둘째, ‘공동체 교육’을 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여러 폐단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공동체의 파괴이다. 경제적으로는 지금보다 훨씬 더 심화된 양극화가 진행될 것이다. 1차 산업혁명 이후 생겨난 경제적 불평등이 공산주의를 태동하게 만들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교회는 오히려 소외되고 힘든 사람들을 한 가족으로 품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여기에 초점을 맞춘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교재를 만들어 내야 한다.

아울러 생물학의 발전으로 인해 수명이 연장되면서 노인 문제가 아주 심각하게 떠오를 것이다. 수입이 없이 수명이 길어진 노인들은 사회에서 해결하기 힘든 큰 문제의 핵심으로 떠오를 것이다. 이때 이들을 부모와 같이 섬기고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세워가야 한다. 한 마디로 공동체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셋째, ‘기독교윤리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생명공학의 발달로 유전자 가위가 등장하고 유전자를 편집하는가 하면 배아줄기 세포를 만들어내는 등 기독교윤리와 충돌하는 일들이 많이 발생할 것이다. 심지어 사람의 장기를 얻기 위해서 다른 동물과 이종 교배하는 실험도 진행되고 있다. 이럴 때 기독교윤리교육이 정립되어 있지 않으면 크리스천이 어디까지 용납할 수 있는지 큰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로봇이 사람의 역할을 대신하면서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도 있을 것이다. 부모가 감당해야 할 육아를 기계에게 맡기는 것이 타당한지, 사람의 모양을 한 로봇과 성관계를 갖는 게 타당한지 등 지금 우리가 예상치 못하는 수많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여기에 대응할 수 있는 기독교윤리교육이 꼭 이루어져야 한다.

넷째, ‘전인교육’ 즉 지, 정, 의, 영성 영역을 강화시키는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디지털 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따뜻한 정이 흐르는 아날로그적 감성에 대한 향수가 생겨난다. 이 틈을 타고 들어오는 것이 거짓 영성이다. 기계 문명이 발전한 선진국에서 뉴에이지가 흥행하는 이유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따라서 교회는 단순한 지식 교육을 뛰어 넘어야 한다. 왜냐하면 지성의 최정상에는 알파고와 같은 로봇이 서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감동이 있고 영성이 있는 전인교육이 필요하다.

다셋째, ‘디지털 용사’를 양성해야 한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서 집에서 기른 318명을 데리고 갔듯이 디지털 용사를 양성해야 한다. 단지 기술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신앙과 바른 신학을 겸비한 학자, 기술자를 양성해야 한다.

한국에 기독교가 처음 들어왔을 때 크리스천들은 교육, 문화, 독립운동, 의료 등 거의 모든 분야를 선도했다. 그러나 지금은 급변하는 세상을 넋 놓고 구경하거나 그 뒤를 따라가기 바쁘다. 이제 우리 총회는 미리 다음세대를 준비시키고 키워야 한다. 로마가 닦은 길로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했듯이 4차 산업혁명이 가져다 준 밝은 빛을 활용하게 해야 한다. 동시에 그 어두운 그림자를 잘 파악하고 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정리=정형권 기자  hkjung@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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