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참된 자유로 상상력 활짝 열자 지금 한국교회는 전래 없이 강력한 문화적 도전 앞에 서있습니다. 급속도로 변화하는 사회문화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영향력을 잃은 탓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지난 날 어느 때보다 기독교적 문화변혁의 비전이 절실합니다. 문화의 본질개혁주의는 세상을 개발하고 돌보라는 창조주의 문화명령을 강조합니다. 문화의 본질을 놀이, 상징, 축제의 세 요소로 보고 종교와 연관을 지운 이론이 있습니다. 놀이는 노동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인간다운 추구이므로 자발적이며 자유로운 섬김인 종교와 밀접하다는 것입니다. 문
다음세대 위한 돌봄과 보존은 사명 학생들은 제 전화기를 구석기시대 유물로 취급합니다. 망가지지 않는다면 주님 오실 날까지 쓸 작정이라 했더니 비명이 터져 나왔습니다. 물론 진담이었습니다. 불편함이 없는데 굳이 바꿔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니까요. 문제는 공짜로 바꿔주겠다는 전화회사들의 성화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걸려오는데 이젠 번호만 봐도 무슨 전화인지 알아차릴 정도입니다. 업데이트와 업그레이드요즘은 온통 업그레이드와 업데이트가 유행입니다. 소프트웨어는 말할 것도 없고 조금만 고치면 오래 쓸 수 있는 물건을 버릴 수밖에 없는 구
삭막한 긴장 털고 공동체 속으로 한국에 여행을 왔던 프랑스 지리학자는 아파트가 도시를 뒤덮고 논밭 한가운데까지 들어선 모습에 충격을 받아 10년간 공부 끝에 이라는 책을 냈습니다. 우리 학자들도 , 같은 연구물을 냈습니다. 이런 연구들은 아파트가 우리 사회에서 가진 문화적 함의가 무엇인지 잘 보여줍니다. 아파트의 확산우리나라의 총 주택 약 1767만 채의 52.7%인 936만 5000채가 아파트라고 합니다. 신축주택의 90%가 아파트이므로 비율은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이는 특이한
절약 넘어 나눔이 진정한 탈물질 세계는 지금 탈물질주의 사회로 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삶이 여유로운 선진사회는 경제적 안정과 번영에 집착하던 것에서 벗어나 개인적 자유와 성취를 우선하는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탈물질주의 지수는 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낮다고 합니다. 물질 세상성경과 기독교는 물질을 죄악시하거나 배격하지 않습니다. 물질은 선하신 하나님께서 “보시기 좋았더라”하신 피조물입니다. 구원의 완성인 새하늘과 새땅 역시 물질적 세계입니다. 우리는 몸으로 다시 살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께
전원 스위치를 끄면 생각은 ‘ON’ 급히 조교를 찾다가 연락이 안되면 즉시 문자를 보냅니다. 조교는 수업 중에도 성실히 답을 보내옵니다. 심지어 교실에서 나와 전화를 하기도 합니다. 신속한 연락이 가능한 세상이니 정말 편합니다. 하지만 제 수업에서 학생이 문자를 날리거나 전화를 받으러 나갔다면 혼을 냈을 겁니다. 스스로도 이율배반이라는 생각이 들어 민망합니다. 기술의 본질기술은 인간의 특성입니다. 동물 중에도 도구를 만들고 나름대로 기술을 구사하는 경우가 있긴 합니다. 거미는 줄을 쳐 먹이를 잡고 원숭이는 돌로 조개를 깨고 막대기를
드라마 가치, ‘막장’과 바꾸지 말아야 대한민국은 드라마 천국입니다. 외국 프로그램을 누르고 안방극장을 평정한 우리 드라마는 세계로도 뻗어나가 한류의 중심축이 되었습니다. 적어도 텔레비전에서는 할리우드도 맥을 못 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방송사마다 뉴스나 교양프로를 제쳐 놓고 드라마 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이런 추세 속에 이른바 ‘막장’ 드라마가 창궐하는 것은 더 큰 일입니다. 드라마의 가치드라마는 진실을 탐사하는 발견의 기술입니다. 예술이 모두 그렇지만 특히 드라마는 꿈을 꾸게 하고 삶의 비전을 줍니
기독교 한류문화 바른 정착 힘써야 100여 년 전 선교사들은 우리를 “은자의 나라(hermit nation)”라 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세계의 변방이 아닙니다. 미국 다음으로 선교사를 많이 파송한 선교 대국이 되었습니다. 올림픽과 월드컵에 이어 아시안게임을 세 번이나 개최하고 부동의 종합 2위를 지키고 있는 스포츠 강국이기도 합니다. 국제무역과 경제, 기술과 학문, 예술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한국문화와 한류우리나라는 5000년의 역사를 통해 주변국들과 분명히 구분되는 고유한 문화를 일구어 왔습니다. 한복과 한옥,
검색자여, 기독교적 분별력을 갖춰라 모르는 건 뭐든 ‘선한 이웃, 네이버’에게 물으라는 말에 ‘다음’이 “청춘이여 검색하라”는 광고로 응수하는 중입니다. “난 아직도 라마의 석양을 잊을 수 없어!”라는 말에 “에이, 라마는 동물이죠”라는 면박이 날아듭니다. 결론은 모르면 “다음 검색하면 되지”입니다. 곧바로 페루 수도는 ‘리마’임이 밝혀지니까요. 검색엔진의 힘검색이 인터넷에서 가장 유용한 기능임은 말할 나위 없습니다. 구글, 네이버, 빙, 다음 같은 검색엔진은 전세계 컴퓨터에 ‘축적되고 정리되어 있는… 정보를 찾아내어
하나님만이 우리의 영원한 본향 지난 추석, 민족의 대이동을 보면서 “공항에 가면 고향에 온 것 같이 느낀다”며 쓸쓸히 웃던 지인이 생각났습니다. 그는 네덜란드계 혼혈인 미국 선교사 자녀로 어려서부터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 홍콩 등지를 떠돌았고 지금은 미시간에 삽니다. 그만큼은 아니라도 지금 우리는 모두 떠도는 삶에 젖어 있습니다. 고향에 살아도 급변하는 환경 탓에 삶이 낯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신(新)유목민 문화유동성이 커진 오늘날 우리는 모두 고향을 잃었습니다. 한 작가의 말처럼 성공을 위해 위로 올라가고 여차하면 떠나는데
폭력 조장하는 건 문화 아닌 야만 윤 일병 폭행치사사건은 우리 사회의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습니다. 어떻게 이 시대의 평범한 젊은이들이 동료를 그토록 잔혹하게 때려 숨지게 할 수 있는지 놀라울 뿐입니다. 가해자들 중엔 고위층 자제가 끼어있었다는 사실은 더 큰 충격을 던집니다. 이 사건은 군대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폭력적인 문화에 젖어있는 결과가 아닐지 심각하게 돌아보게 만듭니다.누가 괴물을 만드는가?15년 전 미국 콜로라도 덴버 교외의 한적한 마을 고등학교에서 총격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자동소총을 든 두 학생이 30여 명의
사랑은 나누며 신앙은 바로 세우는 기회로 민족의 최대 명절 한가위를 맞았습니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았으면 하는 일년 중에 가장 좋은 절기입니다. 가족이 모두 서울에 사는 저는 시내 교통이 한산해 좋고 밀린 일들을 할 수 있는 짬을 얻어 더 즐겁습니다. 무엇보다도 반가운 이들을 만날 수 있어 기쁩니다. 명절이 노는 날이 되어버린 지금, 제사를 지내지 않는 성도들은 절기의 의미를 살리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명절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법으로 보낼 길은 무엇일까요?감사의 절기첫째가 하나님 은혜에 대한 감사 예배입니다. 가족이
두려움 이기는 근원은 하나님 사랑 여름이 되면 납량을 앞세운 공포물이 범람하곤 합니다. 나이든 이들 중엔 이나 같은 공포물을 접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인터넷에는 그보다 몇 십 배 더 엽기적이며 잔혹한 영상을 어린이들에게까지 무차별로 공급하는 사이트가 허다합니다. 사실적 영상과 음향이 결합된 멀티미디어의 공포물은 무시무시한 경험을 뇌리에 깊이 박아 넣습니다. 직접 베고 찌르고 머리에 총을 쏠 수 있는 게임들은 더욱 심각합니다.공포 문화의 본질공포물이 모두 악한 것은 아닙니다. 나
절제는 은혜, 감사하며 누리세요 세상의 아픔은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해 한탄하거나 가진 것을 지키려고 애쓰는 것 중 하나에서 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거리에서 어린애 둘이 동네가 떠나가라 울며 싸웁니다. 형이 백 원짜리 동전을 주웠는데 동생이 그걸 뺏으려다 울자, 형은 안 주려고 더 크게 우는 것이랍니다. 그 모습을 본 아버지가 이렇게 탄식했답니다. “애나 어른이나 다 똑같아!”오직 필요한 양식으로우리 사회도 같은 문제로 많은 사회적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국민 대다수가 절대 빈곤을 벗어난 오늘날, 배고픔이 아니라 배아픔의 문제가 심각
창조질서의 리듬을 따르세요 더위와 일에 지친 몸과 마음을 잠시나마 쉴 수 있는 휴가철이 왔습니다. 휴가 계획은 세우셨는지요? 어떤 이들은 휴가철이면 도리어 머리가 아프다고 호소합니다. 평소 직장에 매여 있던 가장들은 가족들을 위해 무엇인가 이벤트로 봉사해야만 한다는 부담에 눌립니다. 요즘처럼 경제적 여유가 없는 때엔 선택의 여지가 좁아지니 스트레스가 훨씬 심할 수 있습니다. 휴가마저 일이 된다면 정말 슬픈 일입니다.일과 휴식라는 책을 쓴 조셉 피이퍼는 여가란 단지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삶
창조질서의 축복을 지켜가세요 ▲ 신국원 교수 어느 식당이 이렇게 광고를 했습니다. “음식값은 이미 당신의 할아버지가 냈으니 마음껏 공짜로 드세요.” 한 손님이 실컷 먹고 문을 나서는데 주인이 부르더랍니다. “돈을 내고 가셔야지요.” “할아버지가 냈다면서요?” “물론입니다! 이제 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