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거룩한 사명 감당할 때 세상이 하나님 영광으로 가득찹니다“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성전을 향해 주의 눈이 주야로 보시오며 주의 종이 이 곳을 향해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왕상 8:29)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난 후 거룩한 성전의 기능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교회는 거룩한 곳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영광을 돌리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이 교회를 통해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하나님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나는 것이 부흥입니다“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합3:2) 부흥에는 반드시 방향 전환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회개라고 하는데, 회개는 부흥과 맞물려 있습니다. 마음을 돌이켜 돌아올 때 보통 ‘주’(Lord)라는 단어가 함께 나옵니다. 다시 말해서 회개는 악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특히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의 귀환은 하나님 언약에로의 복귀
상처 너머의 섭리 인정하며 하나님의 뜻 이루는 은혜 누리자“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창 45:5)삶은 상처를 받고, 그 상처를 치유하며 살아가는 여정입니다. 상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랑하기에 기대하고, 기대하기에 실망하고, 그 실망을 넘어 아픈 기억이 우리의 상처로 남아 삶에 고통의 그림자를 깊게 드리우곤 합니다. 또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느 날 문득 삶의 순간과 구조적 만남 속에서 씻
거친 풍랑 위 걸을 때 주님 바라보는 것이 믿음이고 능력입니다“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마 14:29절)삶은 때로 고통과 아픔의 시련과 슬픔의 강을 건너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우리 인생에 괴롭고 힘든 기억과 추억으로만 남지는 않습니다. 황무지에 떨어져도 망하라는 뜻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 황무지에서 꽃을 피우라는 은혜로 받아들여질 때, 인생은 또 다른 삶의 장면을 맞이하게 됩니다.인생의 두려움, 삶의 지루함과 흔들림을 바라보며 우리는 오히려 그 뒤편에서 우리를
경험에 갇힌 믿음 딛고 하나님 영광 체험하는 전파자 됩시다“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요 11:40)2022년 새해를 맞이하여 살아 역사하시는 주님의 말씀이 죽은 지 나흘이 되어 소망이 끊긴 나사로를 무덤에서 나오게 하시고 풀어놓아 다니게 하시는 은총으로 임하신 것처럼, 성도님들의 마음과 삶에도 역사하시기를 소원합니다.오늘 본문에는 믿음이 있어도 그 믿음의 정도가 매우 제한적인 한계를 가진 인간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분명히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적 전쟁 승리 비결은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삼상 7:9)올해 가을에 한국을 방문해 교회 안팎의 현실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사회적으로 받는 다양한 오해, 교회에 대한 잘못된 시각, 기독교를 향한 편파적인 보도에 억울한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교회가 직면한 내부의 현실도 마음을 무겁게 하기는 마찬가집니다. 다음세대가 교회를 이탈하고, 인구절벽이란 단어가 현실로 다가온 한국사회, 그리고
‘앞이야기’ 아닌 평안 누릴 ‘뒷이야기’ 믿음으로 승리의 삶 살자“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눅 2:4)‘뒷이야기’라는 말은 그 자체로 구미가 당깁니다. 앞에서 들었던 이야기에서는 알려지지 않았던 진짜 흥미로운 무엇인가가 있을 거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탄생에도 ‘앞이야기’와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님 탄생의 앞이야기는 로마황제 가이사 아구스도의 호적명령으로 시작됩니다. 오늘날까지도 로마가 유럽의 어머니로 일컬어질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남기고 있는
영원의 연장선상 ‘오늘’에서 영원과 연결된 가치 찾아 즐거움 누리자“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 3:11)‘시간’이나 ‘때’에 대한 격언들을 보면 대부분 시간이 얼마나 빠른지, 얼마나 아껴 써야 할 선물인지에 초점을 맞춥니다. 하지만 시간에 관한 하나님의 파격적인 통찰은 하루도 1000년 같고, 1000년도 하루 같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시간은 ‘길다’ ‘짧다’가 아니라, 오늘
허무한 인생 밑바닥서 창조자의 빛 발견할 때 행복합니다“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전 2:24)우리는 “그때 눈치 보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했더라면 좋았을 걸”이라며 후회하지만, 반대로 “그때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말았어야 했다”며 후회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모순이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제 경우에는 남 눈치 안 보고 잘한 것들 중 으뜸은 ‘교회 개척’이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안 되었던 것들 중 으뜸은 중국선교사
주님이 보이신 ‘나를 내어주는 사랑’이 영원한 행복입니다“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 오래 전 세대도 이미 있었느니라”(전 1:10절)이 세상을 살면서 열심히 살 수 있는 이유는 ‘행복은 나 하기 나름’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 믿음이 흔들리면 삶의 터전도 흔들립니다. 그런데 나보다 더 신실한 분들 중 힘들게 사는 분들이 있고, 나보다 훨씬 못된 것 같은 자들 중에 평안을 누리는 걸 보게 됩니다. 그러면 참으로 오늘 내가 누리는 평안과 고난이 전적으로 나에 의한 것인지, 행복이 나 하기 나름
주님 오실 때까지 믿음 위에 서서 인내하며 살아갑시다“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눅 21:19)오늘 말씀은 예루살렘 성전에 관련된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들(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제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그 아름다운 돌과 헌물로 꾸며진 것’을, 곧 성전의 아름다움과 화려함을 말했습니다. 이를 듣고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눅 21:6) 제자들은 성전의 아름답고 좋은 겉모양을 보고 있지만, 주님은 언젠가는 돌 위에 돌 하
생명과 삶 하나님께 드리며 믿음의 눈으로 바라봅시다“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눅 21:4)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로서 크게 두 가지 사역을 행하셨습니다. 첫째, 하나님께 드려지는 ‘어린 양’으로서 몸소 우리처럼 육신을 입고 오셔서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시는, 그래서 우리 죄를 속량하시어 ‘의롭다 칭하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칭의’라고 부릅니다. 둘째, 우리를 향해
인생의 우선순위는 하나님 나라와 영원한 부활입니다“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 (눅 20:38)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시는 장면입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이 시험을 어디서 어떻게 받는지를 보여주시면서, 교회의 몸 된 우리도 어디서 어떤 시험을 받을지를 예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먼저 예수님은 어디서, 누구로부터 시험을 받고 계십니까?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 그리고 사두개인들로부터 시험을 받았습니다.
주님이 주신 직분과 권위, 하나님 영광 위해 사용합시다“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내게 말하라.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눅 20:3~4)예수님께서 성전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자 심히 불편해하고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여 가까이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백성에게 무언가를 가르칠 수 있는 ‘자격과 권위’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백성의 인기
복음 사수를 위해 기꺼이 고난 받을 준비가 되었습니까“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딤후 4:17)일생을 주님의 일을 위해 달려온 사도 바울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바울이 순교하기 전 그해 겨울은 추웠나 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속히 오라”고 하면서, “네가 올 때에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책을 가지고 오라고 합니다. 아마도 바울이 체포될 당시에 자신의 겉옷과 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