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역사 이뤄가는 교회와 성도들“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엡 4:16) 주님이 디자인하신 교회는 주님에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하는 믿음을 갖고, 교회 공동체가 세상을 향해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권세를 행사하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며 거룩함으로 승리하는 공동체입니다.(마 16:16~19) 교회는 하나 됨의 공동체입니다.교회는 하나님 부르심으로 세워진 공동체성도 한 명 한 명은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4) 성경은 사람의 존재가 완성되는 상태를 ‘천국’으로 묘사합니다. 천국은 사람의 존재가 완성돼 영원히 살아가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사람은 불완전함이 없어지고 완전함이 충만한 상태로 있게 됩니다. 그렇기에 천국은 너무나도 좋은 곳입니다.C.S.루이스는 천국의 영광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현재 우리는 그 세계의 바깥, 그 문의 바깥쪽에 있습니다. 우리는 아침의 신선함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완전함이란 무엇인가요? 사전적으로는 ‘필요한 것이 모두 갖추어져 모자람이나 흠이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같은 의미라면 사람은 누구도 완전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자라는 동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성장의 과정 속에서 완전함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그렇다면 불완전한 사람과 또 다른 불완전한 사람이 힘을 합치면 완전해질 수 있을까요
크고 비밀한 은혜의 경륜 이뤄가는 교회와 성도“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항상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엡 3:6) 인류를 향하신 사랑이 하나님의 품 속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류를 위한 구원계획으로 구체화 됩니다. 하나님은 그 계획을 인류 역사 속에서 차근차근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구원계획을 이뤄가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인으로서 세상을 경영하십니다. 그것을 경륜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인류를 위한 구원계획은 은혜의 경륜입니다. 인류의 구원
예수가 열어 놓은 화평의 길 걷는 그리스도인“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엡 2:14) 오늘날 인류의 발달과 세계의 운동은 마치 시골의 한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보입니다. 일명 지구촌 시대입니다. 교통, 정보통신 등 각종 기술의 발달로 지구가 하나의 촌락(Village)처럼 가까워졌을 뿐만 아니라 지구에서 살아가는 인류 모두가 이웃이고 공동운명체로 다가왔습니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누구보다도 온 세상 사람을 품고 더불어 화평을 이루며 살아가는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창 1:31) 여러분은 자신의 존재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우리가 만약 하나님을 거부한다면, 우리는 ‘나’라는 존재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까요?어떤 사람이 자신의 존재에 대한 만족감과 희망이 없어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져야 할까요? 만약 하나님의 존재가 없다면, 자살한 사람은 그 자체로 ‘자연적인 의미’만 남길 것입니다.무신론자는 의미를 부여한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 2:16) 어떤 과학자들에 의하면, 앞으로 인류는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존재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에 의하면, 죽음을 일으키는 요소들을 하나씩 제거한 후에 인류의 수명을 계속해서 연장하는 방법이 2200년쯤에 실현될 것이라고 합니다.하지만 이렇게
만물을 회복시킨 예수 따르는 제자로 삽시다“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엡 1:20)할렐루야!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죄 없으신 거룩하신 성자 하나님이시나 우리를 사랑하셔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일생을 통한 삶의 방향은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누군가나 어떤 권력에게 생명을 빼앗겨서 죽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스스로 생명을 버리
유일한 구원자, 그리스도 부활을 선포합시다“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막 16:6)20세기를 대표하는 복음전도자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우리는 성경을 변호하기보다 더 많이 선포해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독생자며 인류의 유일한 구원자라는 사실을 선포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케리그마’라고 합니다. 케리그마는 본래 ‘전파하다’ ‘선포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헬라어로 신약성경에 약 61회 사용됐습니다. 케리그마는 이미 믿는 자들에게 그리스도인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지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행 9:3~5)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고, 계시는 ‘사람의 인생’ 속에서 성취됩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인생에서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들이 있을까요?소설가이자 철학자로서 널리 알려진 C.S. 루이스는 무신론에서 유신론으로 신념을 바꾼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그는 저서
“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상의 모든 거민들은 그를 경외할지어다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시 33:8~9)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에는 수많은 예언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구약시대 여러 선지자들의 예언입니다.여러분, 성경에 기록된 예언이 사실일까요? 그 예언은 모두 성취됐을까요? 그리고 아직 성취되지 않은 예언은 미래에 확실히 성취될까요?‘성취’란 ‘목적한 바를 이루었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됐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죽는 순간에 자신과 관련
아빠 아버지께 순복의 기도를 올립시다“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막 14:36) 신학을 ‘인식론적 신학’과 ‘하나님의 주권적 신학’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자는 인간의 이성과 경험을 우선으로 합니다. 그러니 처음에는 이해가 쉽고 공감이 갑니다. 하지만 인간의 이성과 오성을 초월하는 문제가 생기면 해석이 어려워집니다. ‘왜 사랑의 하나님이 인간에게 고통을 주시나?’ 등의 문제를 이성과 경험의 범주 안에서 해석하는
헌신의 중심에 누가 있습니까?“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막 14:3)오늘 본문에 세 부류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1~2절에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나오는데 이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음모를 꾀합니다. 3~9절에 등장하는 한 여인은 옥합을 깨트려 예수님에게 붓습니다. 10~11절에는 제자 가룟 유다가 나오는데 예수님을 팔려고 거래하면서 배신을 합니다. 마가는 샌드위치 구조를 좋아하는데 한 여인의 헌신을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벧전 3:15) ‘변증’은 헬라어 ‘아폴로기아’에서 유래한 말로서, ‘방어’ 혹은 ‘변호’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안셀무스는 에서 ‘하나님’을 다음과 같이 변증했습니다.“①하나님은 가장 위대한 존재이다. ②가장 위대하다는 것은 어떠한 부족함도 있을 수 없다. ③만일 어떤 것이 사람의 정신에만 존재한다면, 이는 존재가 부족함을 가진 것이다. ④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의 정신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존재한다.”안셀무스는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 (신32:4) 여러분, 왜 우리는 정의를 추구하고, 정의로운 행동을 좋아하는 걸까요? 왜 우리는 불의에 항거하고, 저항하려고 할까요? 그 이유는 우리가 ‘도덕적 존재’로 창조됐기 때문입니다.사람에게 도덕은 태생적입니다. 만약 사회현상으로서 도덕이 생겨난 것이라면, 그 도덕은 진화의 과정 속에서 바뀔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내면에 있는 ‘선과 악의 개념’이라든가 ‘정의의 개념’은 바뀌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