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3월에서 4월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부활주일을 맞는다. 부활주일은 춘분 지난 만월 후 첫 주일이다. 3월 31일 부활주일을 맞으며, 매년 이어지는 절기로만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교회는 2000년 전 주님의 부활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을 삶에서 구체화해야 한다. 진정한 부활 신앙을 지니고 있는지, 그것을 실존적으로 드러내는지 점검해야 한다.

주님의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은 그 증인이 되었다. 그들은 세상에서의 환란뿐 아니라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않음을 통해 부활신앙을 증명한 것이다. 주님 나라를 위해 그 신앙을 삶에 갈아 넣은 것이다.

그것이 오늘의 한국교회도 만들었다. 조선 땅에 들어왔던 선교사들은 죽음을 기꺼이 짊어졌다. 1866년 토마스 선교사의 첫 순교가 그랬고 그 뒤를 잇는 수많은 선교사의 헌신이 그러하다. 부활신앙이 아니었다면 조선 땅에 자신의 생명을 드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신앙을 이어가는 한국교회는 기꺼이 생명을 드리는 순교자들이 등장하면서 열매를 맺었다. 주기철 목사를 비롯한 그들은 부활의 신앙이 얼마나 놀랍고 위대한지를 보여줬다. 총칼의 위협을 당할 때도 순교신앙을 분명히 드러냈다. 그러나 배부르고 편안한 지금, 교회는 그것을 제대로 잇고 있는지 답해야 한다. 부활의 전제인 ‘죽음’은 외면한 채, 더 잘 살고 더 높아지고 더 많이 갖고 싶은 욕망으로 부활신앙을 짓밟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거대한 예배당, 엄청난 재력 그리고 많은 교인 수를 가지고 경쟁하는 것으로는 부활신앙을 입증할 수 없다. 왜 모이며 왜 부흥하려는지 답해야 한다. 그리고 신앙의 선진들이 그러했듯이 초라한 예배당에서도 천국을 드러내야 할 것이다. 주님께서 정말 원하시는 것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제자의 전형으로서의 교회이다. 교회는 무엇으로 부활신앙을 증명하고 있는가? 1885년 부활주일 아침, 두 선교사가 제물포에 입항한 지 어언 140년이다. 그 시간의 흐름이, 차곡차곡 쌓인 부활신앙의 흔적이어야 할 텐데 누구라서 장담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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