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총회교회자립개발원에서 미래자립교회 목회자를 대상으로 ‘자립사례 아이디어 공모전’을 열었다. 급변하는 사회와 목회환경 속에서 새로운 교회 개척 및 자립 아이디어를 찾고, 이를 총회 산하 교회와 목회자들에게 소개하려는 목적이었다. 공모전은 절반의 성공이었다. 공모전을 통해 많은 목회자들이 환경에 굴하지 않고 복음의 열정으로 사역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 기뻤다. 하지만 미래 사회와 목회환경을 대비하는 아이디어를 찾기 힘들었다.

문득 최전선에서 사역하는 목회자들에게 ‘새로운 시대에 맞는 아이디어’를 요구하는 것이 가능한가 의문이 들었다. 목양에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고, 현장의 아이디어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현장 목회자들은 자신의 아이디어가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가’를 판단하기 어렵다. 목회자의 아이디어를 신학자와 전문가들이 함께 검토하면, 새로운 시대에 적용할 수 있는 개척 및 자립 아이디어로 구체화할 수 있다. 아이디어 차원을 넘어 정책이 될 수 있고, 목회프로그램 또는 실천신학이 될 수도 있다.

결국 아이디어를 가진 목회자는 신학자와 전문가들을 만나야 한다. 그 만남의 장을 총회교회자립개발원에서 만들어 주어야 했다. 만남의 자리를 통해 아이디어를 낸 목회자는 사역을 점검받고 보다 나은 방안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신학자와 전문가들은 변화하는 목회현장을 파악하고, 총회와 신학생을 위한 미래 목회 방향을 가늠할 수 있었을 것이다. ‘총회’가 아니면 누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아쉬움은 ‘총회’의 이름 아래 있는 상비부와 위원회와 기관들에서도 느낀다. 총회 이름으로 열리는 수많은 행사와 수련회들에서 절감한다. 그런 행사들은 총회가 해야 할 일이 아니고, 총회의 본질적인 역할도 아니다.

생각해 보니 우리는 총회의 역할과 임무에 대해 제대로 논의한 적도 없는 듯하다. 총회의 정치적 역할에만 집중했을 뿐, 사역의 측면에서 깊이 고민하지 않은 듯하다. 그래서 총회는 교회와 목회현장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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