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호 목사(재송제일교회)

신앙의 경주에서 끝까지 승리하십시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전 9:25)

정남호 목사(재송제일교회)
정남호 목사(재송제일교회)

올림픽을 통해 비록 내가 경기자는 아니지만 금메달의 영광이 어떤 건가를 봅니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 마치 내가 금메달을 딴 것같이 기쁩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은 말 많고 문제가 많은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 그들이 익숙했던 경기자의 모습을 하나의 경주하는 것에 비유해 교훈합니다. 당시 고린도는 올림픽이 열렸던 아테네와 인접해 있었고 올림픽 다음 가는 큰 경기가 일 년에 두 번씩 있었습니다. 따라서 고린도 교인들은 경기자와 경기하는 모습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운동선수의 예를 들어 구원의 완성을 목표해 운동선수처럼 여러 가지 자세를 갖추어 달려갈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같이 달음질하라”(24절)라고 말합니다. 이는 육상경기를 의미합니다. 열심히 달리지만 1등은 오직 한 명뿐이라는 식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최선을 다하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경주에서의 평가 기준입니다. 다른 경주자가 어떻게 하든지 자기의 목표를 분명히 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3장 14절에서는 “푯대를 향하여…좇아 가노라”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신앙 경주는 다른 경주자가 어떠하든지 간에 절대적으로 하나님께서 평가해서 상을 주실 것입니다. 씨를 뿌리는 자는 추수하기 위하여 씨를 뿌리지, 잡초를 얻으려고 씨를 뿌리지는 않습니다. 이처럼 신앙생활은 다른 사람과 비교해 내가 좀 더 의롭고 더 큰 상을 받고 하는 것의 문제가 아닙니다. 목표의식이 분명치 않거나 잘못된 목표는 비참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우리가 가진 신앙의 분명한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믿음으로 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복음을 위장한 잘못된 목표를 가지고 신앙 아닌 신앙생활을 하는 자가 많습니다. 그 한 예로 우리 주변에 기독교적인 문화는 있으나 복음이 없는 것입니다. 늘 교회에 모이고 찬양하며 활동하고 있지만 그 중심에 복음이 없기 때문에 무엇을 위해 신앙생활하고 있는지 그 목적을 모르는 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경기에 참가하는 선수는 상을 얻어야 합니다. 그 상을 얻음에 있어 신앙의 경주는 모두가 일등을 할 수 있는 절대적인 평가입니다. 오직 우리는 최선을 다해 분명한 목적인 구원을 이뤄야 합니다.

절제를 통한 자기 훈련

운동선수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과도하게 먹거나 마시지도 않고 육체적 방종도 피해야 합니다. 때로는 통제된 곳에서 자신과 싸우며 환경과도 싸웁니다. 이러한 자기 관리와 피나는 훈련을 통해서 승리를 쟁취합니다. 대학에서 수석의 영광을 차지한 학생들에게 그 비결을 물으면 한결같이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겼다고 말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실패는 자신과의 싸움, 자기관리의 실패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자신의 절제와 함께 철저한 훈련이 필요합니다. 권투 경기에서 아마추어 선수들은 3회전까지 싸우고 지칩니다. 그러나 프로 선수들은 15회전까지 싸웁니다. 훈련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보게 됩니다. 

우리는 운동선수가 금메달의 영광을 얻을 때 나 자신도 그렇게 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특수한 사실을 아무런 노력이나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일반화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승리와 영광 뒤에는 분명히 그만큼의 자기 관리를 통한 훈련이 있었을 것입니다. 신앙의 경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속과 죄악된 삶 속에서 자신을 그리스도인으로 관리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복종시켜 죄악의 경향성을 짓밟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출세지향적, 향락적인 문화가 판을 치는 이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알며 환경을 알며 인간의 욕심을 알아 그것들과 싸우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영적인 진보에 방해가 되는 그 어떤 것이든지 자기를 다스리며 훈련하는 가운데 제거해야 합니다. 나쁜 생각이나 나쁜 습관 같은, 경주하는 데 무거운 짐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승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분명한 방향감각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26절)라고 말합니다. 단거리를 질주하는 선수는 결승점을 향해 전력 질주합니다. 마라톤 선수들은 경기에서 달려야 할 코스를 잘 살펴서 전략을 세웁니다. 공부를 잘하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공부의 목표에 따라 과목마다 방식이 달라야 합니다. 이처럼 분명한 목적에 따라 방향을 바로잡아야만 합니다. 어떤 경치를 보면서 시인과 설교가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 표현하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생활도 신앙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우리는 분명한 목표 아래 명확한 방향을 좇아가야 합니다. 우리 신앙의 푯대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신앙의 목표라면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주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하에 잘못된 신앙의 방향으로 가는 자가 너무 많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크게 외치지만 실상은 전혀 다른 것을 목표로 나아갑니다. 우리의 신앙의 방향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한 구원, 이것만이 우리 신앙의 유일한 목표며 방향입니다.

경기 규칙대로

바울은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딤후 2:5)라고 말합니다. 이는 곧 구원의 문제가 아니라 상급의 문제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강조한 이유는 고린도교회 일부 성도들이 그들이 얻은 구원이 벌써 완성됐고, 그 완성된 구원을 소유하고 있다고 자만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고린도 교인들은 구원의 완성을 위해 달리고 있는 과정에 있음을 잊고 있었습니다. 달리고 있는 선수가 상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경기 규칙을 지켜야 합니다. 경거망동한 행동을 하거나 규칙을 어기면 그것은 무효가 됩니다. 규칙을 어기면 승리해도 상을 얻지 못합니다. 세상의 운동 경기도 그러하거니와 신앙의 경주는 더욱더 규칙대로 해야 합니다. 신앙 경주의 규칙은 성경대로 하는 것을 말합니다. 신앙 경주의 원칙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승리란 기적처럼 하루아침에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연히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잠깐 싸워서 승리를 얻기 위해 수많은 시간을 두고 연습합니다. 이처럼 신앙의 경주는 평생을 두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싸우는 목표를 분명히 하며, 자신을 절제하는 가운데 피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말씀에 순종하며 자신을 절제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느냐 않느냐 하는 것이 신앙의 경주입니다. 신앙의 경주에서 승리하기 위한 자세를 갖추며 오늘이나 내일이나 항상 그리스도를 향해 달려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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