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섬’ 순전한 신앙의 꽃 피우다
중화동교회 1896년 첫 설립 … 교단 소속 10개 교회 복음화 진력

제104회 총회에서 ‘한국기독교의 섬’이라는 최초 타이틀을 얻은 백령도의 공식 지정식이 오랜 기다림 끝에 거행된다. 총회역사위원회(위원장:신종철 목사)가 코로나19 확산 등의 문제로 1년 넘게 연기되었던 ‘한국기독교의 섬’ 지정식과 중화동교회의 한국기독교역사사적지 지정식을 마침내 7월 13일 백령도 현지에서 개최하는 것이다.
본지에서는 이를 앞두고 전체가 예장합동 소속인 백령도 관내 10개 교회의 역사를 살펴본다. 근거자료로는 2002년 초판이 나온 지 18년 만인 지난해 제2판이 출간된 <선택받은 섬 백령도>를 참고했다. 저자인 이종전 원장(인천기독교역사문화연구원)은 초판본 저자인 김지현 집사의 기존 집필내용에, 새로 발굴된 자료들을 추가해 책의 완성도를 높인 바 있다. <편집자 주>

백령도에 복음의 숨결이 처음 닿은 장면을 찾기 위해서는 18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한반도 서해안 탐사의 임무를 띠고 찾아온 영국 함대가 백령도 중화동포구에 상륙해 주민들과 접촉하고, 선물로 성경을 건넸던 것이다.

백령도에 전파된 복음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백령기독교역사관.
백령도에 전파된 복음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백령기독교역사관.

이후 1832년 한국을 찾아온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였던 귀츨라프가 처음으로 기착해 한문성경을 건넨 곳도, 이 땅에서 숨진 최초의 개신교 순교자 토마스 목사가 1865년 첫 번째 한국 선교일정을 시작한 곳도 바로 백령도였다. 이런 역사적 배경들을 바탕 삼아 백령도에 정식으로 교회가 세워진 것은 19세기 말엽의 일이다.
당시 백령도 중화동에 거주하던 당상관 허득은 마침 이 섬으로 유배되어 온 김성진과 만난다. 김성진은 감리교인이었던 조카로부터 전해 받은 성경을 들고 백령도를 찾아와, 자신이 새로 믿게 된 도를 전하기 시작했다. 이미 개화사상에 호의적이었던 허득은 자연스럽게 김성진과 의기투합해 교회설립을 추진했고, 백령도교회사의 첫 장이 열렸다.

중화동교회 (조정헌 목사·1896년 설립)

‘한국기독교의 섬’이라는 명예를 얻게 되는 백령도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를 간직한 중화동교회.
‘한국기독교의 섬’이라는 명예를 얻게 되는 백령도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를 간직한 중화동교회.

허득과 김성진은 주민들을 모아 복음의 진리를 가르치는 한편, 한국 최초의 개신교회로 마침 가까운 거리에 있던 소래교회를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그리하여 서경조 홍종옥 등 소래교회의 지도자들이 백령도를 방문해 포교하고, 1896년 8월 25일 마을 서당에서 첫 예배를 연다. 중화동교회의 출범이었다. 초대 당회장 언더우드 선교사와 믿음의 선구자들을 통해 배운 신앙으로 순전한 신앙문화를 꽃피우며, 모태교회로서 백령도 복음화에 크게 공헌했다.

사곶교회 (이봉우 목사·1905년 설립)

일제의 핍박에 굴하지 않은 자랑스러운 역사를 간직한 사곶교회.
일제의 핍박에 굴하지 않은 자랑스러운 역사를 간직한 사곶교회.

백령도 동쪽 끝 사곶마을의 김영희 김잔돌 김장립 등은 섬 동쪽에 있는 중화동교회까지 매주일 40여 리를 걸어다니며 신앙을 키웠다. 믿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자 1905년 9월 15일 사곶마을의 3칸짜리 초가에 처소를 마련하고 예배를 드린 것이 백령도의 두 번째 교회 사곶교회의 시작이었다. 일제강점기 예배당을 징발해 군수물자 공장으로 사용하려던 박해에 저항하며, 끝까지 교회를 지켜낸 자랑스러운 사적을 간직하고 있다.

화동교회 (박윤환 목사·1917년 설립)

화동마을에 거주하던 최대수 최익현 최익삼 등 최씨 일가를 중심으로 1903년부터 그리스도인들이 생겨났다. 그렇게 10년을 훌쩍 넘기는 세월동안 성실히 신앙생활을 하던 이들은 1919년 3월 16일 여섯 칸짜리 초가 예배당을 세우고 중화동교회에서 분립했다. 교회가 세워지면서 강력했던 무속신앙이 무너져 마을제사가 폐지되고, 당집은 헐렸다. 또한 무려 15명의 목회자가 배출될 정도로 화동교회는 훌륭한 신앙요람 역할을 했다.

수많은 목회자들을 길러내는 신앙 요람이 된 화동교회.
수많은 목회자들을 길러내는 신앙 요람이 된 화동교회.

진촌교회 (이철 목사·1906년 설립)

중화동교회 설립 이후 허윤 허간 등 청년들은 타오르는 전도 열정으로 여러 마을을 돌며 복음을 전했다. 1904년 진촌에서도 이윤범과 장성록 등이 예수를 믿게 됐다. 이후 이윤범의 집에서 모여 예배하는 인원이 점점 늘자, 1923년 4월 15일 30평 규모의 예배당을 마련하고 정식 교회가 됐다는 것이 <선택받은 섬 백령도>의 기술내용이지만 진촌교회에서는 설립연대를 1906년으로 설정하고 있다. 일제에 의해 강제로 사곶교회와 합병했다가 해방 후 복원되기도 했다.

청년 성도들의 전도 열정에 힘입어 세워진 진촌교회.
청년 성도들의 전도 열정에 힘입어 세워진 진촌교회.

가을교회 (양희문 목사·1924년 설립)

함석지붕으로 단장한 첫 예배당이 가을리에 세워진 것은 1921년의 일이다. 하지만 독립된 교회로서 인정받게 된 것은 1923년 황해노회에서 중화동교회로부터 정식 분립 허락이 내려진 후부터이다. 설립 당시 40명으로 시작한 가을교회는 계속 교세를 키워 백령중앙교회와 연지교회를 다시 분립한다. 해방 직후 건립한 종탑이 여태 남아 상징적 역할을 한다.

연지교회 (권오영 목사·1939년 설립)

연지동에서는 정두진 허의매라는 두 여인이 예수님을 처음으로 영접했다. 이후 김두환 이귀덕 부부가 마을에 정착하며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가을교회에 출석하던 이들은 10칸짜리 초가예배당을 구해 1939년 11월 예배를 시작하며 연지교회를 세웠다. 설립 당시부터 100여 명의 교인들이 모이는 등 큰 교세를 유지하며, 많은 목회자들을 배출했다.

장촌교회 (강상용 목사·1953년 설립)

치열했던 6·25 사변이 휴전협정으로 막을 내린 직후 장촌교회가 설립된다. 당시 중화동교회를 담임하던 허간 목사와 해군교회에서 군목으로 활동하던 전덕성 목사가 뜻을 같이해, 박옥련 장익춘 등 7명의 성도들을 도와 교회를 세운 것이다. 1962년 처음 건축한 예배당에 이어, 2016년 신축한 400평 규모의 예배당은 마을 전체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백령중앙교회 (김병수 목사·1953년 설립)

세밑을 목전에 둔 1953년 12월 27일 북포리와 가을리에 거주하던 성도들이 허간 목사의 소집으로 가을분교에 모였다. 이날 첫 예배를 드린 직후인 바로 이듬해 1월 둘째 주일에 제직회를 조직하며, 섬 안 여러 교회들의 후원 속에 백령중앙교회는 교회로서 빠르게 면모를 갖추어갔다. 오늘날에는 해외선교와 지역사회 봉사를 잘 감당하는 교회로 성장했다.

두무진교회 (김태섭 목사·1974년 설립)

백령도 북쪽 포구인 두무진은 기암괴석 등 절경을 자랑하는 대표적 관광명소인 동시에, 토마스 목사가 섬에 찾아왔을 때 배를 정박하고 선교한 장소로도 알려졌다. 두무진교회는 1974년 6월 9일에 설립되어 백령도 안에서는 비교적 ‘젊은’ 교회에 속한다. 2010년 천안함 사건이 인근 해상에서 벌어진 후에는 호국보훈과 평화기원 행사가 여기서 자주 열렸다.

한사랑교회 (김주성 목사·1988년 설립)

한사랑교회는 1988년 7월 진촌교회와 분립해 설립됐다. 장흥옥 씨 소유의 개발공사 건물에서 70여 명의 성도들이 모여 예배를 시작한 뒤, 그해 11월 20일 새 예배당에 입당했다. 김주성 목사 부임 후에는 2001년 백령기독교역사관 건립, 2010년 백령종합사회복지관 위탁운영에 이어 현재는 백령바이블랜드 사업추진에 앞장서며 지역사회를 주도하고 있다.

백령근현대사문화공원 추진한다

백령근현대사문화공원 조성계획의 대표적 기독교 콘텐츠인 범선공원 조감도.
백령근현대사문화공원 조성계획의 대표적 기독교 콘텐츠인 범선공원 조감도.

백령도 교회들의 자랑스러운 유산을 활용해 백령근현대사문화공원을 조성하는 계획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는 중이다.

일명 ‘백령바이블랜드’로 불리는 백령근현대사문화공원은 총 15만 7208㎡ 부지에 282억 1700만원의 사업비를 들여 기독교선교 역사를 조명하는 범선공원, 아름다운 호수길과 정원으로 꾸며지는 ‘화훼공원’, 진리탐구의 길을 상징하는 ‘미로공원’, 서구문화가 유입된 옛 포구와 전통시장을 재현하는 ‘호수공원’ 등으로 설계될 예정이다.

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주성 목사(한사랑교회)는 “백령근현대사문화공원 조성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시작점으로 백령도를 재조명하고, 기독교문화를 특성화한 차별화된 콘텐츠로 지역의 관광산업을 활성화하자는 취지의 사업”이라면서 “현재 옹진군과 긴밀히 논의 중인 단계에서 우리 총회의 ‘한국기독교의 섬’ 지정이 사업추진에 큰 동력이 될 것”이라고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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