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 정체성 확고한 정립 헌신을 기리다

제58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에서는 총회 역사상 최초로 교단의 공로자들에 대한 훈장 수여가 이루어졌다. 개인 9명, 단체 3곳에 대해 이루어진 이번 훈장 수여는 해방 이후 거듭된 장로교 총회의 극심한 혼란기에 교단 정체성을 세우는데 헌신한 인물들을 되새기는 의미가 있었다.

앞서 제105회총회기념사업특별위원회(위원장:오인호 목사) 훈장상훈위원회(위원장:박창식 목사) 역사위원회(위원장:신종철 목사)는 훈장 수여 후보 물망에 오른 인물과 단체를 대상으로 공적연구발표세미나를 개최했으며, 이 중 개인 6명과 단체 3곳을 수여자로 선정했다. 여기에 총회임원회까지 참여한 추후 논의과정을 거쳐 개인 3명이 추가되면서 최종 명단이 추려진 것이다.

제105회 총회가 박형룡 박사(공로훈장·왼쪽)와 승동교회(단체훈장·오른쪽)에 각각 수여한 총회훈장증.
제105회 총회가 박형룡 박사(공로훈장·왼쪽)와 승동교회(단체훈장·오른쪽)에 각각 수여한 총회훈장증.

선정 기준으로는 ▲총회 정체성을 확립한 개혁신학적 기여도 ▲장로교정치를 실현한 정치적 기여도 ▲총회와 총신의 기틀을 세운 섬김과 봉사의 기여도 ▲총회의 일치와 화합을 위해 헌신한 기여도 ▲총회 선교기반을 구축하여 세계선교강국으로 세운 기여도 등이 고려됐다.

개인들에게 수여된 훈장은 다시 공로훈장, 교육훈장, 선교훈장, 화합훈장으로 구분된다. 공로훈장 수여자로는 교단 신학교의 발전과 장로교 신학 확립에 이바지한 박형룡 박사, 정통보수 신학 수호와 발전에 공헌한 정규오 목사, 총회신학교 건축과 총회 발전에 공로가 큰 명신홍 박사, 이영수 목사, 백남조 장로 등이 선정됐다.

51인 신앙동지회가 총회에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진정서를 제출할 당시 대표이자 광주신학교 교장을 지내며 후학 양성에 앞장선 박종삼 목사에게는 교육훈장이, 목회자이자 선교사로 재직하며 보수신학 수호와 선교 발전에 기여한 조동진 박사에게는 선교훈장이 각각 수여됐다.

생존 인물들 중에서는 구 예장개혁교단과의 합동이 이루어진 제90회 총회 당시 양측 총회장이었던 서기행 목사와 홍정이 목사가 훈장 수여 대상자로 포함돼, 화합훈장을 수여받게 됐다. 단체훈장은 총회 정통보수신학 보존과 계승에 결정적 역할을 한 ‘51인 신앙동지회’, 총신대 사당캠퍼스 건축과 <기독신문> 창간 등에 산파 역할을 한 ‘전국실업인신앙동지회’, 자타공인 총회 역사의 산실로 인정받는 ‘승동교회’ 등이 수여했다.

단체훈장 중 두 신앙동지회에 대해서는 앞서 개인 수상자로 선정된 인물들을 제외하고, 교단 소속 등이 확인된 인물 24명을 수상자로 결정했다. ‘51인 신앙동지회’ 중에서는 김일남 박요한 전상성 손두환 차남진 최석홍 김준곤 임창희 정희찬 최성원 이노수 등 11명에게, ‘전국실업인동지회'에서는 김인득 곽현보 우성기 양재열 권운현 방남준 김추호 정규만 박기동 김정국 장기동 박찬수 박기수 등 13명에게 훈장이 전달됐다.

다음은 총회상훈위원회에서 정리한 훈장수상자들의 공적 내용이다.

▲박형룡(1897~1978)

총회와 한국교회가 배출한 최초의 변증학자요, 조직신학자로서 일찍이 1930년부터 평양장로회신학교 교수로 봉직하고, 총신의 전신인 장로회신학교를 1948년에 남산에 설립하였으며, 총신에서 24년간(1948~1972)간 조직신학을 강의하며, 최초의 교의신학 전집을 출간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다. 그는 총회신학교 교장과 총신대학 초대학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신학교의 발전과 한국장로교 신학 확립과 사수에 이바지한 공로가 크다.

▲정규오 목사(1914~2006)

조선신학교 재학 시절 자유주의신학에 반대하여 ‘51인 신앙동지회’를 결성하였고, 제33회 총회(1947)에 진정서를 제출하여 교단 내 자유주의 신학을 저지하였다. 박형룡 박사를 도와 1948년 장로회신학교 설립에 협력하였고, WCC와 단군신전건립 반대에 앞장섰으며, 군목제도 도입과 총회를 위한 십일조 제도와 구역공과 최초 발간에 기여하였고, 합동과 개혁의 교단 합동에 중심역할을 하였다. 그는 51인 신앙동지회 회장과 총회장을 역임하며 총회 정통보수 신학 수호와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가 크다.

▲명신홍 박사(1904~1975)

총신 사랑이 남달랐던 분으로 목회자와 교수와 총회장으로 헌신적인 봉사를 하였다. 그는 총회신학교 교수(1948~1971)로 재직하는 동안 총신 본관 건축을 위해 암 치료 중에도 1963년 8월, 미국으로 건너가 3만 불을 모금하였고, 이 계기로 전국교회의 헌금 참여를 이끌어 총신대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그는 교장(1965~1969)과 총회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개혁주의 국제무대에 대표로 참여하는 등 총회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가 크다.

▲이영수 목사(1928~1987)

총회와 총신을 향한 미래적 혜안을 발휘한 분으로 1980년 9월, 총회장에 취임하면서 오늘의 총회회관 부지 매입과 건립을 주도하고, 1981년 총신대학교 양지캠퍼스 부지 매입에 앞장섰다. 총회의 전국교회 부흥 운동인 만교회운동 위원장으로 활약하고, 한국기독교100주년선교대회 대회장으로 총회 위상을 높이고, 총회 직영 선교훈련원과 평신도훈련원 개원, 통일찬송가 출간에 앞장서는 등 총회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가 크다.

▲백남조 장로(1913~1988)

전국실업인장로신앙동지회 회장으로 1962년 총신대 사당캠퍼스 부지(1만8000평) 헌납하고 건축에 기여하였으며, 총신대 재단이사장(1967~1988)을 역임하는 동안 총회신학교가 총신대학교로 정식 대학인가 받는 데 재정적 헌신을 하며 총신과 총회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가 크다.

▲박종삼 목사(1913~1987)

조선신학교 재학 시절 정규오 목사를 도와 ‘51인 신앙동지회’ 결성에 참여하였고, 제33회 총회(1947)에 총회진정을 위한 10인 대표로 나서 교단 내 자유주의 신학 저지와 정통보수신학 수호에 앞장섰으며, 광주신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학교 발전에 기여하였으며, 교육자와 목회자로 성경 중심의 신학 교육과 살신성인의 삶으로 후학 양성에 열정을 쏟아 총회 교육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가 크다.

▲조동진 박사(1924~2020)

총회와 한국교회 선교의 초석을 놓은 분으로 신학교에 선교학 강좌를 개설한 선도자이며 자유주의신학 저지에 앞장선 51인 신앙동지회와 뜻을 함께하였다. 국제선교협력기구와 동서선교연구개발원을 설립하였고, 아시아선교협의회와 제3세계선교협의회를 설립하여 회장을 지냈으며, 총회세계선교회에 (구)바울의집을 헌납하였고, 조동진선교학연구소를 설립해 후학을 양성하는 등 총회 선교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가 크다.

▲서기행 목사·홍정이 목사

1979년 9월 이후 총회가 합동과 개혁으로 나누어진지 26년 만인 2005년 9월 제90회 총회에서 세계장로교회사의 기념비적인 합동이 성사되도록 총회장으로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교단 화합과 한국교회 연합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고 총회 위상 제고와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가 크다.

▲51인 신앙동지회

1945년 해방 이후 조선신학교에서 자유주의신학을 반대하고 총회 정통보수신학과 정체성 수호를 위해 제33회 총회(1947)에 진정서를 제출하여 교단 내 자유주의 신학을 저지하고 오늘의 총회 정통보수신학 보존과 신앙 계승에 이바지한 공로가 크다.

▲전국실업인신앙동지회

1962년 백남조 장로의 총신대학교 사당캠퍼스 부지 헌납을 계기로 1963년에 교단 내 실업인 장로들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총신대학교 구 본관과 기숙사 건축을 위해 헌금과 헌물을 모아 지원하였고, <기독신문> 창간의 산파 역할을 하는 등 총회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가 크다.

▲승동교회(1893~)

총회 지정 한국기독교 역사사적지 1호 교회이며, 총회 정통성 수호의 역사적 산실이다. 3·1운동과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교회이며, 총회 수호를 위해 가장 헌신적으로 수고한 어머니와 같은 교회이다. 1959년 제44회 총회가 WCC 반대로 분열된 후에 그해 11월에 승동교회에서 속회함으로 일명 ‘승동측’이란 이름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후 여러 차례 총회와 신학교 행사를 하는 등 교단의 중심교회로 총회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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